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에 바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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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해에 바라는 것들
  • 편집인 강성보
  • 승인 2015.01.0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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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부산 광안대교 사이로 떠오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다빈).
지난 연말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했을 때 먼저 뇌리에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컵라면이었다. 문제의 땅콩 '마카마디아' 때문이다.

우리의 재벌 3세 항공사 부사장은 승무원이 마카마디아 너츠를 접시에 담아주지 않고 봉지 채로 내놓았다고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과 폭설을 퍼붓고 급기야 갓 출발한 비행기를 공항에 되돌려 사무장을 내쫓았다. 이 사건이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고,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켜 그 부사장이 구속되는 사태로 까지 이어졌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40여 년 전 일본의 한 식품회사 회장은 용기에 든 마카마디아를 승무원으로부터 제공받고 그 용기에서 힌트를 얻어 컵라면을 창안해냈다. 주인공은 주식회사 닛신의 안도 모모후쿠 회장. 1958년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사람이다. 보통 라면은 봉지에 든 면과 수프를 냄비에 넣고 끓여 먹는다. 그런데 안도 회장은 보다 간편하게 라면을 먹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불과 냄비가 없어도 뜨거운 물 만 부어 먹을 수 있다면 기가 막힐텐데... 젓가락 없이 포크로도 먹을 수 있다면 서양인들에게도 판로가 열려 엄청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텐데...”

문제는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였다. 일회용이어야 하기 때문에 금속은 안되고, 또 일정시간 열을 유지할 수 있는 뚜껑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1971년 안도 회장은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으로 마카마디아 너츠를 받았다. 그 너츠는 납작한 알루미늄 깡통을 종이 뚜껑으로 덮은 밀폐 용기였다. “아,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면서 안도 회장은 그 용기를 갖고 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회사 연구실로 달려갔다. 여기서 바로 오늘날 우리 보통 사람들이 즐겨 먹는 컵라면이 탄생한 것이다.

같은 마카마디아 너츠를 놓고 한 사람은 용기에서 내용물을 꺼내 접시에 담아주지 않았다면서 자기 회사 종업원에게 슈퍼 갑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용기에서 인류에게 또 하나의 편익을 가져다 준 위대한 발명을 발견한 것이다. 만일 안도 회장이 그 때 용기 채 제공된 마카마디아에 대해 불평을 하고 내용물만 접시에 담아달라고 요구했다면 서민들이 단돈 몇 백원에 한끼의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컵라면의 탄생은 몇 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컵라면의 발명을 두고 한 평론가는 “만일 노벨 행복상이 있다면 안도 회장이야 말로 최우선적 수상자 후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머리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머슴 내지는 노예였다. 자기가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무지랭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렇지 않아도 가진 자들의 횡포에 기진맥진하고 있는 터에 이번 사건은 찢어진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통증을 가져왔다.

2015 을미년 새해를 맞아 지난 한 해를 반추하면서 땅콩 회항 사건을 먼저 언급한 것은 시기적으로 근접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200여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등 훨씬 더 큰 충격과 파장을 가져온 사건들이 많았지만 이 재벌 3세 여사장의 ‘황제 갑질’ 사건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에 신음하는, 돈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 천박한 한국식 자본주의의 현주소다. 중국 한(漢)나라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부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보통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배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고, 백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천배 부자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배 부자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현 정권의 경제민주화 구호가 슬그머니 실종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서민들은 재벌들의 노예 대열로 들어서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시빅뉴스 편집인으로서 2014년 갑오년은 보람과 회한이 교차되는 쌍곡선의 한 해였다.

국내 최초의 학교 기업으로 발족한 지 2년째인 지난해 시빅뉴스는 성숙기에 들어섰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학생들이 신선한 시각으로 생산해낸 참신한 기사와 영상들은 많은 독자들을 끌어 모았으며, 몇몇 작품들은 폭발적인 클릭수를 기록했다. 또 일부 기사는 여러 기성 언론에 모티프를 주기도 했다. 현재 시빅뉴스 인트로 화면에 실린 톱기사 '시빅뉴스 2014년 회고'에 자세히 소개된 것처럼 지난해 4월초 게재된 ‘아로마 향초 유행’ 기사는 YTN, JTBC 등 방송국에서 받아 썼고, ‘반라 춤도 OK, 감성주점 성업’ 기사는 시빅 뉴스에 게재된지 얼마 지나 KBS 방송과 각 지방지에서도 다뤄졌다.

기사 완성도도 부쩍 높아졌다. 종래엔 학생 기자들이 써온 1차 원고는 글 구성이나 기사적 어법이 제대로 안된 것이 많아 데스크를 보기가 힘들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하지만 2년차인 지난해엔 거의 손댈 곳이 없을 정도의 잘된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베테랑 언론인 출신의 교수진들이 기사작성법에 관해 철저하게 교육시킨 덕분으로 시빅뉴스는 자평하고 있다. 일부 우수한 학생은 기사 뿐 아니라 사진, 제목 등 편집까지 완벽하게 구성한 완전원고를 제출하기도 한다.

현재 시빅뉴스는 경성대 신방과 학부 3, 4학년 50여 명이 기자로 활동하며 피처기사, 인물 기사 등 연성 기사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신방과 출신 스텝기자가 부산 시청 등 출입처를 커버하며 스트레이트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시빅뉴스가 학교기업인 만큼 영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은 아니지만 기사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광고도 적지 않게 붙어 학생 기자들의 취재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통한의 기억도 있다. 얼마전 톱 기사로 올린 인물 기사의 한 부분이 과장 날조된 사실이 나중에 발각됐다. 내가 가르친 한 학생 기자 한 명이 광안리 해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노래를 불러주는 30대 여성 버스커 기사를 쓰면서 성대결절 극복 사실을 꾸며넣은 것이다. 그 여성이 기사를 보고 “그런 일이 없다”며 정식 항의를 해옴으로써 기사 부분 날조 사실이 드러났다. 시빅뉴스는 해당 학생에게 확인후 당사자에게 즉각 사과하고 기사를 내렸다. 그 학생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교수님께서 취재 대상의 인생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 하면 기사가 된다고 하셔서..” 라며 말을 흐렸다. 이에 “ 이 녀석아. 기자의 최고 덕목인 팩트 파인딩도 모르냐. 기자는 소설가가 아니야, 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과 같아. 어떤 미사려구도 사실 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없어”라며 준엄하게 질책했다.

사실 성대결절이란 날조 팩트는 그 기사 자체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30대 여성이 객지에 흘러와 광안리 해변에서 과객들을 상대로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도 즐기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낭만적이고 인간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톱기사로 올린 것이다. 그 학생은 쓸데없는 날조로 과욕을 부린 셈이다. 이 문제를 다룬 편집회의에서 온정론도 있었지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옳겠다는 여론에 따라 그 학생에게는 최저학점 부여, 시빅 기사 게재권 박탈 등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을미년 첫 태양이 떴다. 새해엔 이런 불미스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히 가르칠 계획이다. 제자들을 취재와 보도의 기술에 능숙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완벽하게 무장한 예비기자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다시는 슈퍼갑질, 황제갑질에 눈물 흘리는 서민들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 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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