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내건 신종 마케팅 ‘럭키백 이벤트’ 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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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내건 신종 마케팅 ‘럭키백 이벤트’ 우후죽순
  • 취재기자 조정원
  • 승인 2015.03.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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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가격 지불후 구입한 박스 열어봐야 상품 확인...운 좋으면 "횡재"

대학생 김윤지(22, 부산시 남구 문현동) 씨는 봄을 맞아 옷을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저렴한 가격에 옷을 구입하고 싶었던 김 씨의 눈에 띈 것은 ‘봄봄봄 랜덤박스’라는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는 소비자들이 랜덤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가운데 구매하는 것으로, 김 씨는 4만 9900원짜리 랜덤박스를 하나를 샀다. 그 안에는 원피스, 바지, 스포티한 티셔츠 일종인 맨투맨 2개, 치마 레깅스(치마와 스타킹이 붙어 있는 옷) 등의 옷가지와 그 쇼핑몰에서 파는 지갑, 백팩, 필통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들은 지불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물품들이었다. 횡재였다. 김 씨는 “처음에 재미로 샀는데, 랜덤박스 구성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럭키백 혹은 랜덤박스 이벤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럭키백 혹은 랜덤박스란 해당 가게의 여러 상품을 무작위로 담아 일정한 가격에 판매하는 세트를 말한다. 그런데 럭키백은 구매 후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어떤 상품이 들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들어 있는 상품이 일정치 않다는 의미에서 ‘램덤(random, 무작위) 박스’라 불리기도 하고, 구매 가격과 비슷하거나 싼 물건들이 들어 있을 수도 있지만 비싸고 고급 물건들이 들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럭키(lucky, 행운)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의 일종의 ‘로또 심리’를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높이는 것이 바로 램덤박스 혹은 럭키백인 것이다.

▲ 온라인 의류 쇼핑몰(좌)과 잡화 쇼핑몰(우)에서 실시되고 있는 ‘랜덤박스 이벤트’를 알리는 홈페이지 홍보물 (사진: 취재기자 조정원).

소비자가 랜덤박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랜덤박스 안에 들어있는 상품들 가격의 합이 지불한 액수보다 비싼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김윤지 씨처럼 4만 9900원을 지불하고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랜덤박스는 ‘대박’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복불복’ 심리를 이용해 이벤트 형태로 물건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제일 처음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한 회사는 ‘스타벅스 코리아’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2007년을 시작으로, 2008년을 제외한 200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초 럭키백 이벤트를 진행했다. 스타벅스 럭키백 이벤트는 한정된 수량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벤트 당일, 매장의 오픈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진풍경을 이뤘다. 스타벅스에서 준비한 4만 9000원 럭키백 안에는 각 종 텀블러, 머그컵, 음료 무료쿠폰 등으로 채워졌으며, 그 종류나 수량이 램덤이어서 행운 여부를 갈랐다. 스타벅스 럭키백 이벤트에서 소위 ‘대박을 쳤다’는 한 네티즌의 럭키백 구성품 가격은 원래 지불한 가격의 3배였다. 그가 얻은 텀블러와 머그컵 가격의 합은 12만 8900원이었고, 음료 무료쿠폰 7장 가격만도 3만 원 정도였다.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다양한 곳에서 럭키백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가방과 지갑 브랜드 ‘루이까또즈’에서는 올해 1월, 처음으로 전국 백화점 매장과 코엑스 및 직영몰에서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했다. 루이까또즈 럭키백은 하나 당 14만원으로 이벤트 기간 동안 선착순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됐다. 럭키백 안 구성제품들은 이 회사 지갑과 가방들이었다. 럭키백 안 구성품들 가격은 최소 38만원에서 80만원 상당의 제품이라고 광고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올해 2월, 화장품과 바디케어 제품을 판매하는 ‘헬로에브리바디’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했다. 헬로에브리바디 럭키백은 하나 당 2만원으로 선착순이 아닌 이벤트 기간 동안 누구나 구매할 수 있도록 판매됐다. 럭키백 구성품 가격대가 최대 8만원까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럭키백을 주문했고, 이 회사가 대박이 났다는 소비자들의 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최근 럭키백 이벤트가 다시 진화하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럭키백을 사은품이나 판축물로 무료로 증정하는 형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경우도 역시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소비자들은 알 수 없다. 올해 2월, 여성 속옷 브랜드 ‘에블린’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매장 오픈 기념으로 매장 방문자 선착순 500명에게 무료로 럭키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제품을 사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파격 조건이었다. 럭키백 안에는 스타벅스 상품권, 외식 식사권, 목걸이 등 작게는 1만 원에서 최대 20만원 상당의 상품들로 구성돼 있었다.

