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지겨울 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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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지겨울 새가 없다"
  • 취재기자 장미화
  • 승인 2015.04.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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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다큐로 사회에 큰 감동 선사한 25년차 방송작가 추미전의 인생

 

▲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추미전 작가의 모습(사진: 추미전 제공).

작가, 교수, 방송아카데미 대표, PD.... 수많은 타이틀을 가진 만큼, 그녀의 삶은 바쁘고 힘들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떠 하루 일과 중 유일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독서 한 시간을 끝내고 나면, 전쟁 같은 스케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작가가 천직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방송 경력 25년차 추미전 작가는 방송작가 1세대 중 유일하게 여전히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추 씨는 “누가 특별히 가르쳐 줄 수 없던 작가 1세대라 힘든 점이 많았다. 그래도 난 작가생활을 참 재밌게 했다”고 말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추 씨는 부산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0년 부산일보가 주최한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문단에 입문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당당한 소설가가 되자, 이곳저곳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녀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에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부산 KBS 문화 프로그램 PD가 방송작가 일을 권유했고, 그 길로 그해 1990년 부산 KBS 작가가 됐다. 추 씨는 “내가 방송 일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난데없는 작가 추천에 황당했지만, 글을 쓰는 일이니 한 번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방송작가는 작가라는 의미보다는 자료 조사하는 사람이란 뜻의 스크립터라는 개념으로 통용됐다. 작가는 전문직으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작가가 되는 루트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작가를 모집하려면, 대학 국문과에 전화해 글 잘 쓰는 학생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게 통상적이었다. 방송국내에서도 생소했으니, 일반인들이 방송작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도 없던 시절, 추미전 작가는 방송국에 작가라는 사람이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인생에서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작가 세계로 발을 드려 놓았다.

대학 재학 당시, 추 작가는 도시 빈민 지역에서 신문을 만들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소외된 지역을 살리는 운동에 참여했다. 처음 방송국 복도를 들어선 순간, 그녀는 “와! 방송국 복도는 빈민지역 사람들 안방보다도 더 깨끗하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하루 일과 대부분을 집보다는 빈민지역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며 빈민지역 살리기 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에 점차 지쳐있던 찰나, 방송일은 새로운 활력을 그녀에게 제공했고, 평생 글을 쓰는 것이 꿈이었던 추 씨는 방송일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처음 작가 일을 했을 당시, 작가 선배들이 없던 1세대였기 때문에 작가 일을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처음 함께 일을 했던 PD는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어서 더욱 힘이 들었다. 처음 작가 생활 6개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반드시 그만 둔다고 말해야지” 하고 마음먹곤 했단다.

지금이야 작가실이 따로 마련되어있고 숙직실도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작가를 위한 공간이나 밤샘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몇 날 며칠 밤을 소파에서 자거나 아나운서들이 녹음하는 부스에 들어가 방음장치가 깔린 곳에 누워 쪽잠을 자기도 했다. 추 씨는 “그때는 그런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준비한 방송이 나가면 뿌듯함이라는 대가가 힘든 시간을 잊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처음인 작가 1년차 추 씨에게 최소 작가 경력 5년은 있어야 도전해 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들어왔다. 처음 작가를 권했던 PD가 어린이 백혈병 환자들의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을 써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추 씨는 “지금은 작가 1년차가 그 일을 맡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나에게는 작가로서 매우 빨리 그런 행운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 다큐멘터리는 1년 동안 어린이 백혈병 암 병동을 촬영하는 대작이었다. 10분짜리, 20분짜리 소품만 해보던 추 씨에게 첫 다큐는 대단히 높은 산이었다. 쓰고 고치기를 수백 번도 더하면서 1년을 정신없이 보냈다. 1년을 암 병동에서 살다보니, 영상 앞에 나오던 아이가 나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생을 마감한 것이다. 추 씨는 “생과 사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런 슬픔을 방송으로 어떻게 다 표현했는지 지금도 그 힘든 기분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드디어 백혈병 아이들의 생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고, 방송이 나간 직후, 부산 KBS 방송국의 전화가 3일간 마비가 되고 말았다. 백혈병 환자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의료보험도 역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에, 안타깝게 세상을 뜨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산 시민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전화가 밀물처럼 걸려왔다. 그 방송으로 인해 백혈병을 돕는 ‘새 생명 동호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 단체는 전국적으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추 씨는 “방송이라는 힘이 이렇게 크구나.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그녀는 도시빈민 운동을 등지고 방송국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사회에 대해서 져야 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회 약자들을 배신하고 자기 길만 찾은 듯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그녀는 “방송을 통해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힘을 얻게 됐다.

부산 KBS에서 추 작가 경력이 제법 쌓이던 1999년, 부산 KBS 추천으로 서울 KBS에서 방영되던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 작가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대한민국 대표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 길이 열린 것이다. 새로운 역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녀를 설레게 했다. 그녀는 “다양한 내용의 프로를 맡을수록, 여러 방면으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며 “작가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역사스페셜>의 처음 맡았던 주제가 <이몽룡은 실존인물이었다>였다. 처음에 기획된 것은 조선시대 사회상을 담은 춘향전에 대한 다큐, <춘향전은 조선시대 사회 교과서다>였다. 그러나 춘향전에 대한 취재하던 중, 그녀는 경상남도 한 지방의 어느 집안에서 이몽룡이 자신들의 선조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리고 이 말이 일리가 있었고, 역사적으로 증명도 가능하다는 학계의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다큐 방향도 바뀌었고 제목도 바뀌었다. <이몽룡은 실존인물이었다> 방송이 나간 뒤, 초창기였던 <역사스페셜> 시청률이 당시 전체 방송 프로그램 중 당당히 2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추 씨는 “전국 방송국에서 지역에서 느껴본 반응과는 또 다른 반응을 느꼈고,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했다.

