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행복센터'는 다문화가족의 '행복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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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행복센터'는 다문화가족의 '행복우물'
  • 취재기자 이정은
  • 승인 2015.01.27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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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가 운영...한국어도 가르치고 취업알선도 도와
▲ 부산시 서구 초장동에 위치한 한마음 행복센터(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 안. 자리가 꽉 차있고, 많은 사람이 서 있다. 한 자리가 비자, 그 앞에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 그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앉자마자 양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슬그머니 일어나 다른 곳으로 피했다. 왜 그런 것일까? 자리에 앉은 사람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 노동자고, 양 옆 자리에서 벌떡 자리를 뜬 두 명의 한국 사람들은 그 이주 노동자를 혐오스러워 했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대학생 민병수(23) 씨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주민이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옆자리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생긴 게 다른 사람이란 생각보다 우리와 틀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혼인 귀화자, 기타 사유로 인한 한국 국적 취득자,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나라에 이주 외국인다문화가족 수가 급증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부산은 약 2만 명의 이주 외국인이 있고, 이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다문화가족은 1만 1500가구다.

다문화가족의 애환을 소개하는 <러브 인 아시아>란 TV 프로도 있고, 최근에는 <이웃집 찰스>란 프로가 생겨 외국인들의 한국 생활을 돕기도 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가 민 씨처럼 다문화가족을 ‘다른’ 시선이 아니라 ‘틀린’ 시선으로 보고 있자, 각종 공공 기관들이 이주민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각 시도별로 운영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대표적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부산에서도 총 9곳이 운영되고 있다. 부산의 서구청은 정부 차원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는 별개로 ‘한마음 행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마음행복센터는 부산시 서구 초장동 산복도로(부산은 산 중턱에 난 좁은 도로를 이렇게 부른다)에 있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한마음행복센터까지 가는 길은 좀 복잡하다. 부산 지하철 1호선 토성역 6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학병원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사하구1-1, 서구2, 서구2-2로 환승해서 아미동 공용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거기가 끝이 아니라, 하차한 아미동 공영주차장에서 450m가량 걸어야 한마음 행복센터에 도착할 수 있다.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겨울에 산복도로 위를 걷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좌측에 펼쳐진 부산항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지루하고 멀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 한마음 행복센터로 가기 위해 산복도로를 걷다보면, 좌측으로 부산 서구 일대와 부산항 전경이 한눈에 드러온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한마음 행복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어눌한 한국어로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 소리가 들린다. 이주 여성들이 이곳 입구 역할을 하는 2층에서 ‘다누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음 행복센터는 한국어 대화에 무리 없는 이주민들에게 카페를 차려주고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커피가 아닌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여러 나라의 전통차를 서브한다.

카페 한 쪽에서는 이주 여성들이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동화책을 보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카페에 온 손님과도 한국어로 어눌해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마음 행복센터 관리자 정말분 씨는 이곳을 화합의 장소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곳만큼은 다문화가족이라고 그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꺼리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 다문화가족 이주 여성이 한마음 행복센터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부 이주 여성들이 손님이 없는 동안에 테이블에 앉아 동화책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하지만 이 행복센터도 단숨에 설립된 것은 아니다. 5년 전 부산 서구에는 다문화 이주여성과 저소득층 주민을 돕기 위해 초장동 주민 부녀회 성격의 주민자치회가 운영하는 ‘희망공방’이 유일했다. 그러나 장소가 협소했고, 시설은 열악했다. 당시 희망공방의 자원봉사자였던 정 씨는 “컨테이너 1평짜리에서 시작했어요. 열악했죠. 하지만 우리는 정말 즐겁게 가르치고, 이주민들은 즐겁게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힘겹게 희망공방이 운영되다가, 2011년 3월에 부산시에서 주관한 ‘부산시 행복 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서구청이 선정되면서, 서구청은 3층짜리 근사한 한마음행복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서구청은 희망공방을 운영하던 주민자치회에 새롭게 지어진 한마음행복센터의 운영을 의뢰했다. 초장동 주민자치회는 과거 새마을 부녀회 같은 주민자치 조직으로 주민센터와 주민을 이어주고 주민의 문화 활동을 돕는 자생적 모임이다.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된 행복센터는 시의 지원을 받아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2014년에는 부산시의 ‘주민 공동체 제안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그래서 행복센터는 올해부터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다문화 음식,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서구청은 행복센터의 전기료와 수도비를 보조해 줬고, 600만 원 정도의 프로그램 진행비를 지원해줬다. 그래도 빠듯한 행복센터 운영을 위해서 주민자치회 회원들이 회비를 추렴해서 운영비를 보충하고 있다.

