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런 유권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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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유권자의 힘
  • 경성대 신방과 교수 우병동
  • 승인 2013.01.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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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청난 민심의 벽을 보았다. 무슨 소리를 해도, 아무리 큰 사건이 벌어져도 꿈쩍하지 않는 국민의 뜻을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1년 가까이 이명박 후보를 지켜주고 마침내 그를 배 가까운 표차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가공할 국민의 힘이었다.

지난 몇 차례의 대선이었다면 일찌감치 낙마했을 것 같은 커다란 의혹과 비리가 있었음에도 여론은 꿈쩍 않고 이 후보를 지지했다. 검찰이 범죄와 연루된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민심을 그렇게 단단하게 뭉쳐놓았을까? 왜 국민들은 한사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을까?

이번 대선의 특징은 민심이 대통령을 뽑았다는 것이다. 과거 선거라고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들이 외부의 다른 힘과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의사와 결정에 의해 후보를 선택하고 그를 지켜냈다. 특히 5년 전 김대업 씨의 병풍(兵風)이 대선 판도를 갈랐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이 판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는 더 이상 한 방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선거에서는 국민 자신이 후보를 결정했다기보다 인물이나 지역요인 또는 흑색선전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아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기로 작정을 한 듯 자기의 생각만 고집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이것은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유권자들이 외부 요인에 영향받지 않고 자기 판단을 존중하는 한 단계 성숙한 자세를 지킨 것으로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도 과거 대중사회의 수용자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소극적이고 무력한 존재들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개인의 지적 능력이 발달되고 자기 이익과 자아의식이 점차 강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더 이상 미디어의 메시지나 외부의 영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현실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됐다.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힘과 능력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즉, 적극적이고 고집스러운(obstinate) 수용자로 변했다.

이번 대선의 유권자 의식에서 이러한 변화와 발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제 유권자들은 더 이상 외부의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뚜렷한 의사를 행사하는 강한 유권자가 된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선거의 객체가 아니라 자신의 한 표를 당당히 행사하는 주체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과거처럼 특정 정치인의 보스 의식,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파벌주의, 그리고 특정 정치세력에 의한 네거티브 공세나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은 비리 의혹 폭로 등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게 됐다. 그러한 것들을 어디까지나 참고자료로 삼아서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확실한 입장을 지킬 수 있는 당당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자세 변화는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국민들이 자신의 판단에 충실하게 되었다는 것은 특정 후보나 그를 둘러싼 요인들에 영향받지 않고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후보 개인이 좋아서 판단했다기보다는 그에게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에게 맡겨본 뒤 아니라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처럼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유권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앞으로 정치인들은 이러한 국민들의 자세 변화를 깨닫고 국민들의 의도와 필요에 상응하는 정치를 하고 정책을 개발해야지, 자신들의 뜻에 맞게 국민을 이끌고 가려 하다가는 실패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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