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들이 내미는 도움 요청의 손길, 매정하게 뿌리치는 게 온당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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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들이 내미는 도움 요청의 손길, 매정하게 뿌리치는 게 온당한 일일까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8.06.24 19:11
  •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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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솔로몬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이다. 기원전 971년부터 931년까지 40여 년간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을 다스렸다. 다윗왕의 아들로 이집트 왕녀와 결혼해 동맹을 맺고 국내 건설과 국방에 전력을 기울였다. 예루살렘 신전을 비롯한 장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에 힘써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로 ‘솔로몬의 영화’로 불린다.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어릴 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서슴없이 “지혜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를 가상히 여겨 지혜 뿐 아니라 권력과 재물을 함께 선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재판’으로 우리들에게도 그 일단이 전해지고 있다. 두 여인이 한 아기를 싸고 서로 “내 아기”라고 주창하며 다투자 칼로 그 아기를 쪼개 나눠주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한 여인은 그 판결을 받아들일 태도를 보였고 다른 여인은 차라리 저 여인에게 주라고 했다는.... 그 결말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여기서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솔로몬은 이집트 왕녀 외에도 수백 명의 왕비와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한 여인과의 러브스토리는 성경 뿐 아니라 주변 각국의 역사서, 이슬람의 코란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수천 년을 전해내려 오면서 각종 문학작품과 연극,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바로 시바의 여왕이다. 1959년 헐리우드 영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은 당시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전세계 스크린을 장악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대머리 배우 율 부린너가 솔로몬 역을, 육감적인 글래머 지나 롤로브리지드가 시바의 여왕 역을 맡았다.

성경은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매우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바(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해보려 아주 어려운 문제를 준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많은 시종, 각종 향료 및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왔다. 여왕은 솔로몬을 만나자 미리 생각해두었던 문제들을 모두 물어 보았다. 솔로몬은 여왕의 질문에 하나도 막히지 않고 다 대답해주었다(열왕기 10장 1~3절)."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흠모해 많은 선물을 줬고, 또 그로부터 큰 답례를 받고 돌아갔다는 등의 드라이한 외교행적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주변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전승에 따르면, 두 사람은 매우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솔로몬은 시바의 여왕을 보자마자 그녀의 미모에 푹 빠졌다. 육체관계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고 계략을 세웠다. 그녀를 환영하기 위한 파티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그 테이블에는 향신료를 듬뿍 사용한 요리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솔로몬은 시바의 여왕에게 제안을 했다.

“나의 빈객이 된 이상 내 허가 없이는 그 어떤 음식도 입에 대어서는 안됩니다.”

그녀는 이 말에 따르기는 했지만 향신료 때문에 밤중에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물을 한 잔 마셨는데 그 일로 솔로몬으로부터 약속을 어겼다는 다그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 벌칙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솔로몬은 여왕에게 반지를 주면서 “만약 아들을 낳게 되거든 이 반지를 주며 나에게 보내주시오”라고 말한다. 자기 나라로 돌아온 여왕은 아홉 달이 지나서 아들을 낳아 ‘메넬리크’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랍 측에서 나온 또 다른 전승은 솔로몬의 구애작전을 보다 더 리얼하게 묘사한다. 시바의 여왕에게 반한 솔로몬이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자 화가나 그녀의 요리에 몰래 소금을 넣었고 밤중에 목이 마른 시바의 여왕이 물을 찾지만 물은 솔로몬의 침실에 있어 물을 마시게 해 주는 댓가로 솔로몬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는 스토리다. 요즘 시대의 시각에서 보면 최음제를 사용한 성폭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아들이 자라 22세가 되자, 여왕은 그 반지를 주면서 아들을 솔로몬에게 보냈다. 그러나 솔로몬은 “반지가 필요없구나. 그런 거 없어도 네가 내 아들인 줄 알겠다”면서 반겼다. 솔로몬은 메넬리크를 총애했고 자기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결사 반대했다. 솔로몬은 할 수 없이 메넬리크를 바다 건너 악숨(현 이디오피아) 땅으로 보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언약의 궤(櫃)'를 수송품에 실어 함께 보냈다. 메넬리크는 여기서 왕국을 새로 열었는데 이디오피아 왕국은 그 솔로몬의 자손들이 수천 년을 다스렸다. 1968년 한국을 방문했던 셀라시에 황제도 그 혈통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넬리크의 225대 후손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아랍권 전승 속 솔로몬 왕은 시바의 여왕에게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푹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솔로몬은 그녀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죽고 나서 시바의 왕국에 묻어 달라고 요구했다는 전설도 있다.

