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며 ‘느림의 여유’ 즐기다
상태바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며 ‘느림의 여유’ 즐기다
  • 이세호 시빅뉴스 스페인 특파원
  • 승인 2015.04.07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통신 전송속도 3G가 빠르다고 놀라던 시대가 오래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새 3G는 느린 것 내지는 옛날 것을 의미하게 됐으며, 우리는 이미 4G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4G마저 느리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고 더 빠른 것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4G보다 1,000배 더 빠르다고 알려진 5G 상용화가 코앞에 와 있다. 바야흐로 더 빠른 것이 더 가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빠른 세상 속에서, 현대인은 언제 쉴 수 있을까? 언제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기자는 ‘느림의 여유’를 갖고 싶었다. 사치라고 남들이 비난해도, 기자는 진정한 느림의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여기 수백 km를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다. 심지어 그 수백 km 거리를 더 가깝고 편리한 평지 길을 두고 굳이 높은 언덕을 오르고 산을 에둘러 가는 길이 있다. 이런 길을 걷는 것은 시간 낭비 같고 비효율적인 행위인 듯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길이 실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 위를 걸어갔거나 현재 걷고 있다.

우리말로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어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영어로는 ’세인트 제임스 웨이(St. James' Way)'로 불리며,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지만, 출발지는 어디든 정해진 곳이 없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9세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되면서, 유럽 전역의 많은 순례자가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3년, 이 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정면 모습. 대성당은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얼굴로 순례자들을 반긴다(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 출발지는 프랑스 남부 국경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길이 있는데, 거리가 800km로 성인 남성 기준으로 걸어서 약 한 달이 소요된다. 포르투갈 리스보아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 길은 600km의 거리에 걸어서 약 20일이 걸린다. 영국 쪽 스페인 항구에서 출발하는 영국 길은 약 120km의 거리에 4박 5일 정도가 소요된다.

▲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영국 길 등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대표적으로 세 개가 있어서 전 세계의 순례자들을 부르고 있다(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기자는 2014년 12월 18일 산티아고 순례길 중 영국 길의 출발지인 스페인의 '페롤(Ferrol)'이라는 해안도시에 섰다. 기자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하루라도 더 학업에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이 길을 걷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천주교인인 기자는 그동안 이 길을 걷겠노라고 다짐해왔던 그 마음 하나로,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을 떨치고,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준비는 거창하지 않았다. 침낭, 여벌 옷 1벌, 세면도구, 우의, 걷기 편한 옷, 등산화 1족, 비상금, 그리고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면 충분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지도와 휴대전화는 필요치 않았다. 순례자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는 표지석을 보고 걸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거쳐 페롤이라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저 스페인 도시 중 하나였지만 무엇인가 낯이 설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기자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 기자가 걸은 영국 길의 구간은 120km의 비교적 짧으며, 기사에 언급된 폰덴데우메, 벤탄소스, 브루마 등의 경유지가 보인다(사진 출처: 배언덕 씨의 네이버 블로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관련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서 페롤에 안내센터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숙박정보 등 필요한 것을 얻고, 다음 날 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페롤의 안내센터 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서성이는 기자에게 “그곳은 겨울에 운영되지 않습니다”라고 한 행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기자는 그곳에서 무한정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없어서 막연한 기대를 품고 어딘가에 있을 근처 성당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기자는 큰 성당을 발견했고, 기쁜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성당이나 교회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본 적이 없던 기자였기에, 그 상황은 황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성당을 또 찾아 나섰지만, 또 문이 닫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됐다.

