쓰레기 5제(題),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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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5제(題), 두 번째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15.04.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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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황령산 칼럼에 필자는 쓰레기와 관련된 글을 써왔다. 그 맥락을 이어서 2015년 1월 1일부터 매일 쓰는 365일 쓰레기 일기를 시작했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쓰려고 한다. 그 중에서 우리 주변의 것과 관련된 최근의 5개 꼭지를 황령산 칼럼으로 갈음한다.

 

▲ 난생 처음 쓴 어설픈 신년휘호(사진: 박기철 객원 칼럼리스트)

 올해 쓰레기를 따라 이루려는 뜻

수지(경기도 용인시). 안맑아도 포근한 설날이다. 2015년 2월 19일 木.

설날이다. 난생 처음으로 신년휘호를 쓰고 싶었다. 이런 걸 빗대어 ‘개폼’ 잡는다고 한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내가 이렇게 붓글씨를 쓴다고 덤비니 서예를 정식으로 공부하는 분들한테는 건방진 일로 여겨질 게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인 문방사우(文房四友)도 허접하다.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도 부족하지만 옛날 선비들을 본따 내 어설픈 소락체(素樂體)로 한 번 썼다. 청나라 때 문인화가인 정섭(鄭燮, 1678~1758)을 흉내(benchmark, 模倣)냈다. 호가 판교이기에 정판교(鄭板橋)로도 불리는 그는 어느 날 어리숙해 보이는 노인이 자기보다 실력이 한 수 위 도인임을 깨닫는다. 이후 난득호도경(難得糊塗經)을 썼다. 우리말로 <바보경>이다. 150여 자의 짧은 글이지만 의미는 심오하다. 뻔한 생각을 비트는 생각의 관점과 직설적 어법이 노자도덕경의 환생처럼 여겨진다. 난득호도란 바보처럼 보이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총명한 사람이 겉으로 어리숙하고 어벙하게 보이는 게 더 어렵다는 뜻이다. 모두가 똑똑하게 보일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바보처럼 보이기가 어렵다니? 가만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 뜻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기막힌 뜻들이 이어지는 난득호도경에 끽휴시복(喫虧是福) 구절이 있다. 모자람(虧)을 당하는(喫) 것이 복(福)을 베푼다(是)는 뜻이다.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느라 애쓰는 세상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 복이 되다니? 말이 안되는 말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다. 喫虧是福 밑에 쓴 從汚持淸은 내가 만든 사자성어다. 더러움(汚)을 따라(從) 깨끗함(淸)을 지닌다(持)는 뜻이다. 내가 지금 이 365일 쓰레기 일기를 통해서 이루려는 궁극적 목적이다. 쓰레기를 따라 다니는데 그것이 결국은 깨끗함을 이루려는 일이다. 이익을 얻으려는 일도 돈 벌려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일이 길(吉)한 길로 갈 것이라는 소망으로 신년휘호를 적어 보았다. 서예작품으로서는 사이비 졸작이다. 나중에 좀 더 연마해 잘 써야겠다. 그래도 뜻은 사이비(似而非) 아닌 진짜다.

 

▲ 부잣집 저택 앞의 쓰레기(사진: 박기철 객원 칼럼리스트)

 부자든 서민이든 공평한 쓰레기

서울. 밝고 포근하다. 2015년 2월 20일 金.

