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사회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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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사회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5.04.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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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유도 금메달리스트 송대남 선수가 금메달이 확정되고서 코치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들은 하나같이 금메달 승리의 공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신기술을 연마시킨 스승에게 돌린다. 선생인 나도 스승의 날이나 졸업식 때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제자들로부터 받지만, 왠지 스포츠 스타들의 스승들이 부럽다. 그들 제자 선수들의 인사 속에는 남들도 감동하는 진정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더 부러워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의사들이다. 종합병원 척추 전문의인 한 지인은 척추가 아파 집안에서 누워 지내던 한 시골 할머니를 수술로 완치시켜 날듯이 걸을 수 있게 해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같은 척추 문제로 송장처럼 방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 동네 다른 노인들을 단체로 몰고 왔고, 내 지인은 수술로 그 노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차례로 안겨 드렸다고 한다. 그후, 지인은 철마다 그 노인들 초청으로 시골을 방문한다는데, 그 대접이 거의 ‘교주(敎主)’ 수준이란다. 생명의 은인이 왕림하시니 오죽했을까.

대개의 선생님들은 통상적으로 제자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산다. 그러나 학교 은사에 대한 제자들의 감사 인사에는 잘린 손가락을 접합해준 의사에게 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절절함 같은 것이 부족하다. 대학을 졸업한 제자들은 ‘포괄적인’ 가르침에 대해 교수들에게 감사하다는 것이지, 그들 인생의 성공과 성취에 끼친 뚜렷한 그 ‘무엇’이 있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내 제자들의 감사함은 가식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은 의례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학문 성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은 물론, 일부 실용성이 높은 학문 분야 학과생들도 학자가 되려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전공과목에 열정을 쏟아 공부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학과 교수들의 강의로부터 나름대로 인격 형성이나 삶의 지혜에 도움이 됐다고 ‘막연히’ 느낄 수는 있어도 ‘특별히’ 먹고사는 데 고마워 할 일은 없다.

대한민국 대다수 학과 전공 강의는 취업에 쓸모가 적다. 사회는 대학 졸업자들에게 특정 학과에서 특정 과목을 수강하고, 그로부터 특정 직무 능력을 배웠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기업체들은 그저 똑똑하고, 열정 넘치고, 스펙 좋고, 인성 좋은 신입사원을 뽑아서 필요한 업무는 자기들이 연수시켜 쓴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대학의 전공수업을 중시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신문방송학과도 언론사로부터 그 존재 이유를 무시당하고 있다. 논술, 작문, 상식, 국어, 토론 면접 등 언론사 입사시험 어디에도 신방과에서 전공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은 없다. 언론사들은 자기들 기준에서 똑똑한 인재를 뽑아 수습시켜 기자로 만들어 쓴다. 그렇다면, 전국 100여 개가 넘는 신방과 학생들은 왜, 어디에 써먹으려고 날마다 전공수업을 듣는 것일까? 그저 졸업에 필요하니까? 아니면 TV 안 보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중에 무언가 TV 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심정에서? 신방과 전공과목의 이런 효용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누구는 말한다. 대학이 취업 교육하는 곳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러나 이 말이 전적으로 맞는 건 아니다. 대학의 이수 학점 구조는 교양학점과 전공학점으로 구성돼 있다. 대학의 졸업학점은 학교나 학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130에서 140학점이다. 이중 약 1/3은 교양학점이고 나머지 2/3는 전공학점이다. 대학생들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 설계(life plan)가 필요하고,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력 설계(career plan)가 필요하다. 대학은 인생 설계를 위해 교양과목을, 그리고 경력 설계를 위해 전공과목을 개설하는 것이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사회가 대학의 학과목을 경시한다는 점을 잘 알고 그런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그들은 학과 성적은 장학금용이거나 입사 원서에 우등생이란 표시로 적는 성적기재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사회는 대강 문과냐 이과냐, 또는 상경계열이냐 공학계열이냐는 정도를 따지고, 대학에서 무슨 과목을 수강했느냐는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대신, 기업은 학생들의 토익점수, 면접태도, 컴퓨터 활용 자격증, 해외봉사활동, 국토대장정 참가 경력을 예의주시한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성적표을 위해 전공 공부를 하고,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공부한다. 대학생 사교육인 취업 학원에 쓰는 돈도 만만치 않다. 해외연수를 가면, 그 비용은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른다. 성적용 전공 공부 따로, 취업용 스펙 공부 따로인 대학생들의 고통은 고3 입시 지옥의 복사판이다. 이런 식으로, 1년 365일, 전국의 대학에서 진행되는 수만 개의 전공 강좌는 기업과 학생들로부터 그 존재 가치를 외면당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 전공 교육은 별로 안중에 없다. 입시철이 되면, 담임교사, 학부모, 학생이란 고등학교 ‘진로 3인방’들은 대학과 전공을 놓고 고민한다. 그런데 그들의 결론은 하나다. 전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과와 미래 직업과의 연계성에 대해 고3 학생들이 무슨 심오한 고민을 했겠는가? 대학이 먼저냐 학과가 먼저냐를 놓고, 학생과 부모가 신경전을 벌일 때, 교사와 학부모들은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서 따로 스펙 쌓으면 취업은 어디든 문제없다고 학생을 달랜다. 이때, “아빠도 국문과 나와서 은행 다니고 있잖아,” 혹은 “엄마도 철학과 나와서 공무원 하고 있잖아” 하는 발언이 동원되면, 거기서 특정 학과에 대한 학생의 고집은 꺾인다. 이런 식으로 고3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학과보다는 사회에서 좋다는 대학의 점수 맞는 '아무' 학과에 우선 진학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이름 보고 아무 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그때부터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과 맞지 않은 전공수업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취업을 '원래 계획한 대로' 별도의 스펙 공부로 해결하려고 한다. 졸업 후 학과 교수님이 고맙다고? 4년 전공 수업 중에 ‘그래도 무언가 배울 게 없지는 않았으니까’ 고맙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 인사는 공허하다. 대한민국 대학에서는 어디에 쓸 건지도 잘 모르면서 전공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학은 그래서 거대한 ‘바보들의 행진’이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들이 영어 등 종전의 스펙 중심으로 뽑던 공채 제도를 직무능력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최근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직무능력이란 바로 대학이 전공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분야다. 단, 현재와 같은 이론 중심 전공과목은 직무능력과의 관계가 미약하다. ‘실무로 배우기(learning by doing),’ 즉 실무 중심 전공 교육이 되어야 바로 기업이 원하는 직무능력 교육이 된다.