시바의 여왕 이름은 ‘빌키스’, ‘발키스’, ‘바르케이스’, ‘마케다’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이나 전승, 또는 역사서 속에서 고유의 이름이 아니라 ‘시바 왕국의 여왕’이라는 직함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특이한 케이스다.

시바 왕국의 위치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구약 성경에는 세상의 남쪽 끝에 있는 왕국 정도로 나온다. 시바의 여왕이 여행했던 행적이나 일정 등으로 미뤄 예루살렘에서 4000km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추정치도 나온다. 이를 근거로 솔로몬의 아들 메넬리크가 왕국을 열었다는 이디오피아 ‘악숨’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아라비아 반도 남쪽 ‘사바왕국’으로 비정(比定)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바’라는 이름이 우선 ‘시바’ 또는 ‘스바’와 유사하고, 사바왕국의 유적지로 알려진 오아시스 도시 ‘마리브’에서 시바의 여왕의 행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됐기 때문이다.

이 오아시스 도시 ‘마리브’는 현재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북쪽으로 1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다시 말하면, 시바 왕국은 지금 종교 갈등과 이념 분쟁이 복잡하게 뒤엉켜 치열한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한반도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라고들 하지만 예멘도 사실상 분단국가다. 1962년 오스만 터키와 영국 등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북예멘이 먼저 성립됐으나, 1967년 소련의 도움을 받은 사회주의 예멘인들이 남예멘 공화국을 따로 건설했다. 남북 예멘은 베트남과 한반도처럼 1972년과 1979년 두 차례 내전을 치렀다. 하지만 서로 간의 양보와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협상을 시작해 1989년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1990년 5월 기적적으로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이뤘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1990년 11월 독일 통일보다 6개월이나 빨랐다.

하지만 내전을 치를 정도로 깊었던 남북 예멘인들 간의 깊은 불신과 갈등은 잠복해 있었을 뿐 해소되지는 않았다. 남예멘은 정치적 주도권을 쥔 북예멘 지도층의 권력 나눠먹기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주종을 이룬 북예멘 집권자들이 국민들에게 종교를 강제하는 정책을 펴자, 여기에 남예멘 사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4년 남예멘이 예멘 연방공화국에서 탈퇴, 다시 내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인접 사우디 왕국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북예멘은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의 준동을 진압하고 살레 대통령의 인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

장기 집권에 들어간 살레정권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국민 모두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수십억 달러를 챙겨 해외 계좌에 숨겨놨다는 스캔들이 터졌다. 여기에 후세인 후티라는 반군 지도자가 등장해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독재에 염증을 느낀 남북 예멘인들을 규합해 세력을 키운 후티 반란군은 2014년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이듬해 3월엔 인도양의 항구도시 아덴항까지 장악했다. 살레는 부통령 하디에게 정권을 물려준 뒤 사우디로 망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우디를 비롯,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수단 카타르, UAE 등 중동 아랍국들은 자이드 시아파 후티의 득세에 위협을 느끼고 적극 개입을 시작했다. 이른바 ‘8인 갱’으로 불리는 이들 반 후티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 하디 부통령을 지원했으며 후티가 장악한 지역을 공습하기도 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이번에는 가만히 있질 않았다. 후티반군을 내세워 2016년 2월 사우디 내륙으로 진격하게 했으며 2017년엔 리야드 사우디 왕국와 공항에 탄도 미사일로 포격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도 끼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4월 리야드를 방문, 후티에 대한 사우디의 강력한 대응을 지지하고 1100억 달러어치 무기를 팔았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인근 수니파 아랍국들에게 무기판매에 열 올리고 있고 후티를 불법세력을 규정, 자국의 대사관을 수도 사나에서 아덴으로 옮겼다.

유엔이 수차례 중재안을 내놨으나 후티는 “우리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예멘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 국민들만 고통받고 있다. 사우디 등 ‘8인 갱’ 국가들은 무기반입을 저지한다는 핑계로 음식, 연료, 약 등의 후티 점령지역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공장이나 식량 저장창고를 폭격하기도 했다. 얼마전엔 후진국 전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해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예멘 내전엔 각 부족이 할거하면서 같은 후티세력 안에서도, 또 하디 부통령 정부세력 안에서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IS와 알카에다 등 이슬람 과격세력의 잔당이 숨어들어 내전 상황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예멘의 평범한 소시민들은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면서 살고있다.

