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과 모성애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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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과 모성애의 충돌
  • 부산광역시 남구 이도희
  • 승인 2015.04.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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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나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에즈라 밀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라 찾아서 봤다. 주인공인 케빈은 어떠한 말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를 처음 볼 때 든 생각은 '아, 이 아이 사이코패스구나'였고, 보던 중간에는 '소시오패스에 더 가깝겠다'였으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케빈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둘 다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난 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 갈 때까지 나는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졌다. '왜 케빈은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왜 에바는 케빈에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아들인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척했던 에바와, 엄마인 에바를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했던 케빈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에바의 기억들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케빈을 낳기 전, 케빈을 낳은 후, 케빈의 유아기, 청소년기, 그리고 케빈이 감옥에 가 있는 현재. 에바는 여행을 좋아하고, 속박을 싫어하는 작가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여행 도중 남편인 프랭클린을 만나고 케빈을 임신해 정착하게 된다. 원치 않았던 임신이라 에바는 케빈에게 아무런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 케빈 또한 그런 엄마의 감정을 알아서일까. 아빠에게는 방긋방긋 웃고, 평범한 아이처럼 굴던 케빈은 엄마에게는 유독 못된 장난들을 치고,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오직 분노와 증오만 내비칠 뿐이다. 케빈은 하나뿐인 여동생이 태어나자 여동생이 키우던 햄스터를 잔인하게 죽이고, 청소세제를 여동생의 손에 닿는 곳에 둬 여동생의 한 쪽 눈을 잃게 하는 등 엄마에 대한 분노를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자신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여동생에게는 항상 보여주던 에바 때문이었다. 엄마에게만은 무서울 정도로 다르게, 그렇게 커 가던 케빈은 결국 유일하게 좋아하는 활을 쏴서 아빠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 문을 밖에서 다 걸어 잠근 채 활로 친구들까지 죽이게 된다.

영화에서의 케빈은 악이다. 하지만, 그 악의 시작은 에바일지도 모른다. 케빈의 모든 잔인하고 악한 행동들은 엄마인 에바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에바에게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던 케빈. 매주 케빈의 면회를 가는 에바는 케빈과 한 장소, 한 공간에 있지만 둘의 시선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책임을 마주보지 못하는 에바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 때야 나는 에바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자 가장 큰 죄인 케빈의 엄마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색이 있다. 빨간색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빨강은 쾌락을 상징하는 동시에 고통을 상징하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의 시작, 자유를 즐기는 모습인 에바가 등장하는 장면도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이다. 모두가 빨간색으로 덮여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모두를 잃고, 그 모두를 빼앗아간 케빈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현재, 에바의 집에 누군가가 살인자라는 말과 함께 온 집과 차에 빨간색 페인트를 뿌려놓는다. 그 페인트 자국은 에바의 상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도중 들었다. 그 페인트 자국을 지워나가면서, 에바는 다시 자신의 삶에 케빈을 받아들이고, 케빈을 이해하려는 준비를 해 나갔기 때문이다. 일종의 속죄의 행동이었다. 물론 케빈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죄는 씻을 수 없지만, 케빈이 저지른 모든 일의 죗값을 케빈에게만 묻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빈이 18세가 되고, 소년원을 떠나 일반 감옥으로 떠나야 하는 날, 에바는 케빈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케빈에게 처음으로 눈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질문한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어. 이젠 너에게 묻고 싶구나. 왜 그랬는지 말해줘"라고 케빈에게 말한다. 그러자 케빈은 영화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 소년의 모습으로 "예전엔 왜 그랬는지 아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어"라고 대답한다. 그런 케빈을 에바는 말없이 안아 준다. 이 포옹으로 케빈은 정신이상자라는 내 결론은 사라졌다. 이 포옹 후 에바가 교도소를 걸어 나오고 밝은 빛을 보면서 영화는 끝난다. 케빈이 이렇게 자랄 때까지 모든 고통과 고민들을 감내해야 했던 에바에게 처음으로 케빈에 대한 희망이 생긴 장면인 것 같아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악이란 무엇일까, 또 모성애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악과 모성애 둘 다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만든 틀에 맞춰 정형화시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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