늦게나마 기업이 공채제도 방향을 전환했다는 소식은 반갑기 짝이 없다. 그 이유는 기업들이 전공 불문하고 똑똑한 인재를 뽑아서 자체적으로 연수시켜 써먹겠다는, 과거 중세의 대장간에서 유래한 ‘도제식 교육’의 문제점을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학은 전공 직무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기업은 대학의 직무교육을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은 대학이 아닌 자체의 직무교육으로 한국을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올려놓았다. 한국 기업이 위대한 것은 맞지만, 일부 공학 분야의 기여도를 제외한다면, 대학의 지성과 창의력이 빠진 한강의 기적은 일면 불가사의한 점을 가지고 있다.

직무능력 위주의 전공교육은 의대가 표본이다. 의대교수는 의사다. 의사인 교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부속병원에서 직접 진료하기도 한다. 의대생들은 교실에서 배우기도 하고 부속병원에 가서 직접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의대 교수들은 환자들로부터 임상 자료를 얻어 질병을 연구하고, 그 결과로 미래 의사들을 교육한다. 쉽게 말하면, 의대생들은 진짜 현장실습, 산학협력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마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도 이럴 것이다. 이게 바로 learning by doing이다. 교육부는 대학과 사회가 따로 노는 현상을 막고, 대학 교육이 고등학교와 기업에서 무시당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또 취업준비생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 공부와 취업 공부라는 젊은이들의 이중고를 없애기 위해, 전공 학과에 산학협력 교육, 현장실습 교육, 산업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교육, 산업체 관점의 학과 평가, 기업체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등의 제도를 도입하라고 대학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대학과 교수들에게 돌아 왔다. 특히, 사회과학, 응용과학 등 실용 학문을 가르치는 전공학과 교수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사회에서 거의 용도폐기당한 대학의 실용 학과 전공과목이 학생들에게 전공 관련 직무능력을 심어주는 실무 중심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론사는 ‘기사작성’이나 ‘취재보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신방과 학생들 중에서 인성과 자질만을 면접으로 확인하고 선발하면 끝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대학이 전공 과목을 통해 기자나 PD를 제대로 교육하고 양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대학을 놔두고 자체 입사시험으로 사람을 뽑거나, 기자 아카데미니 방송 아카데미니 하는 사설 학원 출신들을 찾아 나선다. 또, 언론인 지망생들은 대학 전공 과목을 제쳐두고 이런 사설 학원들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신세가 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언론사 뿐만이 아니라 무수한 취업 분야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으니, 나는 이런 우리 대학 현실이 밉다.

경성대 신방과에서 운영하는 <시빅뉴스>의 발행인으로서, 나는 전공 공부와 취업 공부가 일치하는 시대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경성대 신방과는 십 수 년 전부터 기자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실무 중심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의대의 부속병원 같은 부속 학과 언론사인 <시빅뉴스>를 설립했고, 이를 의대의 부속병원처럼 교수가 부장이 되고 학생이 기자가 되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나는 제자들이 <시빅뉴스>의 현장실습 결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언론사로부터 인성만 검증받고 무난히 채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졸업 후 좀더 진정성 있는 감사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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