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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 발표를 보고나서/ 칼럼리스트 강석진
  • 칼럼리스트 강석진
  • 승인 2018.06.2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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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1일은 한국 사법기관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박상기 법무부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경수사권조정안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합의 내용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세부 내용을 더 가다듬고 국회 입법 과정도 거쳐야 해서 실제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1일을 대한민국 사법 행정 상 역사적인 날이라고 하는 것은 수사권 조정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 얼마나 큰 권력의 이동인지를 생각한다면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수사권 문제는 바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슈였다. 맥아더 사령부 점령 하에 민주화의 길을 걷던 일본에서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가 제기됐으나, 국회에서는 ‘친일 경찰’, ‘독립지사를 고문한 경찰’,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할 인물들이 득실거리는 경찰’에 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반대론이 거셌다. 논쟁은 6·25 동란 피난 국회에서도 이어졌고,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는 문제는 일제 앞잡이들이 물러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재론하기로 했다. 경찰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시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규정되고 말았다. 이로써 경찰은 검찰의 하위 기관, 심하게 말하면 ‘머슴’이 되고 말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 경찰, 법원, 국정원, 보안사, 지방행정기관, 우체국, 군, 대학 등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리면, 새파랗게 젊은 검사가 중년의 경찰서장을 욕보이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수사권 독립 운운하는 경찰은 검찰이 그냥 두지 않았다. 경찰은 요즘 들어서 수사권 조정을 공공연히 이야기하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누가 수사권 독립을 역성 들어주어도 못 들은 척하기 일쑤였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이 됐다. 지역 사회에서는 검찰 지청장으로 누가 오는가에 따라 지역 사회 분위기가 바뀐다는 말이 돌 정도로 검찰의 힘은 막강했다. 민주화 이후 관계기관 대책회의 같은 것도 없어지고 나니, 검찰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기관들도 사라졌다. 검찰이 쥐락펴락하는 세상이 됐다.

필자가 어느 해인가 지방의 검사장급 인사에게 "당장 한두 명 잡아들이라고 위에서 지시하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몇 명이나 잡아들일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관할 지역 기초자치단체장은 20여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천정을 올려보다가 대답하는 검사장의 말이 기가 막혔다. “두어 명 빼고는 전부 잡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것이었다. 어느 단체장(시장, 군수 등)이 검사 앞에서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목소리를 높여 말할 수 있었겠는가. 임지를 떠난 검사들이 고로쇠 물을 몇 년씩이나 받아먹는 것도 그런 권력의 단물이었다.

막강한 검찰 권력은 중앙에서는 더 매서웠다. 정치권, 경제계 등 내로라 하는 인물들도 검찰에 걸려들면 오금을 펴기 어려웠고, 그 검찰의 인사권을 쥐고 검찰을 부릴 수 있는 대통령의 권력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슬이 퍼랬다. 그 그늘에서 검찰 주변에는 스폰서 검사와 법조 브로커가 들끓었다.

검찰 개혁이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공약이 된 것도 검찰공화국의 폐단이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우리 사회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발표된 합의안은 정부 내 합의안에 불과하고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 내용 하나하나를 짚어갈 필요는 없다. 다만 경찰에게 수사개시권과 수사종결권 등 수사권이 주어지고, 대신 검찰에는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영장청구권, 검찰의 사후 재수사 요구권 등으로 사법 통제가 어느 정도 이뤄지게 됐다는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한두 가지 다른 문제를 지적해 두고 싶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의 문제는 연원을 따져보면 ‘무엇인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 위해서’ 추진되어 오지 못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찰에 수사권을 주지 않기로 했을 때도, 검찰에서 수사지휘권을 내려놓게 만드는 지금에도 모두 경찰과 검찰의 권력 행사가 지극히 잘못된 때문이었다. 반민족적 행태, 인권 침해,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에 더해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법 권력기관이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해 왔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검찰이 됐든 경찰이 됐든, 수사권이라는 먹이를 더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기에 앞서 우선 자신들의 기관이 저질러온 잘못에 대한 맹성이 필요하다. 정치 권력에 굽실거려온 비굴한 과거를 청산하고 공화국 공동체에 어울리는 사법 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사권 이야기가 나온 뒤 두 기관이 얼마나 수사권 권력을 차지하느냐를 놓고 먹이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발표 후에는 특히 그러해 보인다.

두 번째, 검찰은 합의문상 금융 사건, 부패 사건 등의 직접 수사권을 보유하게 됐다. 세상 온갖 잡범까지 다루고 경찰 상투 잡고 흔들면서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앞으로의 모습은 직접 수사권을 갖게 될 부문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필자는 검찰에 마약과 조폭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사가 집요해야 하거나, 어려울 경우 검찰에 역할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경찰이 가급적 생활 범죄에 치중하고 검찰은 특수 수사를 담당하고 전문화하는 것이다.

세 번째, 경찰이 수사권까지 갖는다면 국민은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정보 경비 대공 분야에도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수사권도 휘두른다면 또 하나의 괴물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능력, 공정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국민이 많다. 이번 합의 발표 후 "교통 사고 조사하는 것 보지 않았나? 가해자와 피해자 뒤바꾸는 일도 허다하고 적당하게 사건 무마하려는 거 많이 봤잖아"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았다.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경찰은 이를 어떻게 쌓아나갈 것인지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이 제시되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괴물이 차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기관의 힘이 한 곳에 쏠리지 않게 만들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사법 행정과 수사가 정의로와지는 것이다.

수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 현장이 혁파되고, 검경이 정치권력의 충견 노릇을 중단하도록 만들기 위해 수사권 조정이 거론되고 있는데, 만일 또 다른 괴물이 등장한다면 국민은 또 칼을 들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검경에 대한 주문이 많았지만, 마지막으로는 정치 권력의 차례다. 검경이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검경의 인사권을 대폭 내려놓아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 여야도 잘못되는 인사를 막을 소극적 힘을 갖는 것은 몰라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사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인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수사권, 영장청구권의 조정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검찰 개혁은 이번 수사권 조정 합의문 발표로 첫발을 내디뎠다. 검경은 과연 다시 비굴하고 비겁한 사법 권력기관이 되지 않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법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발표가 이뤄진 지난 21일 이후 줄곧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칼럼리스트 강석진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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