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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누가 견제해야 할까/ 편집위원 양혜승
편집위원 양혜승

올해 유독 많은 법조드라마가 쏟아졌다. <미스 함무바리>(JTBC), <무법변호사>(tvN), <검법남녀>(MBC), <친애하는 판사님께>(SBS)를 비롯해 참 많은 법조드라마가 방송을 탔다. 마치 방송사끼리 경쟁하거나 협약을 맺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시청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법조드라마를 한꺼번에 접한 때도 없었던 듯하다. 신경 써서 시청하지 않으면 드라마들의 줄거리가 서로 헷갈릴 정도였다.

최근 법조드라마의 결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르다. 검사와 판사 등 등장인물이 정의의 구현자로 묘사되기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부조리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쉽게 들여다볼 수 없었던 판사와 검사들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부장판사가 직접 극본을 써 사법부의 속살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검찰과 사법부의 기본 사명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 청산이다. 하지만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과 결탁해 오히려 사회 부조리를 키워온 것이 검찰과 사법부였다는 점에 반기를 드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따라서 최근 법조드라마의 유행은 검찰과 사법부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드라마에 녹아든 것이라는 진단이 있다. 그동안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방송사들이 달라진 사회분위기와 방송환경 속에서 이제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그러한 진단에 공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법조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는 최근의 뉴스가 대변하고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고 할까. 연일 매스컴을 타는 사법부의 부조리와 부패 뉴스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직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는 문건이 그 충격의 서곡이었다. 사법부가 특정 재판들을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진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 사회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대법원이 하위심의 재판 결과를 뒤집어가면서까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설마를 읊조렸을 수도 있다. 법의 심판자인 사법부가 설마 재판을 두고 그런 거래를 했을까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 신뢰의 끈을 붙잡고 있던 국민들의 손이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해서 등장하는 ‘사법농단’의 행적들 때문이다.

추가로 공개된 문건들에 따르면,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전방위적이고 비상식적인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치는 것도 모자라, 여론 확산을 위해 언론대책도 세웠다고 한다. 더욱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 파견하는 법관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도 행정부와 재판거래가 있었다니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이때 거래 대상이 된 재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이었다. 이 판결을 늦추는 조건이 해외로 보내는 법관의 수를 늘려주는 것이었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행정부와 사법부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쯤 되면 삼권분립의 파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문란이다. ‘사법농단’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듯싶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이런 엄청난 국기문란을 저지른 사법부를 단죄하는 일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사법부는 이번 사법농단 사건의 수사를 위해 검찰이 요청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을 기각하고 있다. 영장의 발부주체가 법원이다보니 스스로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차에 올라탄 꼴이다. 이러다가는 사법부가 사법부 스스로 사법농단 사건을 재판하는 기가 막힌 형국을 경험할 판이다. 일각에서는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국민참여재판의 필요성도 언급되고 한다. 어찌 되었든 ‘방탄법원’이 ‘셀프재판’을 하는 우스운 모양새는 피해야 한다. 책임자에 대한 단죄와 본질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하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변죽만 울리다 끝날 게 뻔하다.

사법부는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사법부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에는 어김없이 더 큰 비난이 돌아갔다. 그런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사법부의 독립성과 재판의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는 무뢰한으로 매도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과연 사법부의 독립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신성한 판결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사법부가 국기를 문란하게 할 때 과연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우리에겐 있는 것일까. 사법부는 유일하게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권력이다. 행정부는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그 수장을 선출한다. 입법부는 그 구성원 모두를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선출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권력이다. 그 권력이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행사되지 않을 때, 그들만의 이권을 위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방향으로 남용될 때, 국민들이 사법부를 갈아치울 방법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 현직 부장검사는 <검사내전>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3분의 2 민주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의 구성원들을 국민의 손으로 뽑기란 결코 쉽지 않다. 미국에선 선거를 통해 판사를 선출하는 주들이 있고, 실제로 임명제와 더불어 선출제가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법체계의 차이를 무시하고 빠른 시간에 판사선출제도를 도입하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법부를 견제할 장치는 정말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결국 희망은 언론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3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 그것이 제4부로서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희망마저도 밝지만은 않다. 일부 언론사는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장단을 맞추고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 것이 사실이다. 제4부라는 역할을 알량한 권력으로 둔갑시켜 권력놀음을 하는 언론사들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사법농단 사태를 보도하는 행태 또한 참으로 가관이다. 사법부의 사법농단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언론사들은 법관회의가 열리는 곳에 찾아가 법관들의 ‘결단’만을 생중계하듯 보도했다. 사법부의 잘못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보도행태인지 싶다.

암울하다. 국민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그래도 결국 희망은 언론밖에 없다. 그래도 신뢰의 끈을 잡아볼 곳은 언론밖에 없다. 모든 언론이 다 죽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법관회의에나 기웃거리는 그런 언론 말고, 국민의 목소리에 주목해 제4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언론을 기대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정말 유쾌, 통쾌, 상쾌한 사이다 같은 법조드라마를 시청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검사나 판사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부조리의 대명사가 아니라 정의의 구현자로 묘사되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편집위원 양혜승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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