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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 외곽 경호 맡은 싱가포르 구르카 용병들... 그 무공을 보는 사태, 아무쪼록 없어야 할 텐데/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무릇 군인이란 국가나 군주에 대한 충성심, 조국애 등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모토로 한다. 병역 의무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는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하는 모병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역 근무시 받는 월급이나 복무 후 타는 연금 등 보상이 일정 부분 지급되지만, 대부분 정규 군인들은 그런 물질적 보상보다 추상적 대의(大義)를 앞세운다.

그런데 오로지 물질적, 금전적 보상 만을 추구하는 군사조직이 있다. 이른바 용병(傭兵)이다. 말 그대로 고용된 병사라는 뜻이다. 창녀에 이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고 한다. 실제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는 이집트 외 다른 나라로부터 고용한 용병들을 활용해 나라를 지켰다는 기록도 있다. 오스만 터키의 술탄(황제)들이 점령지 유럽의 기독교 자녀들로 구성해 만든 군사조직 예니체리, 14세기 초 비잔틴 제국이 투르크와 사우기 위해 고용한 스페인 국경지방 주민 ‘알모기바레스’ 등이 이름을 널리 떨친 용병조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1337~1453)이 끝난 뒤, 유럽은 싸움 외외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수천 명의 전직 군인들로 넘쳐났다. 15세기 스위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군인들로 구성된 용병대는 여러 군주와 대공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을 위해 싸워주었다. 이 용병들은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규율이 문란한 경우가 많아 전투 직전에 탈영하거나 고용주를 배신하고 민간인의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잦았다.

19~20세기 개인적인 모험이나 정의감의 실천을 위해 어디서든 가서 싸우는 용병들도 등장했다. 그리스 독립 전쟁에서 싸우다 말라리아에 걸려 전사한 낭만주의 영국 시인 바이런, 헤밍웨이의 대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미국인 로버트 조던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들어 3대 용병조직으로는 프랑스 외인부대, 스위스 용병, 그리고 네팔의 구르카 용병이 꼽힌다. 알제리 반란 진압에 혁혁한 공적을 세운 프랑스 외인부대의 명성은 <스페셜 솔저> 등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1863년 카메론 전투에서 60여 명의 외인부대가 2000여 명의 멕시코 정규군에 맞서 싸워 버틴 기록은 외인부대의 전설로도 전해지고 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모토는 “용기를 버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린다”라고 한다.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 그것이 외인부대의 뿌듯한 전통이며 자존심이다.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해 5년간의 의무복무 기한을 마친 뒤 프랑스에 정착해 유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한국인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랑스 외인부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스위스 용병은 중세부터 스위스 주정부가 유럽전역에 내보낸 스위스 군인들이 명성을 얻은 것이 시초다. 18세기 프랑스가 고용한 스위스 용병은 정규군의 정예부대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스위스 용병은 15세기 이후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의 근위대로 고용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용기나 담력, 체력과 개인적 군사 기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을 구축한 용병은 구르카 용병이다. 인도대륙 북부 네팔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구르카 족으로 구성된 용병이다. ‘쿠크리’란 단검 한 정으로 한 명이 100명의 무장 군인들을 상대해 이길 수 있다고 한다.

그 전설적인 기록 한토막-.

2010년 9월 2일, 영국 제8구르카 보병대대 하사로 퇴역한 비슈누 쉬레스다(35)는 귀향을 위해 열차를 타고 인도 북부 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다. 영국 정규군에 배속돼 이라크, 아프간 등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전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열차가 한밤중 정글을 지나는데 40여 명의 도적떼가 열차를 급습했다. 총칼과 장검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승객들로부터 지갑과 핸드폰 등을 빼앗았다. 그때까지 쉬레스다는 조용히 강도들의 요구에 응하고 있었다.

쿠크리 칼을 들고 검열을 받고 있는 구르카 용병(사지니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런데 한 강도가 18세 소녀를 그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강간하려고 했다. 여기에 격분한 쉬레스다는 조용히 쿠크리 단검을 꺼내 강도 두목을 제압하고 그를 방패삼아 20여 분간 강도들과 사투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두목 등 3명을 죽이고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나머지는 쉬레스다의 무술에 놀라 정글 속으로 도망쳤다. 사태가 진압되고 난 뒤 살펴보니, 쉬레스다는 왼팔에 가벼운 검상을 입은 게 피해의 전부였다. 영국 구르카 여단은 쉬레스다의 퇴역을 보류하고 5만 루피의 상금과 빅토리아 훈장 등으로 포상했다.