한마음 행복센터는 총 3층이다. 건물 1층은 다문화가족 이주 여성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희망공방이 있다. 여기서는 목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과 이주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돕고 있다. 2층은 사무실과 다누리 카페로 사용되고, 3층은 다문화가족과 지역 주민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다목적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의 구조는 특이하게도 센터 입구가 2층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센터를 방문한 사람은 곧바로 이주 여성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먼저 지나야 한다.

한마음 행복센터의 이주 여성들은 주로 2층에서 카페 일을 돕거나, 3층에서 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일주일에 2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받는 것 말고도, 서구청이 알선해 주는 일반인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꾸준히 이곳에서 한국어 회화 연습을 한다. 또 이주 여성들을 위한 요가, 팬시 공예, 그리고 요리 수업도 진행된다. 이 모든 수업에 이주여성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행복센터에서 교육하는 프로그램 중에 가장 호응이 좋은 프로그램은 한국어 수업이다. 관리자 정 씨는 “한국어 공부가 아무래도 다문화가족에게 가장 성취감도 높고, 그들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카시우에 키엠(34, 부산시 서구 충무동)은 3년째 한마음행복센터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서구청에서 나온 다문화가족 설문조사자가 그녀 집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됐다. 키엠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가 한국말을 못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그녀가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지 어느새 3년이 넘은 지금 그녀는 이제 한국 사람과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 심지어 그녀는 이곳을 처음 찾아 한국어가 많이 서툰 베트남 사람에게 기초적인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부산항 주변 선박회사에서 베트남 선원들의 통역을 도와주기도 한다.

또 다른 수강생인 베트남 출신 동티튀 짱(26) 씨는 요리수업이 가장 재밌다. 한마음행복센터는 한국 요리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들이 출신국 요리를 뽐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한다. 다문화가족들은 이곳에서 그들 나라의 음식을 마음껏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짱 씨는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한국요리를 배우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행복센터 관리자 정 씨는 “딱딱한 한국어 수업으로만 배울 수 없는 일상생활의 한국어를 요리 수업에서도 배울 수 있다”며 “열성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그들에게는 일거양득의 수업방식”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하면 곧바로 결혼 이민자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어능력시험을 봐야 하는 등 결혼이민자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이주 여성들은 더욱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베트남 출신 부티 협(28) 씨도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한마음행복센터의 도움을 받고 한국어능력시험도 봤고, 운전면허증에 공예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행복센터의 도움을 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여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는 것보다, 이주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시선과 말이었다. 협 씨도 여느 이주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한국 생활 적응이 어려웠다.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한국어를 다시 물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며 대꾸하지 않는 모습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녀는 “부산이 사투리가 심해요. 그래서 책에서 배운 한국말과 부산 사투리가 달라 (부산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키엠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베트남에 있는 부모가 가장 보고 싶을 때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욕을 들었을 때였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말이 어눌해서 다 못 알아듣는다고 길거리에서 욕을 하거나, 출신국을 무시하는 욕을 할 때가 가장 속상해요”라고 말했다.

한마음행복센터에서 수업 받는 다문화가족의 출신국은 베트남, 필리핀, 중국, 몽골, 캄보디아, 모로코, 인도 등 여러 나라다. 한마음행복센터에서 이주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주위의 시선을 살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문화적 다름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한마음행복센터는 이주민들의 마르지 않는 행복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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