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바로 옆 판자촌이 호랭이 마을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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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바로 옆 판자촌이 호랭이 마을로 거듭나다
  • 취재기자 이창호
  • 승인 2014.11.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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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대표적 문화마을로 변신 시도하는 '안창 마을' 르뽀

부산 서면에서 안창 마을행 시내버스를 타고 20여분. 버스가 번화가를 벗어나자 창 밖 풍경이 확 달라졌다. 70년대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꼬불꼬불 골목길과 낡은 입간판의 상점들. 그리고 노랑, 파랑, 핑크색까지 알록달록한 주택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차곡차곡 늘어서 있다. 제법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위기.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아늑한 마을이 있나 싶다.

▲ 안창 호랭이 마을 명패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신발의 안창처럼 깊숙한 산골짜기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안창 마을이다. 지금은 ‘안창 호랭이 마을’로 불린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호계천 근방에 때때로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전설 등 마을 곳곳에 호랑이와 관련된 구전이 많은 것을 토대로 주민들이 마을 홍보 차원에서 이처럼 개명했다. 

▲호랑이 무늬를 음각한 안창 호랭이 마을의 랜드마크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이름에 걸맞게 마을 초입에는 호랑이 무늬를 형상화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옛 정취가 물씬한 마을 중심부와는 달리 호랑이 디자인의 건물은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였다. 호랭이 마을 발전 및 홍보 책임자인 이찬웅(55) 회장은 이 건물이 마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마을 한가운데 중앙대로를 따라 길을 걷다보니 몇몇 등산객들이 눈에 띄었다. 평상복 차림으로 회사 동료들과 산행을 하던 신경원(42, 부산시 남구) 씨는 마을 뒤로 이어져 있는 엄광산에 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신 씨는 “한달에 두어번 이곳을 찾는데 올 때마다 분위기가 조용하고 아늑한 게 힐링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 안창마을 중앙대로와 그 주변 등산객들의 모습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안창 호랭이 마을의 가옥들은 울긋불긋 총천연색이었다. 회색의 시벤트 벽돌을 그대로 드러낸 집은 거의 없었다. 노란색에서부터 핑크색까지 담장이나 벽마다 파스텔 톤의 원색이 칠해져 있다. 지난 8월 부산항만공사 직원들이 찾아와 각 가옥의 담장과 벽에 페인트로 색상을 입혀줬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골목 하나를 ‘부산항만공사의 길’로 이름 붙였다.

예전에는 담장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관리 소홀로 페인트가 다 벗겨지는 바람에 마을 경관을 오히려 해쳤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항만공사 직원들이 자원봉사로 나서 벽과 담장에 단색의 페인트 칠을 해준 것이라고 이 회장은 말했다.

▲ 다채로운 색으로 치장된 안창마을 곳곳의 모습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마을 중앙대로 끝자락에 다다르자, 한 외국인 커플이 언덕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호주에서 부산을 찾은 관광객 케렌스 카게너크(26) 씨 부부였다. 카게너크 씨는 “부산의 이색적인 모습이 인상 깊다”며 “네온사인 휘황한 번화가 바로 인근에 이처럼 시골 같은 마을과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고 말했다. 그는 부산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이 마을이 도심 속의 가난한 마을 공동체이고 옛 전쟁 때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 안창마을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과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호랑이 화분의 모습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안창 호랭이 마을은 한국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든 무허가 판자촌에서 출발했다. 마을이 들어서기 전인 전쟁 이전에는 숲이 우거진 산골이었다. 이찬웅 회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몇몇 사람과 들어와 터를 잡은 것이 마을의 시초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노인들만 살고 있는 마을이다”라며 “우리 마을 세대가 500세대 가까이 되는데, 애가 딸린 식구는 열 세대 정도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노인들이라고 앉아서 허송세월 보내면 마을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각자 도자기 굽는 법도 배우고 커피 바리스타 교육도 받는 등 마을 사람들이 마을 부흥을 위해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판자촌 이미지를 벗고 마을을 다양하게 가꿔 어엿하게 마을을 재생시켜보겠다는 뜻이었다.

안창 호랭이 마을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부산의 문화 콘텐츠가 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지역 대학생들의 손을 빌려 마을의 문패와 벽을 다양한 색과 그림으로 꾸미고 시나 에세이를 벽에 걸어놓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을 초청하여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워크 캠프도 운영했다. 마을은 마을의 호칭을 따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정기적으로 놀 거리를 제공하는 ‘호랭이 마을 잔치’도 열고 있다.

▲ 마을에 꾸며져 있는 벽화들의 모습 (사진: 취재기자 이창호)

그러나 마을을 살리기 위한 부흥운동은 아직 답보상태다. 충분한 자본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이회장은  감천 문화마을이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라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는 “감천 마을은 외부에서 예술가와 상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살리고 있는 케이스”라며 “우린 우리 스스로 마을을 다시 일으키고 싶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호랭이 마을은 얼마전 통신회사 KT와 MOU를 체결했다.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마을 발전 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그래도 마을의 콘텐츠 생산은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전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은 “범일동(凡一洞)과 범천동(凡川洞), 범냇골 등의 ‘범‘ 자는 호랑이를 뜻하는 우리말로, 이 일대가 모두 안창 마을에 살던 호랑이로부터 유래된 것"이라면서 “안창 호랭이 마을은 부산 동구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거점으로. 우리 마을이 부산 동구가 가진 문화적 특색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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