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 교육정책이 대학교육을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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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교육정책이 대학교육을 병들게 한다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4.12.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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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해마다 대학교수들의 의견을 받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2014년을 돌아보는 사자성어 1위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칭하는 거짓된 모습을 우리 정부가 참 많이도 보여준 까닭이라 여겨진다. 한자성어 2위는 ‘삭족적리’(削足適履)’였다. 신발을 깎아 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뜻이니, 정부의 비상식적이고 어리석은 정책들을 꼬집는 의미일 것이다.

그동안 ‘지록위마’와 ‘삭족적리’의 정책들을 충실히도 시행해온 정부 부처 중의 하나가 교육부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취업률 등의 정량지표를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재정 지원 여부로 대학을 압박했다. 이번 박근혜 정부도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누어 그 등급에 따라 정원감축의 강도를 달리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올 초에 교육부가 내놓은 이른바 ‘대학 교육의 질 제고 및 학령인구 급감 대비를 위한 대학 구조개혁 추진 계획’이 그것이다. 1등급을 제외하고 나머지 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등급에 따라 입학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재정지원사업에 참여를 제한받게 되고,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에도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약 100개 정도의 대학이 문을 닫게 되는데, 지방대가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부의 계획은 깊은 우려를 낳는다. 첫째, 교육부가 내놓은 배경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교육부의 설명을 보면, 학생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어 2023학년도에는 현재의 대학 입학정원보다 16만 명이 부족하게 된다 한다. 따라서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대학 정원 16만 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산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가 정책을 변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수치를 내세웠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들이 손을 놓고 미래를 기다리는 것도 문제지만, 대학을 지나친 공포의 수렁으로 몰고 가는 것도 문제다.

둘째, 대학을 5등급으로 평가하는데 활용되는 지표들이 과연 상식적인가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평가지표가 교수충원율과 취업률이다. 교수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대학들이 산학협력교수나 강의전담교수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 교육의 질은 거꾸로 갈 것이 뻔하다. 취업률은 더욱 더 의문이다. 취업률이 과연 대학 교육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지 의문이다. 대학 입장에서 취업률이 워낙 중요한 지표가 되다 보니, 교수들로 하여금 해마다 졸업생 중 최소 한 명을 자신의 ‘빽’과 연줄을 활용해 취업시키도록 하는 대학마저 생겨나고 있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청년실업의 문제를 대학의 탓으로 넘기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셋째, ‘지방대학 죽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이미 ‘대학 구조개혁 추진 계획’을 뒷받침할 사업으로 올 초 ‘대학 특성화 사업’을 개시했다. 정원을 줄이는 대학만이 특성화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특성화사업에 참여해야만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학들은 대혼란을 겪었다. 학과나 전공을 얼마나 통폐합하고 정원을 얼마나 줄여야 교육부의 칭찬을 받을지 눈치를 보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결국 2017년까지 수도권 대학들은 3.8%, 비수도권 대학들은 평균 8.4%의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지방대학들의 고사가 시작된 셈이다. 대학 교육의 질 제고가 지역 죽이기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교육정책이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상명하달식 정책은 개별 대학의 내부로 고스란히 옮겨가는 듯하다. 많은 지방대학들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학과나 전공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학과나 전공 통폐합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들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적지 않은 파열음이 들려오기도 한다. 민주사회에서 절차는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니 때로는 내용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다. 대학 구성원들의 상처와 자괴감만 커진 상태에서 교육부가 기대하는 대학 교육의 질 제고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급한 것과 중요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해서 꼭 급하게 처리할 것은 아니다. 근시안적인 교육정책으로 오늘날의 대학교육을 환자로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그동안의 정부와 정치권이다. 진정으로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을 가리고 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면 권위주의적 정책부터 폐기해야 한다. 권위주의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보다는 차라리 대학사회를 가만히 두는 것이 낫다. 교육소비자들의 날카로운 선택이 부실대학을 알아서 정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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