고등학생 때 평창동(서울 종로구)에 간 적이 있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가서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 이런 세상이 또 있구나 싶었다. 난생 처음 보는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신기, 아니 신비했다. 그 안에 누가 사는지, 밖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집 주변에서 노는 아이들 한 명, 어슬렁대는 강아지 한 마리 없었다. 회사 다닐 때 여기에 또 몇 번 온 적이 있다. 명절 때 광고주에게 굴비나 버섯 등의 선물을 돌릴 때였다. 지금이야 택배로 다 돌리지만 그 당시에는 회사 직원들이 선물들을 차로 나르며 직접 돌려야 했다. 그 때 알았다. 여기는 주로 큰 회사 회장님들과 사장님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 큰 집에서 가족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주로 가정부들이 선물을 받았다. 부자들은 사는 방식이 다 다르구나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나는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던 애들을 데리고 여기에 견학(?)간 적도 있었다. 그 때 딸 아이가 하던 말이 생생하다. “아빠, 우리는 언제 이런 데서 살아?” 그 질문에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데서 살 일이 전혀 없다고… 이 곳은 엄청난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2001년 어느 주식시장 조사업체 자료에 의하면, 여기는 서울 강북에 속한 성북동, 한남동, 이태원동, 평창동, 강남에 속한 압구정동, 서초동, 방배동, 청남동, 논현동, 반포동 등 10대 부자마을에 속한다. 주로 고급 아파트나 빌라에 사는 강남 부자들과 달리 강북 부자들은 저택에서 산다. 1980년대 이전이라면 부자들은 무조건 강북에서 살았다. 결국 여기는 전통적 부자들이 사는 동네다. 부자들을 마르크스는 재산이 많은 유산계급(bourgiosie)이라 했고, 베블런은 시간이 많은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 했다. 유한계급 부자들은 과시소비를 한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비한 것을 배출하는데는 부자나 서민이나 다 똑같다는 사실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 있어서는 우리 인간은 참으로 공평하게 태어났다. 저 저택 앞에 두어진 쓰레기를 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석촌호수에 사는 행복한 새(사진: 박기철 객원 칼럼리스트)

 인간보다 깨끗하게 사는 생명체

서울. 가는 비가 계속 온다. 2015년 2월 21일 土.

오리인 줄 알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거위란다. 백조로 불리우는 고니와 함께 오리와 거위는 둘 다 같은 과에 속하는 새라서 구별법이 모호하다. 긴 목을 저렇게 뒤로 꼬며 자는 모양을 보니 거위인 것같기는 하다. 저 똘망한 눈에서 알바트로스가 떠오른다. 갈매기와 비슷한 알바트로스는 오리나 거위와 과가 다른 새지만 눈 모양은 흡사하다. 골프 용어 중에 독수리(eagle)보다 높은 것이 알바트로스(albatross)란다. 왕을 상징하는 독수리보다 위에 있으니 최고의 새다. 땅에서는 유난히 긴 날개로 뒤뚱거리기에 우습게 보이지만 공중에서는 가장 멋진 새가 된다. 한 번 날면 바람 타고 3000km를 순항할 수 있다. 그렇게 당당한 알바트로스가 인간에게 잡히면 비웃음 당하는 꼴을 보고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라는 시를 썼다. 선원들이 심심풀이로 알바트로스를 잡아 담뱃대로 부리를 성가시게 하며 희롱한다는 시다. 당당한 시인이 사람들한테 조롱거리가 되는 세태를 알바트로스와 빗대어 비꼰 것이다. 그런데 저 새는 행인들로부터 비웃음보다 귀여움을 받고 산다. 같은 과 거위나 오리들과 비교해 대단히 행복하고 평화롭게 산다. 같은 거위나 오리 무리 중에 0~0.01% 안에 속하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팔자(八字)가 좋다. 프랑스에서는 거위 입에 모이를 억지로 부어 먹여 간을 비정상적으로 키워 푸아그라라는 최고급 요리 재료를 만든다. 오리 농장에서는 인간이 조류독감(AI)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육여건을 마련해 놓고 조류독감이 생기면 인간에 인해 몰살당하기도 하니 억울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들 조류보다 우리 인간이 조류독감의 최대 원인자다. 인간은 이들보다 깨끗하게 살지도 못한다. 이 녀석들이 자리를 뜨면서 똥을 슬쩍 뿌리듯 싸고 간다. 누런 액체 똥은 땅으로 스며들고 만다. 저 호수에서도 그냥 물에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오로지 인간 만이 매일 많은 쓰레기를 남기며 산다. 저 새들이 언젠가 지능을 갖추게 되면 온갖 쓰레기로 세상을 더럽히는 우리 인간을 조롱하게 되지 않을까?

 

▲ 오래된 장충동 태극당 건물(사진: 박기철 객원 칼럼리스트)

 커진 상미당에 비해 작은 태극당

서울. 조금 추워졌다. 2015년 2월 22일 日.

