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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 보디빌더, 헬스 트레이너로 코리안 드림에 도전경성대 체육학 대학원생 리네로 씨... 유창한 한국말, "배우느라 고생 많았어요" / 심헌용 기자

“좋아하는 직업을 택하면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자는 말했다. 자신이 즐기는 일이 직업이 되어야 행복하다는 의미인 듯하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연봉과 안정성만 보고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낯선 한국 땅에서 그것도 외국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공자의 말처럼 살고 있다. 7년 전부터 유학생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헬스 트레이너 겸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인 크리스티안 리네로(27) 씨가 그 장본인이다.

인도네시아 인 크리스티안 리네로 씨가 자신이 다니는 경성대 구내 카페에서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심헌용).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토박이인 리네로 씨는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2010년 6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전자와 기계 공학 회사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취업을 꿈꾸며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여러 정보를 찾던 그에게 외국인 유학생 장학 제도,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잘 돼 있는 경성대학교가 눈에 띄었다. 자카르타에 경성대 유학원이 있었던 것. 같은 해 7월 인도네시아 경성대 유학원에서 실시하는 경성대 입학시험을 통과하고, 한국어 수업을 3개월 받은 후, 리네로 씨는 드디어 2011년 3월 경성대 메카트로닉스 학과에 무사히 입학했다.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1학년 생활은 전공 수업 첫 시간부터 삐걱거렸다. 교내 한국어학당을 다니고 있었지만 어려운 용어가 즐비한 전공 수업은 리네로 씨에게 매우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는 “나의 노력 여부에 따라 한국생활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주변의 모든 한국 친구들에게 다가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리네로 씨가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실천한 일 중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하나는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한국인 간의 언어 교환 모임 ‘랭귀지 캐스트’라는 모임의 운영진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한국인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점차 한국어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주변의 한국 사람들이 서툰 한국말을 듣고 비웃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한국인 여자 친구를 사귈 정도로 그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해졌다. 그는 “나의 한국어 실력을 놀렸던 사람들이 다시는 비웃지 못하도록 악착같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리네로 씨가 한국생활에서 힘들었던 또 다른 점은 취할 때까지 마시는 한국 대학의 술 문화였다. 그는 신입생 때부터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떤 술자리든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접한 한국의 폭탄주와 술 게임은 그에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술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취한 척하기, 소주잔을 물로 채우기 등 술자리에서 최대한 술을 안 마시는 요령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술을 안 마실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알아내고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을 통해 언어적, 문화적 문제를 극복한 리네로 씨는 2015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에 부산시 기장에 있는 자동차 시트공장 R&D 부서로 취직했다. 하지만 불규칙적인 근무 시간, 정신없이 바쁜 회사 생활, 그리고 한국의 수직적인 회사 문화가 자신과 맞지 않아 2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퇴근 이후에도 업무의 연장이 계속되는 것 같고 내가 회사라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느껴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2016년 초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가서 자신의 진로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 때쯤, 뜻밖의 연락이 그에게 왔다. 2014년 대학교 4학년 때 단기 계약으로 일한 국제 컨벤션 대행사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안이 온 것이다. 그는 다시 한국으로 와서 2016년을 대행사에서 일하며 굵직한 행사들을 잘 수행해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 제의를 하였으나,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에 비전이 확실하지 않았던 그는 정규직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고, 2017년 1월 퇴사했다.

2016 부산 국제 금융 포럼에서 대행사 동료들과 함께한 리네로 씨의 모습(사진: 크리스티안 리네로 제공).

회사를 그만둔 리네로 씨의 결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헬스 트레이너의 꿈을 갖게 한 시발점이 됐다. 어렸을 때 허약했던 자신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그의 체격은 굉장히 좋았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몸이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대행사 퇴사 후 보디빌더 대회 출전을 단기간 목표로 세웠다. 출전에 필요한 몸을 만들기 위해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체육관을 찾아가서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그는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 나갔다. 그는 2017년 1월부터 3개월의 운동 기간을 거쳐 2017년 4월 1일과 2일에 열린 ‘니카 코리아 스포츠 페스티벌’ 보디빌딩 부분에 출전했으나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했다. 리네로 씨는 “보디빌더 대회에 참가한 그 날이 그동안 한국에서 해왔던 어떤 활동들보다 의미 있었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 날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5개월간 혹독한 체력관리를 하고, 작년 9월 9일에 열린 ‘ISMC 머슬 바디코리아 선발대회’ 스포츠 모델 부분에 출전해 당당히 3위에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후 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현재는 부산 북구 화명동 미미 헬스클럽의 트레이너로 회원들에게 개인 PT 및 재활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2017년 9월 9일에 열린 ’ISMC 머슬 바디코리아‘ 대회에 3위로 입상한 리네로 씨의 모습(사진: 크리스티안 리네로 제공).
리네로 씨가 부산 화명동 미미 헬스클럽에서 회원에게 PT를 가르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심헌용).

2번의 대회 출전, 한 번의 입상까지 한 경험들에 자신감을 얻은 리네로 씨는 헬스 트레이너로서 학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은 본인이 학부를 졸업한 경성대의 스포츠 학과 대학원. 왜 수도권의 좋은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스포츠 건강학과 최승준 교수와 상담이 경성대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였다고 답했다. 리네로 씨는 “다른 학교 교수님들과 달리 최 교수님은 진지하게 나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의 진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셨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대학원 3학기를 보내고 있으며, 최 교수의 지도 아래 골다공증 재활 운동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리네로 씨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체육관을 차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운동법을 가르치는 게 나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테핑 스톤(stepping stone)’이란 말을 여러 번 썼다. 징검다리란 뜻을 가진 이 말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움이 되는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리네로 씨가 그동안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그에게는 귀중한 스테핑 스톤이 됐다. 이제 그는 꾸준히 노력해서 꿈을 향해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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