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문화에도 인디 바람, ‘독립출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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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문화에도 인디 바람, ‘독립출판’을 아시나요?
  • 취재기자 우웅기
  • 승인 2015.02.15 17: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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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으로 기획, 편집, 인쇄, 제본..."상업성 탈피, 개성의 시험장"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박고은(23) 씨는 최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다. 그녀는 영화 감상 후 영화에 대한 여운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이 영화를 좀더 분석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20년 전에 나온 이 영화를 다룬 영화 관련 최신 도서를 발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박 씨는 문화잡지 <PAPER>에서 기성 주류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책과는 달리 아무나 내용이나 형식을 자유롭게 출판하는 ‘독립출판물’이 있다는 내용을 읽게 됐다.

박 씨는 혹시 독립출판물 중애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룬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파는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교대 근처에 있는 ‘프롬더북스(From the books)’라는 서점을 수소문 끝에 찾아서 방문했다. 박 씨는 그곳에서 영화를 다룬 독립출판물 <The summer>를 발견했고 그 책 안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룬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구입했다. 박 씨는 “내가 읽은 이 영화에 관한 독립출판물은 색다른 시각과 심층 분석을 통해 영화에 새롭게 다가갔다”며 “독립출판은 소수 의견을 위한 적절한 무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이란 대형 출판사를 통한 통상적인 책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기획, 편집, 인쇄, 제본해서 책을 출판하는 것을 말한다. 독립출판물은 기성 주류 문화화는 달리 상업성을 떠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미술 등을 다루는 것에서 비롯된 ‘인디(indie)문화’의 일종이라고 한다. 여기서 ‘인디’란 독립을 뜻하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의 약자다. 결국 출판계의 인디문화가 독립출판인 셈이다. 독립출판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천지원 씨는 독립출판을 “상업 출판과는 달리 1차 목표가 판매를 통한 수익창출이 아니라 스스로가 생각한 무언가를 남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독립출판물 <왜 그렇게 살아요?>의 속 모습. 책 모양, 인쇄 상태, 독측한 제목 등이 아마츄어적이고 솔직한 면이 있어서 친근감을 준다(사진: 취재기자 우웅기).

기존 출판물들은 출판사를 통해서 작가의 작품이 편집자와 함께 다듬어져서 ‘책’의 형태로 만들어져 전국의 서점에 배포된다. 독립출판물은 작가 자신이 기획하고, 인쇄해서, 배포까지 전부 책임진다. 독립출판물은 책 발행 과정에서 작가 이외의 남이 개입하지 않는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남이나 외부 눈치 보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래서 독립출판물은 진솔함이 강점이다.

독립출판물 내기 위한 법적 절차는 없다.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아무 인쇄소를 찾아 원고를 넘기고 책을 찍어 내면 그게 곧 책이다. 어떤 작가는 컴퓨터 프린트로 원고를 인쇄한 다음 손으로 일일이 풀칠해서 ‘책처럼’ 만들기도 한다.

기존 서점에 책으로 판매되기 위해 납품하려면, 책을 인쇄해서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도서번호)을 등록해야 한다. ISBN이란 국제적인 규약에 의해 책에 대한 일종의 주민등록제도다. ISBN을 얻기 위해서는 출판사가 책을 완성해서 국내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신청하면 된다. 따라서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모두 고유의 ISBN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립출판물은 ISBN 등록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과의 근본적인 분기점이다. ISBN 등록은 검열제나 허가제의 일환이 아니고 책의 존재를 등록해서 책의 유통, 검색, 분류 등에 활용하는 제도다. ISBN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로 책을 출판하는 독립출판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독립출판물은 어디에 등록되지 않아서 책의 존재가 공식화되지 않았고, 따라서 일반적인 도서 검색 시스템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되지 못한다.

▲ 서현임 씨의 독립출판물 <해무바>(사진: 취재기자 우웅기).

