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덴마크, 뉴질랜드,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스웨덴 등 전 세계 20여 개국이 동성결혼제도가 합법화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정과 동성애 합법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한 퀴어 페스티벌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퀴어 페스티벌은 서울, 인천, 대구,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최근에는 폭력 사태까지 생겨났다. 페스티벌 참가자 300여 명을 향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던 1000여 명의 기독교 단체가 시위 중 길거리에 몸싸움을 하고 기름을 뿌리는 등 테러에 버금가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과격한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퀴어 페스티벌이 계속 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퀴어 페스티벌은 단순히 축제가 아닌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전 세계 인구 중 동성애자의 수는 약 10%에 달하는데, 이는 혈액형 AB형의 수와 맞먹는다. 10명 중 1명이라는 많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극소수라 칭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퀴어 페스티벌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존재를 나타내고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또한 퀴어 페스티벌은 축제라는 긍정적이고 특별한 활동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인식을 개선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퀴어 페스티벌은 퀴어 퍼레이드, 퀴어 영화제, 스페셜 이벤트, 메인 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퀴어 퍼레이드는 퀴어의 대표 색상인 무지개 색의 옷이나 장신구를 걸치고 행진하는데,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인정받고, 대중에게 자신들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행사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퀴어 퍼레이드를 할 때의 노출 문제로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행진 복장 노출이 과하다는 것인데, 과연 정말 노출이 불편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노출이 아닌 퀴어가 불편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퀴어 페스티벌의 첫 시작은 미흡하고 개선될 점이 많았다. 노출에 대한 부분도 그랬다. 초반 퀴어 페스티벌의 노출은 동성애를 억압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에 대한 그들의 표출이었지만, 이제는 그 의도가 벗어난 잘못된 표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있다. 우리는 실수가 아닌 그 실수를 고쳐나가려고 하는 점을 바라봐야한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산페르민 축제가 있다.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에 엔시에로 또한 1924년부터 동물권과 인간의 부상 혹은 죽음으로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최근에 들어서 스페인에서는 그 문제를 인정하고 소가 아닌 큰 공을 만들어 축제의 전통과 본연의 즐거움은 유지하되 일부 수정하여 다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퀴어 페스티벌 또한 그렇게 바뀌었고 앞으로 더 바뀔 것이기 때문에 일부분으로 페스티벌 자체의 존재 유무를 걸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퀴어 페스티벌의 노출이 음란하다고 여론이 있는데, 사실 음란의 기준은 누군가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가늠해 "이 정도는 괜찮다."라고 하는 것을 기준으로 일부를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 퀴어 페스티벌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분위기가 된다면 지금의 노출이 한 문화이며 표현방식이라 이해되지 않을까?
퀴어 페스티벌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성소수자들의 부모가 나와 지지하는 시위를 한다.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폭력과 폭언에 자식들을 보호하고 지지하기 위해 나왔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서글프게 짝이 없다. 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이런 폭력과 폭언을 감당해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성소수자들과 그의 가족들, 혹은 지지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존재는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며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 논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성소수자들의 수가 극소수라 하여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존재는 긍정과 부정의 대상이 아닌 그저 존재이다.
최근 제주도 퀴어 페스티벌에서 퀴어 페스티벌의 부정적 여론을 만들기위해 본인 스스로 트럭에 들어가 '퍼레이드 트럭에 사람이 깔렸다.'라는 가짜 뉴스를 만드는 일이 있었다. 퀴어 페스티벌이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고치도록 비판해야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부정하고 또 그런 인식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현재 노출에 대한 부분도 노출 그자체가 아닌 퀴어 페스티벌을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퀴어 페스티벌이 아닌 변화된 현재의 퀴어 페스티벌은 동성애에 한정하지 않고 한 문화로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진행되고 있지만 계속해서 부정적 인식으로 비난만 받고 있다. 과연 이 비난이 퀴어 페스티벌의 잘못된 점만을 가지고 하는 걸까요? 퀴어 페스티벌의 잘못된 점은 개선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해서 긍정적인 면이 없다고 해선 안 된다. ‘동성애는 우리 주변에 있고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은 퀴어 페스티벌를 통해 더 빠르게, 긍정적으로 퍼져가고 있다. 그렇기에 퀴어 페스티벌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퀴어 페스티벌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된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다. 차별에 대한 예민함이 커질 것이고,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약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퀴어 페스티벌은 현 사회의 약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페스티벌은 계속 되어야 한다. 퀴어 페스티벌을 통해 짧게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면 퀴어 페스티벌에 대해서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퀴어 페스티벌 반대라는 말 속에 숨겨진 성소수자들의 존재 부정을 인정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바꾸려 노력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