우리나라 유명 빵집은 모두 1945년 이후 창립되었다. 광복이 되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和)과자점이 없어지자 거기서 일하던 직원이 빵집을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집은 주로 ○○당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태어났다. 군산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 서울의 고려당, 상미당, 태극당은 대표적인 오당(五堂) 빵집들이다. 이성당과 성심당은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 제과점이 되었다. 고려당은 뉴욕제과, 독일빵집 등과 함께 가장 친근한 빵집이었다. 상미당은 삼립식품의 전신이다. 삼립에서 독립한 샤니는 계열사 파리크라상을 만들고, 파리크라상은 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뜨 첫 매장을 냈다. 이는 기존 빵집들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동네 빵집들이 점점 사라졌다. 현재 전국에 3000개가 넘는 빠리바게뜨가 있다. 제일제당이 운영하는 뚜레쥬르 1000여 점보다 압도적이다. 빠리바게뜨는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등이 속한 SPC(Superb company with Passionate and Creative people) 그룹에 속한다. 상미당이라는 빵집에서 시작해 재벌 그룹이 되었다. 태극당은 상미당에 비해 초라하다. 그런데 추억의 장소가 저렇게 살아 있으니 고맙다. 이제 다음 달부터 4층 건물을 허물지 않고 고친단다. 여기저기 수십 층짜리 건물을 짓는 이 시대에 리모델링 보수공사만 하다니? 빵집 위에 역사관도 짓는단다. 태극당의 회사문화가 규모를 크게 하려는 이 시대 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웬만하면 변하지 않는다는 기본 철학을 가진 것같다. 상미당과 태극당의 창업자는 저승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실까? 상미당이 글로벌 거대 기업이 되었으니 조그만 태극당을 깔볼까? 아무래도 원래 모습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태극당 창업자가 절대로 꿀릴 것같지는 않다. 오히려 상미당 창업자를 조용히 혼낼 것같기도 하다. 엔트로피 관점에서는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긴다. 작은 태극당이 훌륭한 이유다. 이와 관련된 책 하나가 떠오른다. <Small is beautiful!>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가만히 생각하면 정말이다.

 

▲ 세미나에서 콘서트로 바뀐 모임(사진: 박기철 객원 칼럼리스트)

 뮤직 토크 콘서트에서 했던 이야기

부산. 밝고 포근하다. 2015년 2월 23일 月.

오늘 난생 처음 하는 토크 콘서트 날이다. 원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러시아, 북유럽 여행에 관한 세미나 식의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통기타 음악을 곁들이면 더 좋을 것같다고 생각하여 뮤직 토크 콘서트를 기획했다. 그런데 또 외국 여행 만이 아니라 쓰레기 일기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취재하느라 둘러 다니는 우리 주변 일상 여행도 추가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Simple is best, less is more”라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 욕심이란 게 자꾸 뭘 더 집어 넣고 싶어 한다. 내가 지금 딱 그런 꼴이다. 외국 여행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음악을 추가했고, 또 쓰레기 취재 여행도 추가했다. 좀 더 좋게 하려고 한 의도이겠지만 좋은지 안좋은지 판단하는 일은 청중들의 몫이다. 발표 공연자로서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행에 관한 사고의 전환이다. 빛(光)나는 것을 보는(觀) 관광이 아니라 나그네(旅)가 가는(行) 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서 아는 만큼 보이기보다 아는 만큼 매이는 여행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주변 일상을 둘러보는 여행에 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쓰레기에 관한 관심의 증폭이다. 쓰레기는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우리 세상의 총체적 문제임을 공감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히 노래를 부르는 뮤직 토크 콘서트로 진행했다. 오늘 이야기 주제와 맞는 외국 곡 3개(존 레논<Imagine>, 캔사스 <Dust in the wind>, 린여드 스키녀드 <Simple man>), 우리 곡 3개(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남진의 <님과 함께>,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를 선정했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는 이 세상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다정하게 모두 다 행복하게 살아요. 돈과 같은 물질은 다 헛되이 사라져요. 우리 너무 급하게 살지 말며 소박하게 살아요. 이렇게 사는 게 몽상가의 꿈은 아니지요.” 여섯 곡이 하나로 주는 메시지다. 오늘 청중 중 한 명이라도 공감하고 실천하다면 오늘 콘서트는 작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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