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디지털, 감성의 아날로그를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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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디지털, 감성의 아날로그를 입다
  • 성지은
  • 승인 2013.01.16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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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디지로그'가 대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이 딱딱하고 따분한 기계적 특징을 보완하기 위해 아날로그 정서와 결합해 디지로그로 새롭게 태어났다. 디지로그(Digilog)란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 기술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허은아(37) 씨는 얼마 전 이사를 하다 오래된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의 젊은 시절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사진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여기저기 빛 바래고 낡은 사진에 관리를 잘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디지털 이미지 법으로 사진을 복원하자는 것이었다. 스캐너를 통해 빛 바랜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하고, 저장된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 편집기로 복원하고, 포토프린트로 출력하는 것이 사진의 디지로그 기법이다.

허 씨는 이런 아날로그 사진을 디지털 사진으로 접목시키는 기술이 없었다면 부모님의 사진을 복원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이 되살아난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디지로그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되살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휴대폰에서의 아날로그 감성 집중 조명

실제로 강아지를 키우는 것처럼 분양받고 훈련시키는 휴대폰 강아지 키우기 서비스인 모바일 애견 ‘마이펫'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서비스의 애용자들은 실제 애완견이 아닌 모바일 속의 애견이지만 이에 빠져 동호회를 결성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등의 열성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김은혜(23, 부산 북구 덕천동) 씨는 요즘 ‘마이펫'에서 분양받은 모바일 애견 ‘삐삐'에 푹 빠져있다. 하루종일 ‘삐삐'의 상태를 확인하고 먹이를 챙긴다.

김 씨는 자신처럼 집에서 직접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이펫은 정말 기쁨을 주는 기능이라며 “이제는 삐삐가 없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나에게 마이펫은 내 삶의 활력소다”라고 말했다.

이 기능 이외에도 디지로그를 활용한 예는 좁게는 라디오 기능이 가미된 FM라디오부터 넓게는 휴대폰 카메라의 흑백사진 기능, 고객의 정서를 자극한 초콜릿 폰 시리즈 등이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부산 서면에서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한다는 박지훈(41) 씨는 “요즘 휴대폰은 딱딱한 디지털 세상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찾으려는 소비자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 디지털 제품을 중심으로의 변화

PC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PC'가 그 선두에 서있다. 태블릿PC는 키보드는 물론, 전자펜으로 직접 디스플레이에 문자를 쓸 수 있어 편리하다.

특히 HP 태블릿PC 4200은 12.1인치의 모니터가 360도 자유롭게 회전해 키보드와 겸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기능에 대해 장윤정(21, 부산 북구 구포동) 씨는 “이런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께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수동카메라처럼 필름 와인더를 감아야 하고 초점을 조정하는 등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 카메라도 등장했다. 엡손 레인지 파인더 디지털카메라 ‘R-D1'은 ‘찰칵', ‘드르륵' 등 사진을 찍을 때 나오는 소리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엡손의 ‘R-D1'을 애용한다는 김치원(25,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카메라는 사진 하나를 찍을 때마다 필름 와인더를 감아야 하고 셔터 스피드와 초점을 조절해야 하는 등 기존의 디지털 제품에 비해 찍는 사람의 재미를 더한다고 한다.

김 씨는 요즘 이 카메라의 즐거움에 푹 빠져 산다며 “나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필름 카메라와 비슷해 부모님이 더 신기해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 새로운 공연 장르 디지로그 뮤지컬

1996년부터 지금까지 500회 이상 공연된 뮤지컬 ‘더 플레이'는 올 가을부터 이전의 아날로그적 상상력을 디지털로 형상화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더 플레이'는 디지털 세계의 강박, 중독, 소외를 아날로그 세상의 사랑과 용서, 믿음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주인공 갓스와 지니, 우철 등을 통해 형상화했다.

이 뮤지컬을 제작하는 극단에 따르면, 이런 디지로그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공간 미디어 디자이너인 뉴욕 주립대 필립 볼드윈 교수가 참여해 디지로그 공간과 영상 디자인을 통한 무대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할 것이라고 한다.

▷디지로그는 아날로그 문화와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

디지로그 열풍은 몇몇 제품이나 마케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제 디지로그는 문화다. 하나의 분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디지로그'라는 책을 펴낸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 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이 후기정보화사회의 파이오니어로서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양극화, 여론의 쏠림 현상 등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앞선 기술은 빛이 아니라 그늘이 될 수 있다. 디지로그를 선창하고 나선 것도 우리의 아날로그 문화와 조화와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작 업체인 피에스케이 마케팅본부 민경재 상무는 디지털 타임즈에 게제한 글에서 지금의 디지로그에 대해 “딱딱한 책상과 기계 앞에서도 사람의 감성이 요구되는 시대, ‘0'과 ‘1'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각각의 마음을 담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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