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현대인 심성에 예술의 씨를 뿌린다
상태바
삭막한 현대인 심성에 예술의 씨를 뿌린다
  • 취재기자 류세은
  • 승인 2014.11.21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첫 화가공동체 '민들레', 가난한 예술인들 상부상조도
▲ 민들레 화가공동체 입구에 있는 간판(사진: 취재기자 류세은)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초록줄기에 솜뭉치 마냥 피어나는 민들레 홀씨들은 산들 바람만 불어도 여기저기로 날아가 흙만 있다면 뿌리를 내려 순식간에 민들레 꽃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부산 금정구에는 민들레 홀씨처럼 조용히 바람에 날려 사람들에게 미술과 예술을 전하는 화가 공동체 ‘민들레’가 있다.

화가 공동체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다. 이 말은 1880년 3월 10일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등장했다. 고흐는 돈벌이가 힘든 화가들이 연합해서 각자가 그린 그림을 공동 소유로 하고, 그림 판 돈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방식으로 가난한 화가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그것이 곧 화가 공동체였다. 하지만 고흐의 화가 공동체 구상은 그가 가지고 있던 정신적 장애와 화가들의 의견충돌 때문에 무산됐다.

고흐의 화가 공동체 아이디어는 130년 뒤 고흐를 너무 좋아 하던 한국의 화가 신승훈 씨에 의해 부산에서 결실을 맺었다. 그것이 바로 ‘민들레’다.

신승훈 씨는 개인이 예술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흐의 아이디어처럼 창작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같이 회화, 일러스트, 동화 등의 창작물 판매액을 일정 비율로 공유하는 민들레를 만들었다.

지금은 5명의 작가들이 공동체에 입주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화가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입주신청을 하고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입주한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팔면 판매수익의 10%를 민들레에 기부해야 한다.

화가 공동체에 들어 왔다고 해서, 이들이 온전히 그림에만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림의 판로는 좁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그림을 사는 것을 돈 많은 사람들만의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림 판매가 활발하지 못해서 민들레는 그림 판매 수익만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신승훈 씨는 입주 작가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새벽에 신문배달이나 주말에 여러 알바를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한다.

▲ 입주 화가들이 크로키 연습과 각자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사진: 취재기자 류세은)

민들레는 작가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눔 그림 교실은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주부나 학생들이 민들레에 와서 늘 상주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그림을 배우는 것이다. 작가들은 재능 기부를 하고,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무료로 그림을 배울 수 있다.

자유 크로키 수업도 있다. 크로키는 사람을 그릴 때 눈과 손을 동시에 움직여 사물의 행동을 순간적으로 그려 내는 것이다. 크로키는 사람을 그릴 때 기초가 되는 것으로 연습을 하고 싶어도 비싼 모델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반인들이 연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민들레에서는 한 기수 당 10회의 크로키 수업을 진행한다.

이 뿐 아니라, 민들레는 지역 사회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 벽화 채색 덧칠 작업에도 참여했다.

최근 민들레는 창작 공간에서 동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직접 출판사를 만들어 책 출판까지 돕고 있다. 신승훈 씨는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이들을 지원해서, 이들이 전문 작가로 성장하게 하고, 민들레도 더 발전해서 국제적으로 많은 화가들과 함께하는 국제적 화가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들레를 지원하는 뜻있는 사람들은 민들레가 정말 민들레 홀씨처럼 멀리 멀리 퍼져나가, 도움이 필요하고 예술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게 작가가 될 기회를 제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