올 3월, 외국어 학원 ‘해커스’는 회원이라면 무료로 참여하여 럭키백을 받을 수 있는 고객감사 럭키백 이벤트를 열었다. 그 안에는 월 토익 무료 수강권, 2015 해커스 다이어리, CGV 영화 예매권, 토익 기출문제와 핵심 자료집 등이 무작위로 들어 있어서 추첨을 통해 고객들에게 행운을 듬뿍 안겼다.

▲ 인터넷 강의업계에서 고객감사 이벤트로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했다(사진: 취재기자 조정원).

경성대 경영학과 안경관 강의전담교수는 럭키백 이벤트가 다양한 업계에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유는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럭키백 이벤트를 회사에서 시즌이 지난 상품이나 비인기상품의 재고처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할 수도 있고, 한 기업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시장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1등 기업이라 하더라도 후발기업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방어적 경쟁 전략으로 럭키백 이벤트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의 지적대로, 회사의 재고처리라는 생각 때문에 럭키백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도 있다. 잠시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 유학생 최정빈(24, 부산시 수영구) 씨는 며칠 전 럭키백을 구입한 지인에게 립스틱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최 씨는 립스틱을 딱 한 번 사용한 뒤로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이유는 립스틱 품질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이건 누가 봐도 안 팔린 재고품을 럭키백에 넣어 판 것이다. 럭키백 상품은 쇼핑몰의 재고품인지 모르지만 재질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임솔 씨는 경기도 수원 롯데몰에 있는 루이까또즈 매장을 들렀다가 우연히 럭키백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에 급하게 14만원짜리 럭키백을 샀다. 럭키백 대 여섯 개 중 어떤 것이 대박일까를 짐작하려고, 그녀는 하나하나 들어 봤다. 그녀는 가장 무거운 럭키백을 선택해서 집으로 돌아와 구성품을 보고, ‘신종 재고털이 수법’에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럭키백 안에는 3개의 지갑이 있었는데, 시중가 5만 원도 안 되는 상품들이었다. 임 씨는 “사용할 수도, 선물할 수도 없는 제품들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완전 속았다”고 말했다.

요즘 ‘럭키백’ 이벤트를 하는 곳은 인증된 유명기업과 쇼핑몰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개인적으로 옷을 파는 익명의 사람들도 랜덤박스 혹은 럭키백이란 제목을 내걸고 상품을 팔고 있어, 이에 따른 피해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개인 쇼핑몰 업자로부터 럭키백을 샀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은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다. 판매자가 “랜덤박스이기 때문에, 물건을 마음대로 넣었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실제 ‘랜덤박스’ 개인 판매를 보여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모습(사진: 취재기자 조정원).

익명의 한 네티즌은 중고사이트에서 한 판매자가 “새옷 같은 옷만 드려요. 게다가 덤까지 많이 드립니다”라는 럭키백 이벤트 글을 보고 랜덤박스를 주문했다. 하지만 실제로 받아보니, 박스 안의 니트에는 털이 일어나 있고, 검은 티셔츠에는 흰색 흔적이 묻어 있었다. 네티즌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환불을 받고 싶은데, 신고 가능한가요?”라는 글을 인터넷에 기재했다. 하지만 개인 간의 ‘랜덤박스’ 거래는 중고거래이기 때문에 ‘상거래법 및 소비자호보 관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환불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타당한 이유로 환불받고 싶어도 형사소송이 되지 않는다.

안경관 교수는 럭키백은 마케팅 용어로는 부적절하며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럭키백의 문제가 불거져 인기가 없게 되면, 기업은 또 다른 방식의 새로운 유형의 판매촉진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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