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에서 만난 40년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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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에서 만난 40년 제자
  • 김민남
  • 승인 2018.10.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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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어느 신문에서 서울 모 구청의 장으로 있는 제자의 부마항쟁 39주년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다음 날엔 그 제자 구청장이 안부 전화를 해왔다. "그때 교수님도 힘드셨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모두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 '역사'가 이렇게 40년이나 오래도록 사제(師弟)의 인연을 이어지게 할 줄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1년에 서너번, 때로는 서울에 있는 아이를 통해서 안부와 함께 그의 고향산 갓김치를 보내오기도 한다. 어제는 다음 세번째 시집은 언제쯤 내는냐고 걱정 아닌 걱정도 해준다.

부마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이지만 내게는 그 역사의 큰 물줄기 어느 한 자락에서 사람냄새 나는 제자들을 만났으니 삶의 자그만 보람이고 행복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부마항쟁은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과 독재체제에 시위로 항거한 엄청난 날이다. 1979년 10월, 나는 그때 대학에 부임한 지 2년도 채 안된 풋내기 교수였다. 그날 16일부터 나흘간 교수들은 학교 당국의 시위제지 지시로 부산 번화가인 남포동과 광복동에 나가 대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부산민주공원 기념탑(사진: Creative Commons, Ken Eckert, 무료 이미지)

우리는 학생들 시위를 말릴 엄두도 못내고 학생들이 다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르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학생 6명이 검거돼 영도경찰서 구치소에 들어갔고 또 1명은 도피해 다니다 붙들려 실형을 살기도 했다. 실형을 산 제자가 바로 구청장이다. 교수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구치소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제자들을 면회 가는 것과 몇년 후 복학할 때 거들어준 것밖에 없었다. 하긴 나도 이듬 해 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본의 아니게 대학을 떠났고 5년 여만에 복직이 되었지만ㅡ.

아무튼 개인으로 보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두 큰 과거사 물줄기에 묻쳐도 그만이었을 한토막 얘기이다. 그때 힘들었던 제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사회 곳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사회 밑거름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큰 축복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열심히 무탈하게 살아가길 기도한다. 이 기도가 하늘에 닿아 틀림없이 그러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2018년 10월 18일, 묵혜(默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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