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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환경파괴'...의식의 진화를 위하여, 살만한 사회를 위하여/ 칼럼니스트 최원열
  • 칼럼니스트 최원열
  • 승인 2018.08.0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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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환승센터 인근 도로가 강한 햇볕에 달구어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사진: 더팩트 이동률 기자, 더 팩트 제공).

올 여름의 ‘슈퍼 폭염’은 전 국민을 탈진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상 최악의 폭염은 한반도를 지글지글 달궜고, 연일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온종일 내리쬐는 태양열로 용광로가 따로 없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재앙에 온 나라가 헐떡거리고 있다.

2003년 바로 이맘때 프랑스는 엄청난 재앙을 맞았다. 살인 폭염이 덮치면서 떼죽음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특히 노령층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75세 이상 노인만 1만 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파리 병원들의 안치소가 모자라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다. 그것은 결코 가정의 비극이 아니었다. 나라의 참극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놔두고 바캉스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르 피가로'는 프랑스의 야만이라 절규했다. 보너스와 휴가지상주의에 젖어 있던 파리지앵들은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는 노인 시신이 무더기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했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잊었다"고 말이다.

폭염과 가족애의 실종이 만나면 이처럼 끔찍한 재앙을 낳는다. 살인 폭염이 연일 덮치고 있는 우리나라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만에 하나 블랙아웃이라도 발생한다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펄펄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 들었다. 그의 대표작 <참회록>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건만 다시 보니 벅찬 울림이 새록새록 밀려든다. 특히 마지막 부분을 접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그는 선각자임에 틀림없다. 아니 선지자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지금 상황을 이처럼 날카롭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 행성 지구의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짧은 시 구절에 압축한 그의 예지가 무서울 정도다.

나름대로 해석해 보면 이렇다. 보금자리 지구를 무참히 유린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이웃을 보듬지 못한 우리는 참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잘못이 끊이지 않기에 매일 일기를 쓰면서 되돌아보자. 비록 내일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지라도 오늘 이 순간 고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자. 거울을 본다고 한들 뒷모습이 보일 리는 없을 터. 그는 '슬픈' 우리의 미개성을 후손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를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그는 잘못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후회할 미래를 <참회록>을 통해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중하게 물려줘야 할 이 땅을 파헤치고, 아껴주고 보살펴야할 이웃들을 해코지한다. 화합과 통합을 외치고, 나눔과 돌봄을 내세우지만 진정 행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이 빠져나갈 길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이건만 탈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우리는 갇혀 버렸다.

'환경파수꾼' 톰 하트만은 저서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에서 인류가 멸종을 피하기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태고의 햇빛에너지이자 생존을 위한 '예금통장'인 석탄과 석유를 마구 써대면서 문명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니 미개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잘 알다시피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취해 자양분인 탄수화물을 만들고, 산소를 배설한다. 반면 나무에게는 쓰임새가 없는 산소가 인류 생존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인간은 산소를 들이마신 뒤 나무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

그러니 나무와 인간은 공존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땅을 개간해야 가축을 기를 수 있고,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며 산림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다. 현 정부는 원전을 퇴출시킨다며 그 대안으로 온 나라를 헤집는 태양광 발전을 부추긴다. 하기야 아마존 열대우림이라는 행성 지구의 산소공장을 재건하는데 기껏 2000년 정도면 되니 그때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되지 않겠나. 인류가 이 세상의 관리자에 불과할 뿐, 소유자가 아니라는 개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사회의 인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철학자 베르그송이 강조했던 '열린 사회'와 에리히 프롬이 간구했던 '건전한 사회'는 온데간데없고, 그 반대편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요즘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무역 전쟁을 보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보복만이 오가는,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닫힌 사회'의 전형적 단면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반성해야 마땅하다. 윤동주의 심정으로 매일 참회록을 써보자.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회. 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다수를 다치게 하는 것이고, 소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다수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아는 사회. 그리고 작은 실천일지라도 행하는 사회. 비록 더디더라도 그런 의식의 진화를 위하여. 살만한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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