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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는 내되, 평화롭게 풀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최원열
  • 칼럼니스트 최원열
  • 승인 2018.09.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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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최원열

온 나라를 끊임없이 용광로처럼 달궜던 무더위가 물러서면서 어느새 풋풋한 가을 냄새를 풍긴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조금 있으면 강서 들녘이 울긋불긋 물들고, 코스모스하며 들국화를 비롯한 가을꽃들이 제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을 터이다. 이처럼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떠난다. 그저 자리를 내줄 뿐. 떼를 쓰는 법이 없다.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 유연하고 지혜로운 흐름의 물결이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자연의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우리는 ‘존엄하게 살 권리’를 잃었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치고, ‘미투’를 비롯한 사회 폭력이 난무하면서 ‘나와 너’를 갈라놓는 증오의 벽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가슴에 쌓여만 가는 화(火)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거리에 나서 ‘살려달라’고 목청껏 외쳐보지만 메아리에 불과한 이 세상. 그 절박한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특히나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심정은 바싹 타들어간다.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이제 사회의 중심축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에게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소주병을 들이키며 애써 화를 삭일 뿐. 그런데 말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이런 소주에도 세금을 매길 궁리까지 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화를 부채질하는 정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지난 1일 청와대에서는 ‘전원회의’란 이름의 생소한 모임이 열렸다. 이날 당정청 핵심 인사들을 ‘전격적’으로 불러 모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 표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대통령은 이날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는 ‘치킨 게임’을 선언하면서 적대세력(보수우파를 지칭한 듯하다)을 ‘불의’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타협이나 절충은 없다는 결기를 보인 거다. 적을 전멸시킬 때까지, 또는 백기 투항을 할 때까지 뿌리를 뽑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정의’란 단어. 정권 입맛대로 해석하기에 참 좋은 말이다. 전두환 정권도 ‘정의 사회 구현’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초강경 메시지는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는 잔뜩 날선 칼을, 다른 손에는 고장난 저울을 들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5000만 국민을 보듬어야 할 대통령이 이런 조잡한 흑백논리를 내세우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지지층 국민만을 위한 대통령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국민들을 대립시키면서도 한데 묶어주는 기술이 정치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의 정치력은 낙제점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뿐만 아니다. 여당 원내 대표는 정기국회를 두고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100일 전투’라고 표현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갈 장수의 비장한 각오처럼 들린다. 국회를 원만하게 진행해야 할 집권 여당 대표의 말이 이 정도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딱히 자랑스럽게 내세울 게 뭐 있나. 아니 온갖 경제지표들이 내리막길을 치닫는 그 아찔한 풍경에 국민들은 가슴 졸이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런데도 ‘마이웨이’를 외치며 오불관언이다. 당장 숨이 턱 막히고 죽을 지경인데 내년까지 기다려 보란다, 글쎄. 지금 국민들은 ‘화병 증후군’에 단단히 걸렸다.

'힐링(치유)의 스승' 틱낫한 스님. 그는 인생의 화두로 화와 행복을 들었다. 스님이 제시한 해결책은 이 순간 '깨어 있기'였다. 그게 나를 고요하게 하고,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거다.

화, 만병과 고뇌의 근원이다. 스님이 말했다. 좋지 못한 에너지로 자비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자비를 태워버리는 불이라고. 그러면서 일상 삶에서 자비의 힘을 끄집어내 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깨어 있기’라 했다. 그 필요충분 조건으로 경청과 자애를 들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참회케 하는 것. 내면의 자애로움을 일깨워야 한다는 틱낫한 스님의 명징한 가르침이 가슴 속을 파고 들어온다.

그런데 스님 말씀에는 또 다른 화두가 들어있다. 화는 동시에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화를 풀지 못하면 화병이 생기듯이, 제대로 풀면 명약 중의 명약이 된다는 뜻이다. 화의 씨앗을 건드리고 있는 원인을 없애라는 말씀.

그렇다. 화는 증오나 폭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감정이다. 그것은 내면에서 압력밸브를 열어 부정적 에너지를 방출하는 조절장치다. 그러니 화를 꾹 눌러 참는 건 결코 이롭지 못하다. 부정적 요소를 비워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위대한 치유자가 바로 화라 하겠다. 문제는 화를 푸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다. 화를 평화롭고 긍정적으로 풀 것이냐, 아니면 비이성적으로 폭발시킬 것이냐. 그 선택권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화를 평화롭게 풀지 못해 야만이 설치는 살벌한 세상이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것들이 모두 자비를 태우는 ‘불(火)’이 아니고 무엇이랴.

화를 분출시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화풀기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눈앞의 만족을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야만사회의 전형이다. ‘매순간 깨어있으라’는 스님의 죽비소리를 마음 깊이 새겨들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에게 경청과 자애라는 그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

칼럼니스트 최원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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