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다스에 여섯 자루 뿐... "과대포장, 도 넘었다"
상태바
연필 한 다스에 여섯 자루 뿐... "과대포장, 도 넘었다"
  • 취재기자 손병준
  • 승인 2014.11.19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살구 시장’ 주의보...속이는 물건이 정상 제품 몰아내기

얼마 전, 대학생들이 과자봉지로 한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과자의 과대포장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런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과대포장은 과자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상품에서도 나타나는 상술의 하나였다.

학용품에서도 과대포장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필 한 통을 구매하면, 한 다스, 즉 12개의 연필이 들어있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모(39, 부산시 동래구) 씨가 보여준 연필 한 다스에는 6개의 연필만 들어가 있고, 나머지 6개가 들어갈 공간에는 빈 상자로 채워져 있었다. 이 씨는 “아들 주려고 연필을 샀는데, 한 통에 6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겉모양으로는 12개가 다 들어가 있는 것처럼 돼 있는데, 안을 보니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했다.

과대포장 상술에 대해, 부산 소대 대학의 경제학과 김모 교수는 “저급한 품질의 제품이 시장에 도는 것을 ‘개살구 시장’이라 하는데, 과대포장이 바로 개살구 시장의 전형적 형태를 띄고 있다”고 말했다.

개살구 시장(lemon market)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상황을 악이용해서 업자들이 겉만 화려한 싸구려 제품들을 시장에 유통시키는 상황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정보를 알 수 없기에, 시각적 감각에 의존하여 상품을 선택하게 되고, 품질보다는 잘 포장된 제품을 구매한다. 결국 개살구 시장에서는 품질 좋은 상품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사라지게 되고, 싸구려 제품만 시장에서 남게 된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개살구 시장의 원리에 따라서, 의류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은 재품의 품질보다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쉬운 브랜드로 제품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습관을 통해서 의류업체는 값싼 원자재를 바탕으로 만든 옷을 브랜드의 가치와 결합하여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경영학에서는 ‘소비자의 역선택’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의 B브랜드 매장에서는 패딩 조끼를 7만 9,8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반면, 같은 백화점 S브랜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패딩 조끼는 2만 9,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대게 가격표 상황이 이렇다면, 사람들은 비싼 것이 고품질 상품으로 판단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말로 B 브랜드의 패딩 조끼가 7만 9,800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S 브랜드의 2만 9,900원짜리 패딩 조끼는 오리털 70%와 덕다운(오리털 중 솜털) 30%로 구성되어 있고, B 브랜드의 7만 9,800원짜리 패딩 조끼는 100% 폴리에스터다. 폴리에스터는 보온성이 오리털 덕다운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재질이다. 아마도 B 브랜드는 내부 재질도 나쁘면서 브랜드 가치 때문에 그렇게 비싼 가격을 책정한 듯하다. 그래서 요즘 옷을 구입하려면, 옷 내부에 붙어 있는 태그(tag)로 재품 구성 요소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처럼, 눈속임으로 소비자들을 속이는 제품들을 통틀어 요즘 인터넷에서는 ‘창렬’이라고 부르고 있다. ‘창렬’이란 가수 김창렬 씨로부터 유래된 용어다. 2009년 한 편의점에서 ‘김창렬의 포장마차’라는 브랜드로 분식집 메뉴인 즉석식품들을 판매했다. 그런데 이 제품이 나중에 국산과자처럼 비싼 가격에 비해서 양이 터무니없이 적어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조롱을 받았다. 그후로 네티즌들은 가격 대비 제품의 양과 질이 터무니없는 상품을 ‘창렬’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학생 김모(22, 부산시 동래구) 씨는 얼마 전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도시락에서 과대포장 경험했다. 김 씨는 “배가 무척 고파서 편의점에서 큰 도시락을 사서 먹었는데, 양이 너무 작았다. 이상한 도시락 덕분에 다이어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과대포장에 여러 번 당한 경험이 있어 일부 소비자들은 상품을 고를 때 신중하게 고르는 습관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부산 소대 대학에 재학 중인 박모(25) 씨는 묶음 상품을 사거나 곽으로 된 상품을 살 때는 안에 몇 개가 동봉되어 있는지 정확히 체크하고, 가격도 제값이 매겨졌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그는 “특히 묶음으로 팔리는 상품에서 시각적으로 많아 보이려고 불필요한 포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의 말대로 과대포장은 소비자의 허점을 노린 공략이다. 소비자들은 포장의 크기와 형태로 재품의 양과 재질을 가늠하는 습관이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포장 대비 상품의 부실함을 소비자 부주의 탓으로 돌릴 수 있도록 구석에 작은 글씨로 제품의 재질과 동봉량을 정확하게 적어놓는다.

▲ 패딩 조끼의 내부 태그에 표시되어 있는 제품 재질들은 오리털도 있고 폴리에스터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가격은 2만원대부터 8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사진: 취재기자 손병준).

의류 유통업에 종사하는 김모(39) 씨는 “과대포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조치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체와 유통업계의 반성과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서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개선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