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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조금 오래된 할배들, 월드컵 결승 진출국 크로아티아를 가다②자유여행이라 겪어야했던 씁쓸한 실패담, 혹은 추억담 하나

도착 첫날 오후,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올드타운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다가 이른바 현지인 ‘삐끼’의 유혹에 이끌려 골목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한 신대영과 이정원이 주도적으로 메뉴를 결정했다. 킹크랩 등 수산물 위주였다. 두브로브니크의 물가는 비싸다고 정평이 나 있지만 메뉴판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리즈너블한 가격이 적혀있었고 잠시 뒤 푸짐한 요리가 나왔다. 맛도 좋았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이런 요리에 술이 없으면 안되지”라며 시킨 와인이었다. 수다스런 레스토랑 여자 주인이 다가와 현지 산 특별 와인을 추천했다. 흥이 도도해진 우리 일행은 가격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오케이” 하고 주문했다. 얼음에 채운 와인 코르크 마개를 우리들 앞에서 딴 뒤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 유리잔에 따라 시음을 시키는 폼새가 우리로 하여금 마치 일류 최고급 레스토랑에 온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실제 와인 역시 맛있었다. 우리 세 부부 여섯 명이 주거니 받거니 마셨더니 한 병이 금방 동이났다. 또 한 병을 주문했다.

보트를 타고 인근 로크룸 섬으로 가던 도중 올려다본 부자카페. 여기서 ‘부자’는 구멍을 뜻하는데 두브로브니크 시 당국은 성벽에 조그만 출입구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TV 예능 <꽃보다 누님>에서 고 김자옥 씨와 김희애 씨 등이 여기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한국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사진: 강성보 논설주간 제공).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계산서를 받아들고 다들 깜짝 놀랐다. 당초 예상했던 가격의 거의 두 배 정도가 나온 것이다. 원인은 와인 값이었다. 한 병값이 거의 전체 식사대와 맞먹었던 것이다. 미처 값을 물어보지 않고 주문한 것이 후회됐지만 외국 관광지에서 첫발부터 실랑이하기도 뭣하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계산서대로 돈을 지불하고 문을 나섰다. 한 가족당 500유로씩 갹출해 공금으로 쓰기로 했는데 그 3분의 1정도가 점심 한끼에 훅 달아난 것이다. 경리를 맡은 내 집사람이 향후 초내핍이 필요하다고 경고장을 발했다. 저녁부터는 라면으로 때우자는 얘기도 나왔다.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그럴수 없다”면서 상당액의 유로를 자진해서 내놓아 축난 공금을 보충했다. 그러나 그 후 10여끼의 식사는 라면 때우기는 아니었지만 매우 소박해졌다.

지금 크로아티아가 벨기에, 러시아, 잉글랜드 등 강호들을 꺾고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는 크로아티아와 벨기에의 16강전과 러시아와의 8강전을 현지에서 구경했다. 특히 16강전은 두브로브니크의 해변가에 개설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크로아티아 인들과 함께 열광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한국의 응원단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그들은 크로아티아 특유의 붉은 색 체크 무늬 옷을 입고 응원에 열중했다. 아드리아 해의 잔잔한 바다 야경 속에서 수백 명 붉은 체크무늬들이 일제히 박수치고 환호하고 탄식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201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경기 장면(사진: Creative Commons)

두부로브니크 성채를 내려다보는 뒷산 이름은 ‘스르지’라 한다. 발음이 약간 야리꾸리하지만 깍아지른 듯한 제법 갸파른 산이다. 올드타운 인근에서 케이블카가 운행되는데 우리는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군데군데 뷰포인트에서 아드리아 해의 그림같은 풍경을 완상하면서 '스르리 스르리' 올랐다. 그런데 그 산의 정상에서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고교 동창들 3명이었다. 이들은 여행사가 주관하는 단체관광객 틈에 끼어 케이블카로 타고 마침 그 시간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100만분의 1도 안되는 확률의 해후였다. 서울에서 한 번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우찌 이런 낯설디 낯선 땅에서... 참 기막힌 우연이었다. 왁자지껄 하이파이브와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시한 뒤 각각 일행을 따라 헤어졌다.

두부로브니크는 버나드 쇼가 지상천국이라 불렀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나 역시 여기에 동의할 수 있다. 한없이 푸른 아드리아 해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그림같은 성채도시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무대가 되기도 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니메이션 명작 <붉은 돼지>의 배경이기도 하다. 스르지 산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 고성 속의 붉은 지붕 행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 영화나 에니메이션의 한 장면 속에 몰입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올드타운 시가지 골목. 밤낮없이 골목마다 관광객들이 붐볐다(사진: 강성보 논설주간 제공).

고색창연한 필레문,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 블라호 성당 등도 볼만하다. 요정들이 만들었다는 명검 듀랑달를 손에 든 중세 영웅 롤랑의 조각상도 한 컷 증명사진 사진물로는 그저그만이다. 또 두브로브니크 항구에서 출발하는 보트를 타고 인근 로크룸 섬으로 가서 해수욕을 즐기고 미니 사해를 구경하는 것도 결코 놓칠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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