이 한 편의 대히트가 그녀를 <역사스페셜>은 물론 <환경스페셜> 등 우리나라 대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작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본의 아니게, 그녀는 당시 어린 아들과 가족들을 떠나 서울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노력과 재기는 <역사스페셜> <풍납토성 지하 4미터의 비밀> 편으로 1999년 한국방송대상 우수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배> 5부작으로 2007년 한국방송대상 지역부문 우수상도 거머쥐게 했다.

추 씨는 작가 5년차에 이미 결혼해서 아들 둘을 두었고, 주로 서울에 머물던 생활을 정리해서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2003년에 다시 내려 왔다. 그러나 서울에서 여전히 그녀를 찾는 PD들이 있어서, 부산에 내려 온 뒤에도 서울을 오가며 작가생활을 계속해야했다.

추 씨는 오랜 작가생활을 통해 느낀 작가의 매력을 두 가지로 꼽았다. 세상의 다양한 면을 보는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다. 그래서 작가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작가는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부터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만나는 게 자연스럽다. 그녀는 지리산 골짜기에 묻혀 사는 사람도 만났고, IMF 때 늘어난 노숙자도 만났다. 방송취재 과정에서 그녀는 그 사람들의 다양한 사정은 물론 속내를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매번 새로움, 참신함을 바란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똑같은 것이라도 새롭게 포장할 것을 고민하기 때문에, 작가라는 인생은 언제나 바쁘고 지겨울 새가 없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일주일, 한 달이 금방가고 프로그램 몇 개를 맡아서 하고 난 뒤, 돌아보면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추 씨는 “세상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는 작가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게 추 씨가 꼽는 작가의 두 번째 매력이다.

방송작가에는 교양작가와 드라마 작가가 있다. 추 씨는 교양작가다. 추 씨는 한 때 드라마 작가에 관한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 매일같이 방송국을 드나들어야 하는 교양작가와는 반대로 원고만 써서 던져주면 되는 드라마 작가가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들은 뒤, 그녀는 드라마 작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꼈다. 단막극 작가는 원고만 써주는 것이 아니라, 촬영 현장을 따라다녀야 하고, 감독이 “이 대사 이상하잖아!” 하는 말 한마디에 그 날 저녁 여관방에서 원고를 다시 쓰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추 씨는 “그때 그 수업 이후로, 나는 그냥 교양작가인 내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고 말했다.

▲ 추미전 작가(사진: 추미전 제공)

추미전 작가는 새로운 분야에 늘 도전해 왔다. 추 씨는 2008년 ‘바오밥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이 프로덕션은 자신의 이름을 건 다큐를 만들고 싶은 꿈을 이루고자 도전한 결과였다. 바오밥 프로덕션은 작가, 촬영감독 등이 모여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해서 KBS를 통해 송출해오고 있다. 이번 2015 설 특집으로 바오밥 프로덕션은 <까막눈 할머니, 시인 되다>라는 프로를 만들었고, 이는 '채널 A'에서 방영됐다. 그녀의 프로덕션이 만든 프로그램에는 작가 추미전이 아닌 연출 추미전이란 이름이 올라간다. 추 씨는 “제작자와 연출자로서 뿌듯함이 배가 될 줄 알았는데, 그만큼 책임감도 배가 되더라”라고 말했다.

추 씨는 대학 강단에도 선다. 그녀는 현재 동의대 문예창작학부 겸임교수를 하고 있고 작가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교육시켜 방송국과 연계시켜주고 있다. 서울은 많은 작가 양성 아카데미가 있다. 그에 반해, 부산은 작가 아카데미가 없다. 추 씨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곳, 작가라는 길로 인도해주는 곳을 만들고 싶어 부산 최초의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열었다. 바오밥 프로덕션 아래 설립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는 작가 양성뿐만 아니라 현업에서 종사하는 리포터, MC, 아나운서, PD들의 직강을 통해 방송전문인을 양성하고 방송국과 연계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방송 아카데미다(http://blog.naver.com/baobabbaobab).

사실 방송작가나 리포터는 공채로 뽑는 경우가 극소수다. 국내 방송국들은 주로 PD 주변사람들을 통해 작가, 리포터, MC를 뽑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방송 경험을 통해 방송국 현장에 즉각 투입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트레이닝을 시켜 방송인을 교육하자는 꿈을 그녀는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서 이루고 있다.

추 씨는 알람이 없어도 여전히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남들보다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자신만의 장점이란다. 체질적으로 잠을 많이 자지 않고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작가라는 고단한 일을 이제껏 잘 해왔다는 게 추 씨의 설명이다. 그녀는 “방송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잠이 없나 싶었는데, 20대에 쓴 일기를 보니 역시 그때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썼더라”며 “어렸을 때부터 잠이 없었나 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추미전 작가는 원래 방송 글이 아닌, 소설 같은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언젠가는 깊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이제껏 그녀가 보고 느낀 것들을 깊이 있는 글로 표현할 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대한민국 방송국 PD들은 추미전 작가를 '한강 이남 최고의 작가'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바오밥 아카데미 부원장 정설이 씨는 “작은 체구에서 무한한 열정이 나오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오늘도 작가 추미전은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그녀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큐 <추미전 스페셜>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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