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상(空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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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상(空想)
  • 편집위원 신병률
  • 승인 2015.02.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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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상은 현실적이 아니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마음대로 상상함을 말한다. 즉 실현될 가망이 없는 상상이 공상이다. 하지만 공상과학소설 속 공상들이 상당 부분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는 단순한 공상으로 치부되었으나 시간이 지나 현실로 실현된 공상도 많다. 오늘의 공상이 내일에도 여전히 공상에 머물러 있으라는 법은 없기에, 가까운 미래에 꼭 실현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공상의 한 자락을 늘어놓아 보려한다.

“분업이 시작되자마자 각자는 특수하고 상호배제적인 활동영역을 갖게 되고, 그것이 각자에게 강요되고 각자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가 그의 생계수단을 잃지 않기 원한다면 그는 사냥꾼이거나 어부거나, 양치기거나 비평가여야 한다. …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배타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는 그가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든 능숙해질 수 있다. … 아침엔 사냥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소를 치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칼 마르크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했던 말이다.

대학 다닐 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훗날 내 아이가 대학생일 때쯤에는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하곤 했다. 개인이 기계의 부품처럼 소모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재능과 취미를 발휘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내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하지만 내 아이와 또래의 아이들이 내가 대학생 때 소망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내가 대학생일 때보다 입고 먹는 것이 더 다채로워지고 스마트한 기계들이 제공하는 편익을 더 많이 누리고 있긴 하지만, 내 아이의 대학생활이 나의 대학생활보다 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신봉했던 나는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고 그 대안은 공산주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마르크스의 예언이 실현될 거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보면 당시 나의 상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공상이 아니었으나, 자본주의가 붕괴되기는커녕 구소련이 붕괴됨으로써 나의 상상은 결과적으로 공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미래상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당시의 공상과 비슷한 공상을 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모든 국민 각자에게 그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현재의 기준으로 매달 150만 원 정도의 기본 소득을 보장해준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멋있게 변할까?’라는 공상이다. 그럴 수 있다면 송파 세모녀의 자살과 같은 비극적 뉴스가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입시지옥이나 취업전쟁이라는 단어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계형 범죄들도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따위의 행복한 상상을 한다. 기본 소득이 적절하게 보장된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들과 같은 부정적인 사회현상들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사회현상들이 확산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친절해지고 품위 있어질 것도 같고,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각자 자신의 취미에 맞는 분야에 도전해 재능을 꽃피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나의 공상은 실현 가능할까? 현재 우리나라 인구가 약5100만 명이니 이들에게 매달 150만원씩을 지급한다면, 매달 76조 5000억 원이 필요하고 1년이면 918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우리 정부의 예산이 375조원(그 중 복지예산은 115조 7000억, 30.8%)이라고 하니, 예산을 몽땅 쏟아 부어도 한참 모자란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상이 분명해 보인다. 세금 체계를 개선해서 지급된 기본 소득 150만원의 절반을 다시 세금으로 환수한다고 가정해도 1년에 459조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1년 예산에 좀 더 근접하긴 했지만, 여전히 실현가능성이 없는 공상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약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보자.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될 것이라 한다. 1인당 1년 소득이 3,300만원이란 얘긴데, 이를 한 달 소득으로 환산하면 1인당 275만원의 소득이 발생한다.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한 달에 150만원씩 기본 소득을 지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스위스에서는 모든 성인에게 월 300만원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법안이 2013년 발의되어 2016년 국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라고 한다.

사실 경제학에 문외한인 까닭에 내 공상이 실현 가능한지 진단할 능력이 내겐 없다. 아마 당장 시행할 여력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입시지옥, 청년실업, 불평등, 양극화와 같은 우리나라의 병폐는 결코 치유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가지지 못한다면, 결코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앞으로 1%의 창의적 천재가 99%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 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창의적인 1%의 천재가 될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꽃도 피워보기 전에 도태되고 말 것이라 확신한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스스로 공부하게 될 것이고, 그런 토대를 갖추어야만 창의적인 1%의 천재가 싹이 잘리는 일없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부지런히 일만하는 개미의 시대는 가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배짱이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정신노동까지도 급속도로 기계의 노동으로 대체되고 있기에 앞으로 개미형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결국에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배짱이형 일자리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문화, 예술, 스포츠, 오락, 관광 등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분야를 주도해야 세계를 선도하게 될 것인데, 이를 위해서도 적절한 기본소득의 보장이 필수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되기를 소원했던 것은 탁원한 선견지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 대학 때의 공상은 결국 공상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상으로 끝나지 않았고 현실이 되는 기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혜를 모아 국민 모두에게 적절한 기본소득을 보장할 방안을 하루 속히 찾게 되기를 소망한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만이 거의 유일한 돌파구가 아닌가 싶다. 적절한 기본소득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가 성장해야 할 터인데, 기술력은 미국 독일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고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과 같은 신흥경제대국에 턱밑까지 쫓겨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나라의 처지에서는 결국 해답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리스크를 해결해서 북한의 풍부한 노동력과 그 가치가 1경이 넘는다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면,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을 위한 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과 평화협정이 채결된다면, 북한 개발에 나설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얼마나 급등할까? 그 기업들은 북한 진출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할까? 북한 진출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도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북한 진출로 발생하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으로 회수하고 여기에 세금제도를 투명하고 공평하게 개혁한다면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적 공상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각론에서 허점이 많은 글일 것이라 생각한다. 개떡같이 얘기해도 현명한 독자들께서 찰떡같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말 나온 김에 끝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만 더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나는 향후 선거에서 적절한 기본소득을 보장할 실현가능한(혹은 실현가능해 보이는) 방안을 제시하는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 정당이 비록 내가 여태껏 단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는 새누리당일지라도 그 정당에 투표하겠다. 어깨띠를 두르고 선거운동을 할 용의도 있다. 아무튼 나의 이런 공상이 이번에는 꼭 현실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본다. 거기에 우리나라와 미래 세대의 명운이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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