그들 예멘인 100여 명이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 난민신청을 해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 대의이자 화두인 ‘인권’을 감안하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제주도의 일부 주민들은 이들 이질적 난민 수용에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속에 섞여들어 있을지도 모를, 또는 그들 이슬람 난민이 끌고 올지도 모를 테러분자의 과격행동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테러 청정지역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또 이들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도 난민 수용 반대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청와대 게시판엔 이미 반대 청원이 20만 건을 넘어서 조만간 정부는 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물론 난민 거부론의 심정은 이해가 가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예멘 난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하면 차갑게 외면하는 게 능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물도 낯설고 문화도 이질적인 한국 땅에 와서 도와달라 요청하고 있을까. 그들을 추방하면 매일매일 생과 사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지옥과도 같은 예멘땅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과연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그런 매정함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중동지역으로부터 많은 이주민이 흘러들어와 토종 한민족들과 섞여 살았다. 최근 한양대 이희수 교수에 의해 발굴된 이란의 전승 ‘쿠시나메’의 주인공 역시 페르시아의 왕자였다. 쿠시나메에 따르면, 그 왕자는 페르시아에서 반대세력에 쫓겨 중국을 경유, 경주에 도착해 신라공주와 결혼한 뒤 자손을 번식했다고 한다. 왕자는 또 신라의 도움을 받아 페르시아 왕국의 정권을 되찾았다는 게 쿠시나메 전설의 요지다.

고려말 개경에 귀순,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장순룡은 옛날 중앙아시아 셀렝가 강 유역에 살던 회회인(回回人)이었다. 위구르인, 이슬람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미남배우로 이름 높은 장동건은 덕수 장씨 장순룡의 말예라는 얘기가 있다. 골격이나 용모로 볼 때 몽골로이드인 순수한 한국인 핏줄과는 좀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게 알려졌는데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고려말 비슷한 시기에 창씨한 임천 이씨, 경주 설(?)씨 시조도 회회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중동인은 아니지만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저멀리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닐다가, 드러사(귀가해) 자리보니 가라리(가랑이가) 네히어라”로 시작하는 향가 처용가로 유명한 신라말기의 급간(級干) 처용 역시 아라비아에서 온 상인으로 전해진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신라에는 없었던 의술을 펼쳐 역병을 퇴치했는데, 그가 응용한 의술은 당시 세계 최고수준이던 아랍 의학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무튼 일부선 한민족이 단군 할아버지 이래 단일 핏줄이라 주창하지만 착각이다. 실은 남방계, 북방계, 유라시아계, 중동계, 심지어 극동 시베리아계까지 뒤섞인 혼혈민족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한반도인데 이질적인 지역의 난민들에게 무작정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미 한국 땅에 와서 SOS를 애타게 치고 있는 예멘 난민들을 매정하게 뿌리치는 것 역시 온정과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일 듯 싶다. TV에 비쳐진 한 어린 난민 아기의 천진한 눈망울이 눈에 밟힌다. 어찌보면 지금은 매우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들 역시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 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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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셋 2018-09-05 02:00:45
아래댓글에 연이어 올립니다.

56)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산당을 헐고 원주민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그들이 우리의 눈에 가시와 우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우리가 괴롭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당:이슬람서원, 원주민:이슬람교사람이 될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중심을 인권이란 이름으로 희석시키거나 훼손시키지 맙시다.
하나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아이셋 2018-09-05 01:48:18
하나님께선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민수기 33:51~56] 51)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5)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산당:이슬람서원, 원주민:이슬람교사람이 될것입니다.하나님께로 향하는 중심을 잃지맙시다

이아름 2018-06-30 03:00:47
내주변에도 취업못해 결혼못해 8포세대가드글드글한데 난민은무슨..
도움도 나살여력있을때도와주는거지
종전국도아닌데 무슨난민이야..

나라 팔 돈기자님 2018-06-29 17:51:39
제대로된 기자가 몇이나 있을까? ㅜ
알만한 사람다 아는데 ~ 참 씁쓸하다
진정 나란위해 진실만 기자 쓴 정직한 기자를
보고싶다 ㅡㄴ

청원ㄱㄱ 2018-06-28 11:25:37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69548

국민청원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