두 번째 성당마저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상황에서, 망연자실하게 성당 문 앞에 서 있던 기자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한 마디가 들려왔다. “까미노(순례자의 길)?” 기자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뒤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온화한 미소를 띤 한 노부부가 서 있었다. 그들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15번도 넘게 걸은 현지 주민이었다. 그들은 침낭이 달린 큰 배낭을 메고 성당 문 앞에 풀이 죽은 채 서 있던 기자 모습을 보고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기자는 그 도움의 손길을 덥석 잡았다. 기자는 그들에게 지금 사정을 영어, 스페인어, 바디 랭귀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도 써가며 전달했고, 그들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기자를 진정시켰다. 그들은 근처 수도원에 가면 숙박할 수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간신히 수도원에서 안내를 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자 방문 앞에서,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었다. 기자는 방문을 열었다. 한 신부님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신부님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묵주 뒤에는 “인천교구”라는 한글이 적혀있었다. 그 신부님은 자신이 리투아니아에 있을 때 길에서 이 묵주를 주었는데, 그 글자가 한글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한국인인 기자가 오늘 수도원에서 묵는다는 사실을 알고 기자 방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기자는 그 신부님이 만난 첫 한국인이었다. 우리는 이런 인연에 서로 놀라워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수도원에서는 매일 미사가 있는데, 그날 새벽 첫 미사 시간보다 일찍 길을 나서야 하는 기자를 위해서 신부님은 미사 시간을 앞당겨주었고, 기자는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기자를 붙잡고 백발의 신부님은 자신의 간식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주고 배웅해 주었다. 수도원 문을 나서 몇 발자국 가던 기자는 정말 고마운 마음에 수도원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벅찬 감동을 안고 길을 나섰다.

▲ 출발지 페롤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친절하고 인자한 신부님은 기자가 난생 처음 만난 학국인이라고 했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첫째 날은 페롤에서 ‘폰테데우메(Pontedeume)’ 31km 구간이었다. 처음에는 부산처럼 바다가 있는 페롤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포장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걷고 걷다 보니, 어느새 순례자들을 위한 표지석은 기자를 산속으로 이끌고 있었다. 보슬비가 내렸다. 우의가 있었지만, 기자는 기분 좋게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산속을 걷고 또 걸었다. 산길은 비 때문에 온통 진흙길이 되었지만, 그것마저도 모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기자는 재밌게 진흙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흙을 밝고 풀 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폰테데우메에 도착했고, 기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자 길은 겨울철에는 순례객들이 적고, 그중에서도 기자가 걷고 있던 영국길은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에, 수용 인원이 20인을 넘는 숙소는 기자만의 차지였다. 기자는 점심때 수도원에서 챙겨 준 간식으로만 떼운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알베르게 봉사자에게 물어 인근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를 뜻하는 ’메누 델 디아‘를 주문해 먹었다. 대도시와는 다르게 그곳의 오늘의 메뉴는 싼값에 비해 훌륭했다. 기자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 일정을 위해 눈을 붙였다.

   

▲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폰텐데우메의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기자는 그날 밤 유일한 숙박객이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 폰텐데우메의 한 식당에서 기자가 주문해서 먹은 ‘메누 델 디아(오늘의 메뉴)’ 음식인데, 가격에 비해 양도 푸짐했고 맛도 최고였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기자는 이른 아침 기상해 보초병이 근무를 나서듯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둘째 날의 목적지는 베탄소스(Betanzos)라는 소도시였다.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잠깐의 포장된 길이 끝나고, 곧 산길이 이어졌다. 첫째 날처럼 보슬비가 내렸고, 기자는 기분 좋게 비를 맞으며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산속 길이 계속되면서, 또 다른 산속으로 넘어가는 중간 중간에 작은 마을들이 있었다. 그 마을들은 한국의 정겨운 시골과 비슷하게 소박하고 따뜻해 보였다. 특히 그곳 사람들의 여유 있는 표정이 인상 깊었다. 기자는 지난 마을 마트에서 산 빵 몇 조각으로 점심을 때웠고, 서둘러 길을 다시 나섰다. 하루 종일 21km를 걸어 목적지인 베탄소스에 도착할 무렵, 기자는 위기를 맞았다. 무릎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누가 먼저 빨리 걷는지를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다. 순례길은 느림과 여유를 위해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을 느끼고, 길을 음미하며 걷는 곳이다. 기자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는 시간에 쫓겨 서두르고 있었고, 속으로만 ‘천천히’를 외쳤지, 겉으로는 이미 ‘빨리빨리’ 습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기자는 휴식을 배제한 채 걷고 또 걸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있지도 않은 사람들과 경쟁을 펼쳤다.