회사원인 서현임(27) 씨는 작년 대학 재학 시절에 <해무바>라는 채식 요리책을 독립출판 한 적이 있다. 서 씨가 <해무바>를 쓴 이유는 채식이라는 분야처럼, 쉽게 알려지지 않고, 소수만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서 씨는 “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생각들과 책을 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기성 출판사의 문턱이 높아 독립출판했다”며 “아무 제약 없이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연필 깎기에 대해 적은 독립출판물 표지다. 주제가 자유롭고 특이해서 기존의 책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독립출판의 매력이다(사진: 취재기자 우웅기).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점도 있다, 이른바 ‘독립출판 서점’이라 불린다. 현재 전국에 10여 곳이 있다. 부산의 경우에는 2개의 독립출판서점이 있는데, 앞서 소개된 프롬더북스와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근처에 있는 샵메이커즈(Shop Makers)가 그것이다.

프롬더북스 운영자 천지원 씨의 본업은 디자이너다. 서 씨는 서울에서 생활할 당시에 독립출판물을 접하게됐고 그 후 독립출판이 좋아져서 부산에 내려와 독립출판 서점을 열게 됐다. 서 씨가 독립출판 서점을 운영한 지는 4년이 흘렀다. 서 씨는 “4년 전만 해도 부산에는 독립출판이 굉장히 생소했다. 그래서 이런 문화를 부산에도 알리려고 독립출판서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 프롬더북스의 전경. 각기 다른 목소리와 작가의 열정이 묻어 있는 독립출판물들이 진열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우웅기).

천 씨는 평일에는 생업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프롬더북스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독립출판 작가, 서점 운영자들은 대부분 천 씨처럼 본업이 따로 있고, 독립출판은 일종의 취미이고 부업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서 독립출판을 한다. 천 씨는 “독립출판 서점 운영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돈보다는 자신의 꿈을 찾아가기 위해 독립출판을 한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서점은 판매가 활발하지 않아서 도심 속보다는 도시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출판이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니듯이 그들을 만나는 곳도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 가장자리다.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광고가 없어도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용케 모두 사전에 위치를 알고 스스로 찾아온다. 그리고 10명 중 9명은 서점에 들렀다 하면 꼭 독립출판물을 구매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반감일까, 독립출판물 고객은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단다. 고객들의 거주지는 부산은 물론 멀리 경남도 가리지 않는다. 어차피 광고 보고 찾아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익을 위한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출판물 판매 통계는 알기도 어렵고, 알아도 의미가 없다. 독립출판물이 다루는 주제를 파악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저 세상일만큼 다양하고 사람 수만큼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 <언리미티드 에디션> 소개 자료이다(출처: 언리미티드 에디션 홈페이지).

서울의 경우, 부산보다 독립출판에 대한 인지도가 높다. 그리고 독립출판을 알리기 위한 행사도 열린다. 그 중에서 1년에 1회 열리는 독립출판 마켓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가장 유명하다. 이 행사는 독립출판 서점 ‘유어 마인드’의 주최로 작년까지 6회째 열렸다. 한 번에 이틀간 열린다. 서울시 문화 관련 사업을 지원하는 산하 단체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다. 이 행사에서 독립출판 형태로 제작된 책, 잡지, 음반, 문구류 전시 및 판매 부스가 만들어지고, 구매자들이 직접 부스에서 구매하는 일 대 일 시장이 형성된다. 구매자들은 책의 작가와 직접 만나 즉각적인 질의응답을 벌이기도 하며, 부대 행사로 강연, 공연, 아티스트 토크, 다큐멘터리 상영 등의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 ▲ 헌책 수리법울 주제로 한 독립출판물들도 있다(사진: 취재기자 우웅기).

서 씨는 결국 독립출판의 매력은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책에 명확히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 씨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것, 혹은 책으로 내기에 너무 사적이거나 볼품없는 것들이 주제로 다뤄지는 것이 독립출판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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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2017-02-10 15:13:49
여기에 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반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나 모르겠네요. 관련 기사 찾아보던 중에 쌩뚱맞아서 적고 갑니다. 여성 방문자가 많은 것은 관심사가 달라서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