구르카 족은 원래 인도 중부에 살던 아리안 족 계열의 소수 민족이었다. 14세기 힌두교도라는 이유로 이슬람교도에 쫓겨 네팔로 올라가 정착했다. 17세기 청나라 건륭제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정복사업을 할 때 네팔지역에도 군침을 흘렸으나 구르카 족의 저항에 밀려 격퇴당했다. 당시 청나라 군사는 구르카 족에 대해 “단지 싸우기 위해 태어난 민족”이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1816년 인도를 장악한 영국군은 네팔을 침공했다. 당시 세계 최강이라는 영국군 1개사단 1만 5000여 병력을 보냈다. 하지만 쿠크리 단검이 무기의 전부였던 구르카 족 전사 1000여 명에게 패퇴했다. 신출귀몰하게 덤벼드는 전사들에게 거의 전멸하다시피 당했다. 물론 대포 등 현대식 무기를 장착한 증원군이 급파되면서 영국군의 승리로 전투는 결말이 났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은 구르카 족의 무력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네팔 정부와 용병계약을 맺었다. 1, 2차대전 등 영국이 참전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각종 전투에서 구르카 여단은 눈부신 활약을 했다.

훈련 중인 구르카 용병(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2차대전 중 버마 정글은 일본군의 독무대였다. 영국군들 사이에서 “일본군을 잡으러 정글로 들어가는 것은 상어를 잡으러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알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구르카 전사들에게 정글은 자신들의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였다. 구르카 대대 디마푸라 중사는 혼자서 일본군 참호에 뛰어들어가 24명의 일본군을 베어 죽였다. 몇몇 일본군은 철모를 쓴 두개골이 깨지고 어깨뼈까지 두쪽이 났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선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롬멜 장군의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작은 체구의 동양인들 몇 명이 영국군 전차부대에 배치됐다. 영국군 장교는 “저따위 야만인들이 이런 전쟁에서 뭘 할 수 있겠냐"면서 “참호나 파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장교는 자신의 막사를 나오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사 바로 앞에 방금 잘린 듯한 독일군 병사들의 목 10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교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구르카 용병들이 밤 사이 몰래 적진에 들어가 잘라온 것이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고 있었다. 우선 상대방을 억압해 굴복을 받아낼 요량이었다. 그래도 안되면 무력으로 진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포클랜드 포트스탠리의 아르헨 군 수비대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수백 명의 수비대 군인들이 달아나거나 미처 도망가지 못한 군인들은 방카에서 기어나와 백기를 흔들어댄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 수비대에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항복한 아르헨 군인들은 “제발 구르카 대대엔 넘기지 말아달라”고 통사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구르카 용병들은 “우리는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않는다”, “포로는 일체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불쾌해 했다고 한다.

구르카 용병들이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의 일원으로 한국 땅에 파견돼 용맹을 날렸다고 한다. 1951년 7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수리봉 고지전에서 구르카 병사들은 가장 앞장서 고지 탈환에 나섰다.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이 전투에서 유엔군 3000여 명이 희생됐으나 그보다 5배가 넘는 북한군과 중공군을 죽이고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경기 양평 지평리 전투에서도 구르카 대대가 활약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구르카 병사들이 이처럼 놀라운 용맹과 전투력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해발 수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뒷동산 뛰어다니듯 지치지 않고 종횡무진 달릴 수 있는 체력과 폐활량이 바탕이라고 한다. 또 5세 때부터 모든 남자 아이는 쿠크리 칼을 인수받고 적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 않는 용사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쿠크리 칼(사진: Creative Commons)

현재 네팔의 주요 수입원은 마약과 관광, 그리고 용병이라고 한다. 용병을 파병하면 본인 뿐 아니라 국가도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지고 있다. 네팔인들, 특히 구르카 족들 사이에서 용병은 최고의 직업이다. 네팔의 영국군 주둔지 포카나에는 용병 입시학원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10대 후반 청년들을 대상으로 용병을 매년 한 번씩 선발하는데 인기가 높아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4~5수 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선발시험은 체력 테스트와 영어, 수학, 상식 등 필기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체력 테스트의 경우 25kg 무게의 모래주머니를 머리에 이고 6km 산길을 48분 안에 주파하는 것이 기본이다. 테스트에서 합격하면 3년 동안 초강력 군사훈련을 받은 뒤 용병 자격증을 얻어 해외에 파견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한다. 한 번 용병이 되면 보통의 네팔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보수를 받게 된다.

구르카 용병은 현재 영국 뿐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국가에서도 고용하고 있다. 인적 자원이 모자라는 싱가포르의 경우 1800여 명의 구르카 용병이 치안과 국방 등을 담당하고 있다. 오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등 VIP 외곽 경호에 구르카 용병들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그들의 화려한 무술을 보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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