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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낙태죄 폐지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이유/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우리 사회의 숨은 현안을 꼽으라면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 논쟁도 그 하나에 속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2월 낙태시술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소원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에도 낙태죄 폐지는 헌재의 심리 대상이 된 바 있다. 당시엔 4 대 4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는데, 세월이 그새 꽤 흐른 데다 임기만료에 따른 헌법재판관 교체로 헌재에 진보 성향이 짙어지면서 새로운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한다.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리를 계속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데, 헌재와 여론에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한 여성들의 시위가 올해 초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 청계천과 보신각 일대에 수천 명의 여성들이 모여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고 한다. 소수이지만 남성도 참가한 모양이다.

낙태죄의 폐지는 곧 임신중절 수술의 자유화·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중절 수술을 한 의료인들에 대한 처벌도 폐지된다는 뜻이다. 형법 269조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270조 제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규정은 그렇지만 워낙 임신중절 수술이 보편화(?)돼 있으니 해당 법조문 대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 중에서 재수(?)없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자격정지 정도가 현실상의 처벌이다. 그러니 사실상 사문화에 가까운데도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을 범법자로 굴레 씌우는 법 규정이 부당하다는 인식 때문일 거다.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 이유로 가장 먼저 드는 것이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일 터. 낙태 합법화에 대한 입장이 한 인간을 두고 진보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의 하나라는데, 평소엔 내 나이 치고는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터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대목에선 나는 진보주의자가 아닌 모양이다. 낙태 자유화에 선뜻 찬성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정확하게 내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라면, 낙태죄 폐지에 관한 한 판단 유보라고 할까.

내가 아는 범위에서 보면, 낙태죄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거는 여러 가지다. 우선 임신이 여성 혼자만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임신에 따른 법률적,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책임 모두가 여성에게만 들씌워지는 게 과연 정의로운가 하는 것. 글쎄, 나도 이 주장 자체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행위는 남녀가 공동으로 하는 일이고, 공동의 책임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단지, 남녀의 신체구조의 차이 때문에 여성이 수정체를 뱃속에서 키우고 출산의 고통을 겪는 것일 뿐.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선 임신과 출산, 양육의 문제에서 여성에게 과도하고 일방적인 짐을 지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남녀가 사랑해서 동침에 이르렀는데 서로의 마음이 식어서, 혹은 남성의 일방적 배신으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혼인에 이르지 못한 미혼모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경제적 부담은 물론 여성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손가락질은 또 어떻고.

그 뿐만도 아니다. 이를테면 성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어려운 미성년자들 사이에서 임신이 일어났다면, 사내애들은 대개 거기서 빠져 나가 버리고 여자애들만 덤터기 쓰는 경우도 적잖을 거다. 성폭행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고. 원치 않은 아이 때문에 한 여성의 미래가 망쳐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현행법은 여성에게만 낙태의 죄를 묻는 것이어서 여성의 입장에선 매우 부당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렇다고 그 문제를 오로지 ‘낙태의 자유화’라는 하나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온당한가 하는 데 이르면 나는 회의적이다. 가톨릭 등 종교계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태아의 생명권 문제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태아가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낙태죄 문제와 관련해선 매우 중요한 논점의 하나일 테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살인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가. 이를테면, 출산 직전의 태아와 출산 직후의 영아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시간 시차로 탯줄에 매달려 있으면 인간이 아니고, 탯줄을 자르면 인간인가? 의학적으로는 시술이 힘들겠지만, 논리적으로만 따져보면 출산 한 시간 전의 태아는 지워도 아무 상관이 없고 모체 밖으로 나온 영아는 없애면 살인죄가 된다는 건데 글쎄, 나로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이다. 나아가 잉태 직후의 태아와 출산 직전의 태아의 차이를 나누는 기준은 또 무얼까.

최소한 유보적으로 규정해서, 태아를 모태 속에서 모체에 의지해 생명으로 스스로 분화해 가는 '인간의 잠재태'라고 해 두자. 인간으로 인정하든, 인간의 잠재태로 생각하든 태아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존엄한 존재가 아닐까. 이 세상에서 숨을 쉬는 우리 모두가 바로 태아의 시기를 거쳐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태아와 인간을 두부모 자르듯, 여기까지는 사물, 여기서부턴 인간, 하는 식으로 별개의 존재로 나눌 수는 없지 않느냐는 거다. 글쎄, 만약 내 부모가 어떤 사정으로 태아 상태인 나를 지웠다면, 나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적출돼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거고, 지금 이런 글도 쓰지 못했을 거 아닌가.

그렇다면, 임신한 여성에게 지워지는 법적,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인 부담의 해소라는 원칙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원칙이 충돌하면 어느 것을 더 크게 보고,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길 터. 일반적으로 여성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은 전자를, 종교인이나 보수주의자들은 후자를 더 우선시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더러 말하라면,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태아의 처지에서 보면, 잉태된 것 자체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사히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는 것도 부모 쌍방(혹은 일방)에게 전적으로 매여 있다. 자신의 생사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면, 부모 쌍방의 사랑의 행위에 의해 생겨났다가 부모 쌍방(혹은 일방)의 결정으로 일방적으로 지워지는 건 태아의 입장에선 너무나 가혹한 행위가 아닌가. 글쎄, 약간 우스개 섞어 말하자면, 태아에게 입이 있어 “당신네들 좋아서 나를 만들어 놓고, 당신네들 힘들다고 나를 멋대로 없애요? 내가 당신네 뱃속에 자라는 악성 종양이에요?”라고 항변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이 세상을 사는 인간 누구나 부모의 사랑의 행위로 잉태돼 부모의 선의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존재다. 먼저 이 세상의 빛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후세대를 마음대로 지워도 될 천부적인 권리를 과연 우리가 타고났는지는 의문이다. 재수 좋게 먼저 세상의 빛 본 자들의 이기주의가 아닌가 싶기도 한 거다.  태아를 지우는 문제를 '자기 신체의 자기결정권'과 결부시킨다면, 결국은 태아를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자기 신체의 부속물, 혹은 자신의 소유물로 본다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가 되묻는다면 그저 궤변이라고만 웃어 넘길 수 있을까. 

