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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씨 특강의 여운...나도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얼마전 한 조찬회에서 오지탐험가로 명성이 높은 ㈜사라토가 회장 도용복 씨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오지 탐험가’라 해서 햇볕에 그을린 새까만 피부에 등산복 같은 아웃도어 차림을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흰색 재킷에 흰색 바지, 그리고 백구두를 신은 말쑥한 노신사였다. 첫 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사업가나 탐험가가 아니라 연예인이라고 하는 게 딱 어울릴 듯 싶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70세 고희를 훌쩍 넘겨 내년이면 77세 희수(喜壽)라 하는데 흰 머리칼 하나 없는 정정한 용모에 우렁찬 목소리, 조찬회장의 강단과 청중석을 장악해나가는 정력적인 모습이었다. 한 참석자는 “아니! 세월이 저분에게만 비켜간 모양”이라며 부러워했다.

강연 내용도 매우 재미있고 유익했다. 56세부터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171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문명의 혜택을 미처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오지의 원주민들과 며칠간씩 함께 먹고 자고 어울리며 생활했다는 것이다. 한 청중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들과 친숙해지고 또 불의의 위험은 어떻게 회피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만국 공통어 ‘브라보’만 외치고 접근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했다. 또 그들의 음식을 함께 먹고 그들과 어울려 함께 잠을 자면 보통은 경계심을 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도 오래동안 오지를 돌아다니며 그들과 어울리다보니 이제 뱀, 애벌레, 개구리, 심지어 개미핥기 같은 ‘특이 요리’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젊어서 공부를 제대로 못해 나이들어 뒤늦게 공부를 한다는 그였지만 해박한 지식과 예술적 소양을 과시했다. 예컨대 쿠바 여행에서 하바나의 바닷가에서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모히토 칵테일을 한 잔 하면서 그의 문학을 음미했다는 그는 헤밍웨이의 불후의 명작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한 구절을 직접 읊조렸다. 또 어렸을 때 <명심보감>을 배웠다는 그의 한학 실력도 놀라웠다. 사람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는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 대중여론의 위력을 나타내는 ‘중구삭금(衆口鑠金)’ 등의 어려운 사자성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즉 “근면한 사람에게는 하늘 아래 어려운 일이 없다”라든가 ‘인일시지분(忍一時之憤),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 즉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 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등의 경구는 자신이 직접 화이트보드에 한자를 써가며 설명했다.

무엇보다 청중들에게 큰 울림을 준 것은 그의 인생관이었다. 젊었을 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지만 운 좋게 시드마니를 마련했다는 그는 귀국 후 각종 사업을 벌여 돈을 벌 만큼 벌었다고 한다. 골프용품업체 ㈜사라토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고엽제 후유증을 앓게 됐다. 이러다가 언제 세상을 하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몰래 감춰놓았던 음악공부와 여행을 시작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내 시간 내 마음대로’를 모토로 정했다. 그러기를 20여 년. 그는 “50이 다 돼서 음악을 시작했다”면서 ‘음악이 내 영혼을 적셨고 오지탐험이 내 영혼을 살찌게 해 나는 다시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여운이 컸다. 조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과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러저리 복잡하게 뒤얽힌 인연의 거미줄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하게 붙잡혀 있는 신세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나도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한번 살아가려고 몸부림 쳐볼까 하는 욕구가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올랐다. 물론 다시 일상에 돌아오니 그 순간적인 반항심리는 다 사그러 들었다.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생활걱정, 아들 걱정, 손주 걱정을 했고 책상에 앉아 늘 하던대로 강의 준비에 한나절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아침 조찬회에서 받았던 감동과 일탈은 일순간 내 마음을 헤집고 간 가을 바람에 불과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어”라는 묘비명을 남겼다고 한다. 오역 논란은 있지만 세계 최고 독설가의 명성에 걸맞는 표현이다. 그는 분명 우물쭈물 살지는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큼 세계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런 묘비명을 썼다는데 지금 흐지부지 살고 있는 나는 어떤 묘비명을 남길 것인가? 아예 화장해 세상에 다녀간 흔적조차 없애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하는 것이 옳겠다는 좀 허탈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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