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감옥, 그리고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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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감옥, 그리고 군대
  • 편집위원 정일형
  • 승인 2014.11.1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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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행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 중 하나가 국방의 의무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일정한 연령 이상이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군대가 최근 윤 일병 사망 사건으로 군 인권과 군 사법제도의 문제로 떠들썩하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군대를 보내야 하는 남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아들을 안심하고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은 지난 4월 7일 제28 보병 사단 포병 연대 977 포병대대 의무대에서 벌어진 윤승주 일병(21, 1993년생)이 내무반에서 동료 병사들과 냉동식품을 나눠먹던 중 선임병들에게 구타와 폭행을 당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휴식 중 일어난 우발적 폭력으로 인한 폭행치사 사건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여러 증언이 더해지고 수사가 심도있게 진행되면서 무려 4개월여에 걸쳐 지속된 가혹행위와 폭력 사건의 참담한 결과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국민의 이슈가 되었다.

또한 해당 부대의 간부나 지휘관들이 책임을 회피하면서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된 데다가, 재판에 이루어지더라도 사단이나 군단장의 권한에 의해 재판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군사재판 제도의 허점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 군대에서의 사고나 의문사가 문제시 되었던 것은 꽤 오래되었다. 실제로 한국전쟁 이후 전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망한 군인의 수가 6만 명이 넘는다. 1953년 이후 60여 년 동안 전쟁이 없었음에도 매년 1,000명의 군인이 죽어나갔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군들 학교에 보내듯 안심하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자발적 의지에 의하지 않고 집단 수용 생활을 하는 기관이 대표적으로 세 개가 있는데, 학교, 군대, 감옥이다. 학교는 헌법에서 규정한대로 우리나라 국민이면 9년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하기 때문에 중학교까지는 원하지 않아도 집단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체벌금지 뿐만 아니라 학생인권 문제까지 제기되어 요즘 선생님들이 혹여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려고 하는 순간, 학생들의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맞이해야 할 정도로 안정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아무 걱정 없이 자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자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보내야 하는 곳이다.

감옥은 학교나 군대처럼 의무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는 장소다.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를 제외하고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어떤 형태의 감옥에 수감되어 형이 다 집행될 때까지 수감된다.

이 감옥에는 접견(면회)제도가 있어서 보통 하루에 1회 30분 이내의 접견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영치금이나 영치물이 가능하다. 또한 심하게 아프거나 하면 형 집행이 정지되어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감옥 내 폭행도 그것을 행하는 순간 다시 기소되어 가중처벌을 받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그려지는 대표적인 장면이 된다.

그런데 군대는 어떠한가? 그 군기가 세다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군대 내의 폭력이 문제시되고, 심지어 의무적으로 가는 곳이 아닌 감옥에도 드문 폭력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왜 유독 군대에서만 이러한 문제가 제기될까? 그것은 군대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은 군사법원을 운용하는 세계 30여 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장관급 지휘관의 영향력 아래에 군사재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군판사 2인과 심판관 1인으로 구성된 보통군사법원은 사단급 이상의 부대에 설치되어 육군에 50여개의 보통군사법원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군사재판제도의 모델인 미국은 군사법상 지휘관의 영향력 행사(Commander Influence)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군판사를 제외한 배심원들의 결정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남북이 대처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그것으로 한 개인의 인권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고, 심지어 의문의 죽음까지 당해서 가족들이 그 원인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은 참 불합리하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1심에 해당하는 보통군사법원이 장관급 장교가 지휘하는 부대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해당 지휘관인 사단장이나 군단장의 명령에 의해 결과가 뒤집어 질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은 문제가 너무 많다.

또한 항소해서 2심에 해당하는 고등군사법원에 가더라도 군판사 3인에 의해 재판이 이루어진다. 겨우 상고심으로 대법원까지 가야 군기관을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의 과정이 너무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90년대 초반 정훈장교로 바로 윤일병 사건이 일어난 그 부대에 복무한 경험이 있다. 당직사관을 서며 순찰할 때 항상 주의를 주었던 것이 감시의 사각지대였던 보일러실이나 화장실에서 몰래 구타하는 일 없는 것이었던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어느 날 시무룩해 있거나 어딘가 맞아서 부어 오른 병사들을 몰래 불러 상담해 보면 여지없이 선임병의 구타나 가혹행위가 원인이었던 적이 많다.

국방부에서 몇몇 대안들을 제시하긴 했으나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의 대안은 그저 피상적으로 이 순간을 넘겨보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하다. 독립부대에 군사재판소를 따로 두어야 할 아무런 이유나 근거도 없어 보인다.

이런 기회에 아예 전시가 아닌 평시에 운용되는 군사재판제도를 없애고 인권위원회의 다양한 제도들이 군대에 적용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학교처럼 선생님이 체벌이라도 하려고 하면 스마트폰부터 들이대는 문화도, 감옥처럼 매일 한 번은 면회가 되는 문화도 아니다. 핵심은 군대를 보내야 하는 부모들이 학교나 감옥처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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