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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계엄령 문건’은 과연 누구의 작품인가
편집국장 강동수

영어로 ‘마셜 로(martial law)’라고 부르는 계엄령(戒嚴令)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헌법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다. 물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눠지는데,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고,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일종의 비상대권인 셈이다.

70년의 헌정사에서 우리나라에선 모두 10번의 계엄령이 발동됐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여수·순천 일대에 내려진 계엄령을 시작으로, 1948년 제주 4.3사건, 1960년 4.19 당시에도 계엄령이 내려졌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이른바 ‘10월 유신’을 선포하면서 발동하기도 했고,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격 사망했을 때,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당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일별해 보면 알겠지만, 국가의 안전과 질서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계엄령이 선포돼야 한다. 그러나 계엄령이 독재 정권의 유지나 군부의 정권 찬탈의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대통령에 의한 친위쿠데타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해서 계엄령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인식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 이 계엄령을 둘러싼 논란이 찌는 듯한 한여름을 더욱 달구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만들었다는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처음엔 “구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실행 계획이다”, “아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일반적인 계획이다” 따위로 논란이 빚어졌다. 그 계획을 기무사 단독으로 입안한 것인지, 당시 국방장관의 지시에 의해 작성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것이냐 등을 놓고도 논란이 증폭됐던 터다.

그런데, 이번엔 이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송영무 현 국방장관이 인지하고도 3개월씩이나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뭉갰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방장관이 문건 중의 위수령 발동 등에 대해서 법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발언했다는 기무사 부대장의 국회 증언까지 나와 송 장관의 ‘거짓말’ 논쟁이 불거져 나왔다. 이러니, 전 정권의 문제에서 느닷없이 현 정권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셈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7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사위원들의 질에 답변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남윤호 기자, 더 팩트 제공).

어쨌거나,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늦추었다거나, 위수령 발동과 관련해 무책임하게 발언했다는 주장은 일단은 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물론, 그 문제도 따로 따지긴 해야 한다. 하지만 ‘계엄 관련 문건’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우선이다. 67쪽에 이르는 그 문건이 과연 진짜 실행 계획이냐, 아니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일반적 매뉴얼에 불과한 것이냐 하는 것부터 밝혀낼 일이다. 다음으로 밝혀내야 할 일이 그걸 만들라고 지시한 사람이 과연 누구냐,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 최소한 박 전 대통령이 이 문건을 보고받았느냐 여부일 터이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이 문건의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군사 2급비밀’ 도장이 찍혀 있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67쪽짜리 문건으로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네 가지 큰 제목 아래 21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소요사태에 대비해 단지 ‘검토’만 했다는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의 해명과는 달리, 서울 광화문·여의도에 장갑차(탱크)를 배치하는 것을 비롯해 국회·언론 통제 방안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는 거다. 이를테면, 국가정보원 통제 계획과 언론·출판·공연 등에 대한 사전검열 계획도 함께 명시돼 있다는 거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하고,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언론통제 방안도 마찬가지. 계엄선포와 동시에 ‘보도검열단 9개 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는 거다. KBS, CBS, YTN 등 22개 방송과 조선일보·매일경제 등 26개 언론, 연합뉴스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신문사에 통제요원을 편성해 보도 통제하도록 작성돼 있다고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통상의 계엄 매뉴얼과는 달리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방안도 있었다는 거다. 나아가 2017년 3월 발표할 요량으로 비상계엄 선포문·포고문까지 만들어져 있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전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가 발표한 대로만 따져도 이걸 통상적 계엄 매뉴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글쎄, 병력동원 계획에다 언론사 이름까지 적시해 검열할 계획을 세웠는가 하면, 계엄 선포문과 포고문까지 미리 만들었다는 건 여차하면 이를 실행할 작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글쎄, 청와대의 발표를 듣다보면 절로 으스스해진다. 만에 하나라도 이 문건이 실행됐더라면 어떻게 됐을 것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진다. 시민들이 수십만 명 모여 있는 광화문에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가 진주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가 발령됐을 때, 광주 전남대 교문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이 이 대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이 ‘광주항쟁’의 불씨가 된 게 아니었나.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하던 시민들이 진주한 계엄군들에게 항의하며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면…. 그 이후의 사태는 입에 담기도 끔찍하다.

1980년 대학에 다니던 나는 전두환 일당이 비상계엄령을 내린 그해 5월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한 밤중에 무장한 공수부대가 기숙사를 봉쇄하고 사생들을 끌어내다 거의 만 하루를 집단폭행했을 때 영문도 모르고 평생 맞을 매를 하루에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광주는 또 어떻고…. 어디 나만 그렇겠나. 그 시대 대학을 다녔던 내 동년배들은 다들 그럴 거다. 우리 세대 뿐만도 아니다. 내 윗세대 역시 그런 험악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 세대들에게 ‘계엄령’이란 말은 화들짝 경기를 일으키는 말인 거다.

그러니, 이번 기무사 문건은 심상히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결과적으로 실행되지 않았으니 별 문제가 아니냐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가 언젠데, ‘계엄령’이란 이름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의 망령이 아직도 어른거린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촛불을 든 시민을 깔아뭉갤 계획을 짰다면 이건 또 다른 의미의 내란음모가 아닌가. 당시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엄중한 상황에서 이런 계엄 아이디어는 누가 냈으며, 누구의 지시로 이런 계획이 입안됐는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런 다음,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이 됐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됐든 최종 책임자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또 다른 유사시에 군내 일부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지 말란 법이 없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도 엊그제 이번 사안과 관련해 규명의 의지를 다시 천명하긴 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왜 이런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며, 합동수사단의 철저한 수사가 최우선 과제다.”

물론, 아무런 권한도 없이 이런 계획안을 짠 기무사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기무사가 이런 ‘친위 쿠데타’ 계획이나 짜라고 있는 데인가?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에 대한 의지도 다시 천명했다.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기무사 개혁 태스크포스(TF)는 논의를 집중해 기무사 개혁안을 서둘러 제출해주었으면 한다. 기무사 개혁 TF가 이미 검토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는 게 대통령의 말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청와대 보고 지연 등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할 터. 송 장관은 지난 3월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3개월이나 끌다가 6월에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놓고서도 위증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일국의 국방장관이 거짓증언을 했느니, 안 했느니 따위로 기무사의 대령급 장교와 공방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송 장관은 취임 당시에도 법무법인으로부터 고액 자문료를 받았대서 자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잦은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여러 번이다. 만약, 이번에도 잘못이 드러난다면 이전의 허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잘못이 드러난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하자. 계엄 문건 관련 논란은 가장 심각한 형태의 국기 문란이다. 이 사태를 명확히 규명하고 후속 조치를 취해 국민의 불안과 의구심을 씻어 주어야 할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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