'태아에 대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존재는 누구도 아닌 모체다. 그 모체가 태아를 포기한다고 할 때는 과연 어떤 심정이겠으며, 어떤 극한 조건이겠느냐. 오죽하면 모체가 태아를 포기한다고 하겠느냐, 국가나 제3자, 남성이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니다‘는 항변도 있을 수는 있겠다. 한편 옳은 말이지만, 그게 낙태의 자유화를 가늠할 유일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져야 할 일방적인 부담을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도외시하는 것도 안될 일. 원칙적으로 말해서, 태아의 부성도 모성만큼 똑같은 책임과 부담을 져야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나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대목도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인습적 인식의 근본적 변화, 국가와 사회의 보호시스템의 정비 등등이 따라야 할 터. 어느 종교단체처럼 혼전순결 운동을 펼치자는 건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책임하게, 아무런 피임 대책도 없이 남녀가 사랑의 행위를 벌이는 요즘의 세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겠다.

그러고도 불가피하다면, 원칙적으로는 '태아의 생명권' 과 충돌할 수도 있겠지만,타협책(?)의 하나로, 선택적으로 낙태가 가능한 범주를 지금보다 확장할 수도 있겠다. 성폭행이나 산모의 건강 위협 같은 현행의 사유에 더해 미성년의 임신을 포함시킨다거나, 임신 당사자의 일방인 남성에게도 법적, 경제적 책임을 부과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내 생각의 요지를 정리하자. 임신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해서 여성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모든 여성들에게 암세포 잘라내듯 태아를 지울 권리를 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눈 녹듯 해결되는 '요술 지팡이'가 되는 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나아가, 낙태자유화가 '여성 인권'이란 단 하나의 범주로만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을 중요 관점으로 포함시킨 가운데, 인간의 유적(類的) 존재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성찰, 사회 경제적인 남녀평등, 국가의 보호시스템 등등 다양한 문제와 결부해 매우 신중하고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할 문제란 거다. 사실상 사문화에 가까운, 그리고 지금도 연간 수십 만 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는 마당에, 낙태에 대한 최소한의 심리적 방어기제인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 ‘태아에 대한 죄의식 없는 살해’라는 풍조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엔 좀 더 신중한 고민과 고려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당분간은 좀 더 진지하게 사회적 논의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아직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임신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젠더 감수성이 없는 반여성주의자, 꼰대 소리를 들어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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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담론6 2018-10-01 01:42:23

    ...게다가, 편집국장님. 지난 헌재에서 낙태죄 폐지여부가 4:4였으므로 헌재의 입장은 '낙태유보론'이 아니라 '낙태반대론'이었습니다. 결국 낙태죄가 유지되었으니까요.
    설마, '낙태유보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계신건 아니겠지요.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니 얼릉 입장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준비되지 않으셨다면 기고를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낙태반대론'을 '낙태유보론'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분법을 발명한 것은 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나, 이 주제에는 이분법이 적용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삭제

    • 낙태담론5 2018-10-01 01:28:20

      덧붙이자면, 형법으로 금지하는 무언가를 ' 최소한의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낙태죄의 규정은 '낙태에 대한 최소한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니라, 최대한의 사회적 억제기제'입니다.   삭제

      • 낙태담론4 2018-10-01 01:23:18

        그러나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당 임부를 형벌로써 겁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낙태반대론자에게는 훨씬 더 편리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인류를 위한 방법일 수는 없습니다. 한 여성의 자유를 희생시켜 이를 발판으로 지속될 사회라면 저는 과감히 그러한 구성원에서 탈퇴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믿고, 응원하는 대한민국은 한 개인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침해해서 이뤄질 만큼 저급하고 단순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삭제

        • 낙태담론3 2018-10-01 01:22:36

          낙태가 반드시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여성의 신체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다른 사람이나 정부가 가질 수는 없습니다.
          낙태를 반대한다면, 지금 낙태를 고민하는 바로 그 여성에게 다가가 설득과 위로의 과정을 거칠 수 있습니다. 보다 좋은 사회적 제도를 준비하고 보다 많은 기부와 희망을 선물하여 낙태를 결심한 한 여성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신은 한 태아의 생명을 지킬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기쁜 마음으로 잠들 수도 있습니다.   삭제

          • 낙태담론2 2018-10-01 01:21:15

            낙태반대론자들이 그 근거로써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한다면, ‘강간에 의한 중절합법’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현행법이 ‘강간에 의해 잉태된 태아의 생명권’만을 보호하지 않는지에 관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강간의 피해자에게 해당 태아의 출산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할뿐더러, 애초에 피해자는 어떤 행위로부터 고통 받은 사람이지 어떤 행위의 결과를 책임져야 할 주체가 아니니까요.   삭제

            • 낙태담론 2018-10-01 01:20:10

              모자보건법에 따라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 낙태가 허용되는 근거는 “임부의 자기결정권 >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부등식입니다. 즉 낙태에 있어 대립되는 두 권리는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인데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아의 생명권은 언제나 절댓값을 갖습니다. 태아가 잉태된 사유가 자유의사에 의한 성관계였든 강간에 의한 성관계였든 적어도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가치가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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