그리고 휴식 없는 강행군 탓에 겨우 이튿날에 왼쪽 무릎에 염증이 도져 정상적으로 걷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기 싫었던 기자는 얼른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자고 일어나면 무릎이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임시방편으로 무릎에 찬물 마사지를 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기자는 아침 일찍 기상해 브루마(Bruma)로 향하는 28.3km의 일정을 시작했다. 무릎은 호전되지 않았고, 배낭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기자는 숲 속에서 나무 작대기 두 개를 주운 뒤 그것에 몸을 의지한 채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발바닥이 아닌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때부터 기자는 계획한 시간에 맞춰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안했다. 나을 기미가 없는 무릎으로 계속 걷는 일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걸어야만 했고, 수시로 쉬어야만 했다. 속으로는 느리게 걷는 것이 맘에 거슬렸다.

하지만 기자는 그제서야 느림의 휴식을 느끼며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천천히 걷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됐고, 귀 기울일 수 있게 됐다. 그때 들려오는 새들의 선율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것을 혹여 방해할까 기자는 흥얼거리던 콧노래를 멈췄다.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왔을 울창한 숲길은 하늘에 좀 더 닿아보려고 애쓰는 듯, 태양의 몸짓에 따라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기자가 땅바닥에 엉덩이를 내맡기고 주저앉아 하늘을 우러러 보니, 자연 냄새 가득 싣고 춤추며 스치는 바람은 이전에 그저 불기만 하던 그 바람이 아니었다.

▲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중 한 코스인 영국 길 곳곳에 펼쳐진 숲속길은 종교적 사색과 힐링의 분위기가 은은히 흐른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대자연 속에서 기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자는 그동안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쉬어가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는 것만 같았다. 기자는 그래서 자주 불안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듯했다. 사실 그게 옳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여기 순례길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휴식 없는 강행군이 무릎에 탈을 일으켰듯이, 휴식 없는 삶 또한 언젠가는 탈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기자는 알게 됐다. 아픈 무릎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한 휴식이 주위를 둘러보게 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 여유를 가질 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삶을 살면서도 탈이 나지 않기 위해서, 달리기만 할 때는 알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알기 위해서, 사람은 여유와 휴식을 가져야 함을 기자는 알게 됐다.

기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재무장한 채 다시 길을 나섰다. 계획한 시간이 훨씬 지나, 해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산을 겨우 나와 숙소에 도착했지만, 기자는 첫째 날과 둘째 날보다 훨씬 기쁘게 셋째 날을 걸을 수 있었다. 산속의 흙길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고, 우거진 숲을 뚫고 얼굴에 닿은 햇볕이 그렇게 따스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자는 다음 숙소에 도착했다. 기동성이 떨어진 현재 상황에서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기자는 더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야 했고, 그래서 더 일찍 잠을 청해야 했다.

그 다음 날 기자는 이른 새벽에 기상해 시게이로(Sigüeiro)로 향하는 24.8km 길을 나섰다. 이제 기자는 전보다 늦게 걸었지만, 빨리 걸을 때보다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고, 길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전처럼 느린 것에 불평하고, 불만스럽고, 불안해하지 않았다. 기자는 영국 길을 걸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분은 기자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진 헝가리 출신 60대 할머니였다. 기자는 그 할머니와의 만남를 통해서 세상일에 대한 일말의 불평, 불만, 걱정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자는 출발 5일 후인 12월 23일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고, 시간이 흘러 그 어느 곳보다 빠름이 주목받고 쉼 없는 경쟁이 치열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자는 적절한 휴식이 동반될 때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는, 순례길 위에서 느낀 그 확신을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나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기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드디어 기자가 도착했으나, 성당은 일부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 순례자들은 순례길 중간중간에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지석을 보고 길을 걸으면 길잃을 염려는 없다(사진: 취재기자 이세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