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매 맞는 경찰, 주취자 폭행 다스릴 법안 마련을” 현직 경찰관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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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매 맞는 경찰, 주취자 폭행 다스릴 법안 마련을” 현직 경찰관 호소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5.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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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집행방해 사범 10명 중 7명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경찰이 매 맞으면 국민을 보호하기 어렵다” 국민 청원 / 조윤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경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경찰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유공자 포상을 하고 있다(사진: 더팩트 최용민 기자, 더팩트 제공).

술 취한 사람의 폭언과 폭행으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찰관들이 많다. 지난달 주취자에 의한 폭행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소방관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 내부에서 주취자에 의한 공권력 침해 행위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문제의식이 불거졌다. 이 가운데 소방관과 함께 주취자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피해를 자주 겪는 경찰 내부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중학교 2학년생 김모(15, 부산시 연제구) 군은 얼마 전 9시가 넘어서 퇴근한 아버지의 머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정수리 부근에 볼록하게 혹이 나 있었던 것. “어떻게 된 일이냐”는 김 군의 물음에 경찰관인 김 군의 아버지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술 취한 사람이 그랬다”고 대답했다. 속상해하는 김 군에게 그의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경찰 일 하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겠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김 군의 아버지는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취자에게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려던 김 씨의 아버지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주취자의 아내가 경찰서로 찾아와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하는 탓에 그냥 넘어가 줬다. 김 군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폭행하는 사람은 술에 취해 판단 능력이 흐려서 그랬다는 이유로 감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경찰관이라고 밝힌 익명의 청원인이 공권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청원을 지난 15일 게재했다(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주취자의 폭언 폭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경찰 내부의 목소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저는 경찰관입니다. 국민 여러분 제발 도와주세요’를 제목으로 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20대 경찰관이라고 밝힌 익명의 청원인은 “근무한 지난 3년 동안 술에 취한 시민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20번 넘게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따귀를 맞았고,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을 맞았고, 얼굴에 침도 맞아봤고, 무릎에 피멍도 들어봤다”며 “제가 유독 많이 맞은 것이 아니라 전국의 경찰관들이 맞고도 참아서 국민 여러분이 잘 모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경찰이 매 맞으면 국민을 보호하기 어렵다”면서 ▲경찰관 모욕죄, 폭행 협박죄를 신설해 강력히 처벌할 것(술 취한 경우 가중처벌), ▲경찰들이 테이저건, 삼단봉, 가스총 사용할 수 있도록 면책조항 신설, ▲경찰청의 경찰에 대한 적극적 소송 지원, ▲경찰관 모욕, 협박죄에 대한 양형 지침을 마련해 집행유예로 범죄자가 풀려나는 경우가 없도록 할 것 등 4가지를 정부에 요청했다. 해당 청원은 청원이 시작된 지 8일이 지난 현재(22일) 4만 6000명 이상의 동참을 끌어냈다. 다음 달 14일까지 20만 명 이상이 이 청원에 동참 할 경우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듣게 된다.

공무집행방해 사범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경찰청은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주취폭력·공무집행방해 사범 특별단속에 나섰다. 단속 결과,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사범 총 1800명을 검거했고, 이 가운데 공무집행 사범의 74.4%에 달하는 1340명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집행방해 사범 10명 중 7명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을 폭행하는 등의 공권력 침해를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관, 소방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폭언을 가하는 주취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실제로 지난해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1심 재판을 받은 공무집행방해 사범 1만 231명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5117명(50.0%)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 등 재산형이 3719명(36.3%)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공무집행방해 사범은 전체 중 9.4%에 불과한 968명에 그쳤다.

주취폭력으로 인한 공권력 소모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 행정 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지난해 ‘2012년 이후 공무집행방해 사범 검거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현재 주취자 보호조치와 관련하여 규정과 시설 미비로 인해 일선 경찰들의 부담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당한 공무집행과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부산 다대지구대 류현준 경찰관은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시간에 경찰이 주취자들을 상대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올바른 치안 서비스가 가능할 수 없다“며 ”주취 소란자에 대한 처벌이 능사가 아닌, 그보다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올바른 음주문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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