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쓰레기통이 왜 없을까?
상태바
집 앞 쓰레기통이 왜 없을까?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14.12.15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속수무책으로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사진: 박기철 시빅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1960와 70년대! 나 어릴 적에는 지금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폐품을 가져 오라고 하면 집에서 신문지, 헌옷, 헌책 등을 모아서 가져갔다. 엿장사들은 리어카로 불리던 손수레를 몰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이 빈 병이나 못쓰게 된 양은 그릇 등을 가져 오면 엿이나 옥수수 뻥튀기로 바꾸어 주었다. 양아치라고도 불리웠던 넝마주이들은 등에 대나무로 된 커다란 걸망을 지고 다니며 길에서 버려진 비닐이나 헌 종이를 주으며 다녔다. 만일 그 시대의 엿장사들과 넝마주이들이 지금 이 시대에 환생하여 다닌다면 어찌 생각할까? 아마도 너무 신나할 것이다. 주울 것들이 많이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길거리에 폐품이 너무나 널려서 다 못줍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이런 더럽고 지저분한 폐품 세상이 있는지 지금의 시대를 비난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 어릴 적은 먹고 살기 가난해도 우리 주변은 깨끗했다. 폐품 하나도 소중해서 함부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버려지게 된 폐품들은 학교에서 수거하였고, 엿장사들과 넝마주이들이 호구지책으로 거들었으니 그들은 그 시대의 자발적인 고마운 청소부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풍요로워졌다. 풍요로워도 너무나 풍요로워졌다. 며칠 전 3D 입체 영화를 보기 위해 썼던 특수 안경을 돌려 주려는데 1회용이라 반납할 필요가 없단다. 그냥 가져가든지 쓰레기통에 버리란다. 극장으로서는 영화관람료 1만 2,000원 안에 특수 안경비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극장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1회용품이 많아지는 이 세상 풍조를 탓하려는 것이다. 다방에서는 커피잔에 마시는 게 당연히 정상이다. 1회용 컵에 커피를 주면 화낼 것이다. 그런데 스타벅스로부터 기원한 그런 부류의 커피점에 가면 이제 당연히 1회용 컵에 준다. 테이크 아웃 커피가 아니라 매장 안에서 마시는데도 1회용 컵이 기본이다. 머그컵이 옵션이 되었다. 그래도 무심하게 주는 대로 마신다. 1회용 컵에 뜨거운 커피가 부어지는데 그 안에 녹아나올, 뭔지 모를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래서 머그컵에 달라고 하면 아예 없는 곳이 더 많다. 그러니 하루동안 버려지는 컵의 양은 전국적,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참으로 풍요로운 사회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풍요로운 사회를 찬미하는 말이 아니다. 너무나 풍요로운 이 사회를 곱씹자는 말이다. 풍요로워지는 만큼 쓰레기는 늘어난다. 지금 이 엔트로피의 증가는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고 있다. 도대체 그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정말로 그것이 알고 싶다. 쓰레기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여실히 보여질 것이다. 어떤 쓰레기들은 바다에 버려져 해류를 타고 흘러 북태평양에 있는 쓰레기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 도착할 수도 있다. 쓰레기양의 90% 이상이 석유화학 합성물질이라 ‘Plastic Island’라고도 불리는 그 섬의 면적이 한반도의 7배나 된다니 엄청나다. 물고기들이 잘게 부숴진 조각들을 먹고 죽어간다. 그것을 처리하는 일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지만 경제적 수익이 안나니 근본적 해결의 조짐도 없다. 쓰레기를 재활용하자는 아이디어만 부분적으로 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쓰레기 모여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사회가 빗어내는 이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사태는 이런데 우리는 쓰레기에 대해 무심하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널려도 그냥 그려려니 한다. 나 어릴 적에는 그러지 않았다. 집 쓰레기는 밖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게 아니라 집 앞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집 앞 쓰레기통도 언제부턴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저렇게 밖에다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구청에서는 CCTV를 설치하여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해놓고선 어찌 품격사회를 논할 수 있을까? 어찌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관광명소가 되는 일도 허무하다. 중국 월수외국어대학교의 박춘태 교수는 국제신문 2014년 11월 17일자에 실린 ‘관광 한국의 이미지 개선’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대표 관광명소로 거듭나려면 환경개선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각 도심에는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밤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흥미로운 밤문화 이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쓰레기 무단배출, 무단투기 행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식물 쓰레기, 전단지와 명함 등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쓰레기 악취로 인해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앞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어떨까? 아니, 어떨까가 아니라 해야 한다. 60, 70년대 집앞 쓰레기통이 있었던 온전한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아파트에는 주민들이 같이 사용하는 분리형 쓰레기통이 있다. 그런데 주택단지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이미 쓰레기통을 놓는 지역도 있다.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은 2013년 5월부터 '쓰레기와의 사랑과 전쟁' 및 '쓰레기 무단투기 제로화' 사업을 벌이며 고양이 등의 음식물 쓰레기 훼손으로 인한 악취를 예방하고 무단투기를 근절하고자 내집 대문앞 쓰레기통 내놓기 운동을 전개하여 쾌적한 영화동을 만들어 간다고 한다. 정말로 휼륭하다. 이 일이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른 지역에도, 우리 동네에도 퍼지길 기원한다. 素樂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