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와 서울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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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쥐와 서울쥐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4.11.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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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교환 교수로 한국에 체류 중이던 일본 노(老)교수 부부를 만나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일본 교수 부인이 한류 드라마 팬이었다. 그녀는 남편 따라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다. 나는 그녀가 왜 한국 TV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이 의외였다. 한국 드라마에는 가족끼리, 또는 친구나 동료끼리 싸우는 장면이 많고, 그래서 사람 사는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어 한류 드라마가 좋다는 거였다.

하긴, 일본인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니, 아마 일본 드라마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싸우는 장면을 한국 드라마처럼 그렇게 화끈하게 묘사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가족 간의 감정마저 절제하는 일본 드라마에 식상한 그 일본 노부인에게 아마도 한국 드라마 속 한국 가족들이 원색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나보다. 가만 생각하니, 한국 TV 드라마에는 부부가 싸우고, 딸과 엄마가 싸우고, 자매가 싸우고,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는 장면이 아니면 드라마가 안될 정도인 게 사실이다.

그 일본 부인은 한국에 와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다 진짜 싸움 장면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그 부인은 길거리에서 멱살잡이하는 싸움 모습을 보게 되면, 그게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그 싸움이 끝날 때까지 싸움을 구경했다고 말했다. 생전, 일본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길거리 싸움 모습을 그 부인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진지하게 구경했다고 토로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일본인의 눈에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싸우는 데 이골이 난 민족이 됐을까? 수천 년 동안 이민족을 못 살게 군 역사가 거의 없는 순박한 백의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잔인한 싸움꾼으로 전락하게 됐을까? 그 원인이 역사 속 당파싸움일까, 아니면 조선시대 신분제도일까? 혹시, 일제 침략의 소용돌이가 그 원인은 아닐까? 아니면, 6.25 전쟁이나 그 후의 좌우 대결 현대사일까?

<시빅뉴스>에 실린 친절한 스페인 운전자들 얘기(2014년 10월 6일자 글로벌 탐방)도 있고, 인자하기 짝이 없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할머니 얘기(2014년 3월 31일자 글로벌 탐방)도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 가까운 가족들끼리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살쾡이처럼 돼가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이런 원망에 사로잡혀 있던 최근 어느 날, 나는 희귀한 상황을 경험하게 됐다. 새벽마다 인근 대학 교정을 운동 삼아 산책하던 나는 인적이 드문 때라 차도의 한 가운데를 힘차게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좀, 지나가면 안 될까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다보니, 그것은 한 남자 운전자가 목을 차창 밖으로 길게 빼고 자기 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달라고 내게 부탁하는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길을 비키고 고개 숙여 지나가는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보낸 나는 존경스런 시선으로 그 운전자를 사라질 때까지 한참 쳐다봤다. 그 운전자는 다른 한국 사람처럼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고 나를 몰아내면 될 일인데, 조심스럽게,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길을 막고 걷고 있던 나에게 양보를 부탁했던 것이다. 나는 그 운전자가 들어간 건물을 눈여겨 봐 두었다. 언젠가 사람이 그리울 때, 그 분을 찾아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운전자의 배려심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떤 사람은 한 언론에 실은 기고문에서 탱크를 몰고 다니며 무례하게 운전하는 차량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싶다고 울분을 토한 적도 있다. 그 정도로 한국의 운전문화는 남에 대한 배려가 실종된 지 오래다.

몇 년 전에 일본 동경으로 학생들을 인솔하고 졸업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인 가이드가 3박 4일 여행 중에 자동차 경적 울리는 소리를 세 번 이상 들으면 자기가 학생들에게 한턱 쏜다고 얘기했다. 학생들은 관광버스로 동경 시내를 이동 중에 경적소리가 나는지 귀를 쫑긋했으나, 단 두 번 듣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 번잡한 동경 시내에서 3박 4일 동안 단 두 번의 경적 소리밖에 듣지 못하다니. 한국인과 일본인은 교통문화에 관한 한 무언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는 ‘4-way’란 차량 통행방법이 있다. 이는 신호등을 세울 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은 4거리 골목길 등에 네 방향 모두에 멈춤 표지판을 세워 놓고, 그 멈춤 표지판에 먼저 도착한 차가 통행의 우선권을 갖는 통행방법이다. 미국 유학 시절, 나는 어느 날 아침 한 건물 2층에서 출근길에 사방에서 밀려오는 차량들이 먼저 온 순서대로 4-way 4거리를 착착 통행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미국 운전자들은 온 순서대로 통행하고 있었다. 거기엔 교통경찰도 없었다. 4거리 중 어느 방향의 누가 먼저 멈춤 표지판에 왔는지 혼동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당시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우리나라에 경찰이나 신호등이 없는 곳에 4-way가 생기고, 그 규칙에 따라 자동차가 예술처럼 차례차례 통행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신호등이 있어도 끼어들기, 꼬리물기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주 멀리 있다는 생각을 나는 금치 못한다.

나라의 차이가 물론 있기도 하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어느 나라 국민이 어떻다는 것보다는 도시냐 시골이냐가 그 나라 국민들의 교통문화나 인심을 가르는 기준 같이 보인다. 아까 같은 4-way는 미국의 시골에서 벌어진 일이지, 뉴욕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뉴욕 시의 운전자들은 경적을 자주 울리고, 택시기사들은 난폭하다. 영국의 캐임브리지나 이태리의 폼페이 같은 소도시 사람들은 외국 여행자에게 친절했지만, 런던, 파리, 로마 시민들이나 상인들은 바가지를 씌우고, 거칠고, 사나웠다. 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득실거렸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등의 대도시 호텔에서 나는 이런저런 서비스 문제로 언성을 높인 적이 많았지만, 한두 시간 차타고 들어간 이들 나라 시골에 가면, 순박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사나운 인심을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어느 통계를 보니, 1950년대 20%대에 머물던 한국 도시 거주 인구비율이 1980년대에는 70%를 넘어섰고, 2000년에 88%, 그리고 2005년에 90%에서 정점을 찍었다.

