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동 골목 걸으며 황소 이중섭의 숨결을 느끼다
상태바
범일동 골목 걸으며 황소 이중섭의 숨결을 느끼다
  • 취재기자 박가영
  • 승인 2015.04.13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힘겨웠던 피난생활 속 예술혼 발휘한 현장...이중섭 갤러리, 전망대도

미술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명화하면 이중섭의 <황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한국 근대 서양화의 선구자이며 치열한 예술혼을 발휘했음에도 불우한 삶을 살다간 이중섭. 그는 독특한 필치의 그림을 많이 남겨 ‘한국의 고흐’라고도 불린다. 이중섭은 6.25 전쟁 당시 가족들과 함께 부산 범일동 판자촌에서 피란생활을 했다. 그는 부두에서 노동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고, 이때 <범일동 풍경>이란 작품이 탄생했다.

부산 동구청은 지난 해 5월 그에 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 범일동 부산은행 범천동 지점에서 마을광장까지 400m 구간에 이중섭 풍경거리를 조성했다. 이곳은 이중섭 거리, 이중섭 갤러리, 희망길 100계단, 이중섭 전망대로 이뤄져 있다. 얼마 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영석 전 동구청장은 "이중섭의 이야기에 새로운 옷을 입혀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취지로 이 거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에서 하차한 뒤, 현대 백화점 쪽으로 올라가다 육교로 철길을 건너면, 옛 보림극장이 있었던 교통부 범곡 교차로가 나온다. 이 교차로에서 왼쪽 건널목을 건너면 누리마트가 나오는데, 그 왼쪽이 ‘이중섭 범일동 풍경 거리'의 초입이다. 산복도로 주택가를 따라가니 축대 담벼락에 낯익은 이중섭의 부조가 나타난다.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그 부조 아래엔 이중섭 고유의 서명 'ㅈㅜㅇㅅㅓㅂ'이 새겨져 있고, 화살표가 붙어있다. 여기서부터 이중섭 거리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모퉁이를 지나니, 타일로 재현된 작품 <두 어린이와 복숭아>가 시선을 확 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아들이 죽자 그 아들이 외롭지 않도록 관에 함께 넣어준 그림이라고 한다.

▲ (왼쪽)이중섭의 부조, (오른쪽)이중섭의 작품 <두 어린이와 복숭아>(사진: 취재기자 박가영).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의 짧은 40년 인생을 담은 타일로 된 일대기가 담벼락에 전시돼있다. 거기에는 평양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순간부터 적십자병원에서 짧은 생을 마무리하기까지, 그의 일대기가 촘촘하게 쓰여 있다. 그는 9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본유학을 가서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그림을 인연으로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는 피란생활 와중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으며, 후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 이후에도 작품활동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내면의 고통과 자학으로 인해 피폐해져 갔고, 결국 적십자 병원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짧은 인생을 예술로 불태운 그의 흔적들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지 증명하고 있다.

▲ 벽에 전시된 이중섭의 일대기(사진: 취재기자 박가영).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호천경로당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중섭 갤러리의 시작이다. 이중섭 갤러리는 범일동의 평범한 주택가가 주 무대다. 여느 갤러리와 달리, 각 가정의 담벼락이나 축대에 이중섭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배경이 되는 주택 외벽을 또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 (왼쪽)평범한 주택가에 조성된 이중섭 갤러리, (오른쪽)주택 담벽을 전시장으로 활용해서 전시된 이중섭의 작품인 <봄의 아이들>(사진: 취재기자 박가영).

여기서 이중섭 전망대를 향해 발길을 돌리자,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난다. 희망길100계단이란 푯말이 붙어 있다. 마침 한 중년 남자와 어린 딸이 손을 맞잡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딸은 “이거 정말 계단이 100개가 맞나요?”라며 “열하나, 열둘, 열셋”이라고 숫자를 세고 있다. 희망길 계단 곳곳 여러 가지 형태의 금속판이 내걸려 있고, 거기엔 이중섭이 쓴 편지들이 적혀있다. 마사코에서 이남덕으로 개명한 그의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이중섭은 "나만의 사람, 마음의 사람인 남덕이여! 나는 당신의 편지와, 그립고 그리운 아이들과 당신의 사진을 기다리고 있소"라고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고, "당신의 편지가 늦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시 당신이나 아이들이 감기로 눕지나 않았는지요?"라며 가족을 걱정하는 편지도 있다. 그가 쓴 편지 글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 (왼쪽)희망길 100계단의 시작, (오른쪽)이중섭의 편지가 쓰여진 판(사진: 취재기자 박가영).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돌면, 노란색의 이중섭 전망대가 눈에 띈다. 전망대 2층으로 들어서면, 탁 트인 범일동 전망을 배경으로 그의 애틋한 편지글들이 새겨져있다. 계단을 따라 전망대의 1층으로 내려가면, 주민들의 사랑방과 이중섭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 (왼쪽)이중섭 전망대 건물, (오른쪽)유리난간에 새겨진 이중섭의 편지(사진: 취재기자 박가영).

이중섭 풍경거리를 찾은 박재오(52, 울산시 남구) 씨는 이곳에서 미술이라는 접근하기 어려워보였던 장르가 마을 곳곳에 잘 녹아들어 친숙해진 느낌을 갖게 됐다. 그는 “찾는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니 홍보가 잘 안된 것 같다”며 “각 장소마다 설명과 이중섭과의 연관성이 조금 부족한 듯하다”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마을 주민 박모(58) 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조금 찾는 듯했지만, 전시된 내용물이 빈약하고, 컨셉트가 애매한 탓인 듯,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며 “4억이 넘는 예산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예산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동구청의 취지와는 다르게, 이중섭 풍경거리는 쓸쓸한 풍경만을 조성하고 있다. 2014년 4월부터 산복도로 소풍이라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홍보와 관광객들의 부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