우리 국민 90%, 즉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는 사람이 많다. 도시민들은 몸과 몸을 부대껴야 하고, 도시는 남을 등쳐야 내가 사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도시는 다 그렇고, 시골에나 가야 겨우 사람대접을 받는다.

논두렁밭두렁을 밟으며 벼 나락 까먹고 학교를 오가던 과거 시골길처럼 교육환경이 더 좋은 곳은 없었다. 그런데 현대의 교육환경이 좋은 곳은 학군이 좋은 곳, 일류대 많이 들어가는 고등학교가 있는 곳, 유명 학원이나 족집게 과외 선생이 많은 곳, 시끄러워도 지하철이 가까운 곳, 바로 도시다. 학군 좋은 데서는 분쟁에서 이기게 해주는 '유능한' 변호사나, 미인을 ‘찍어내는’ 인기 성형외과 의사가 많이 나올 수는 있어도, 나라의 큰 위기를 극복할 ‘큰 바위 얼굴’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 칼 폴라니는 시골을 ‘포함적 문화,’ 도시를 ‘배타적 문화’라 불렀다. 과거 우리 농촌사람들은 남의 집 숟가락 개수도 알았고, 마을 제사도 같이 지냈으며, 두레라는 노동공동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제 이런 더하기 문화는 가고, 친구를 이겨야 자기 내신 성적이 올라가는 빼기 문화가 판치는 도시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솝우화가 우리 전래 동화와 접목됐다는 <시골쥐와 서울쥐>란 동화가 있다. 시골쥐가 서울 사는 친구 서울쥐를 시골로 초대했다. 둘은 너른 들판을 마구 뛰며 신나게 놀았지만, 먹을 게 많지 않아 배가 고프다는 문제가 있었다. 서울쥐는 결국 시골은 살 곳이 못된다며 서울로 시골쥐를 초대했다. 둘은 서울로 올라와 이집 저집 부엌을 헤집고 다니며 치즈랑 빵을 맛나게 먹었다. 그러나 인기척이 나면, 목숨 걸고 재빨리 쥐구멍으로 도피해야 했다. 하루하루 생활이 곧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목숨 건 싸움을 해야 하는 '글라디에이터' 같은 서울 생활에 시골쥐는 죽음의 공포심을 느끼며 다시 시골로 돌아간다는 게 이 얘기의 끝이다.

이 동화는 과거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어느새 슬그머니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시골쥐는 당시에 산업화에 역행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상을 뜻하게 돼서, 미래 산업화 역군인 초등학생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누군가의 결정이 이 동화가 교과서에서 사라진 이면에 있었을 듯하다. 어느새 '농자천하지대본'이던 대한민국이 ‘차도국(차가운 도시 국가)’이 됐다. 도시는 편리하다. 이웃이 누군지 모르는 익명성에 행동의 편안함이 보장된다. 도시에는 먹을 게 많다. 그러나 그 먹을 게 공짜가 아니라 남의 것을 뺏어야 하는 게 문제다. 그래도 우리는 다들 서울쥐가 못돼서 안달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쫓기고 쫓는 위험한 줄타기 곡예사처럼 산다. 대한민국 사람은 더 이상 '조용한 아침의 나라'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닳고 닳은 뺀질이들이다. 우리는 싸우고 이겨서 쟁취하는 삶에 익숙한 서울쥐가 된 지 오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시골로 갈 꿈을 꾸며 산다. 먹을 건 적어도 맘 편하게 쫓길 일 없는 시골로,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사람과 싸울 일도 없는 전원으로 갈 꿈을 꾸며 산다. 가끔 컴퓨터 화면에 네이버 지도를 펼치고 어딘가를 찾는 나를 보고 눈치를 챈 아내가 전원생활은 무섭다며 반대에 나선다. 나는 진돗개 열 마리를 키우겠다는 계획으로 아내의 ‘안보’ 불안감에 응수한다. 그 많은 개는 다 누가 키울 거냐며 아내가 다시 역공을 편다. 한술 더 떠서, 아내는 내가 전원에서 정 살고 싶다면, 자기는 그 전원주택 인근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출퇴근을 불사하겠다고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운다. 나는 연금을 털어서 사설 경호원을 고용해서라도 은퇴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전원생활의 안전을 확보해서 아내를 설득할 것이다.

젊은 시절, 한 때 도시에서 살아 보는 것도 해봄직한 일이다. 한 때는 인생을 걸고 욕망의 화신이 되어 살아 보는 것도 안 해보면 후회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싸울 만큼 싸웠거든, 남을 해칠 만큼 해쳤거든, 미련 없이 풀냄새 나는 고향으로 낙향하는 게 현명할 듯하다.

올해 은퇴한 한 선배는 인간과 사회가 싫다며 인터넷도 안 되고 스마트폰도 안 터지는 두메산골로 숨었다. 최근 그 선배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내가 보내고, 그 선배가 며칠 뒤 읍내로 생필품 사러 나왔다가 내 문자를 확인하는 원시적 절차를 거쳐, 나는 어렵게 그 선배를 만났다. 그래도 가끔 말 통하는 사람은 만나면서 사시라는 충언을 드렸다. 그래야 치매와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거의 잠적 수준인 이 선배 정도는 아닐 테지만, 나는야 시골로 갈 것이다. 아해야! 사래 길지 않은 밭떼기라도 맘 편히 내 손에 흙 묻히고 일구는 시골로 나는야 가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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