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 영화인들, 개막식 썰물 퇴장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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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 영화인들, 개막식 썰물 퇴장 유감
  • 취재기자 김승수
  • 승인 2014.10.0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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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작품 안보고 뿔뿔이 자리 떠 ... 관객들, "손님 모셔놓고" 곱잖은 시선

 

▲ 수많은 국내 영화배우들이 개막작도 안보고 개막식을 빠져나간 빈 자리가 썰렁하다.(사진: 취재기자 김승수)

 

지난 2일 부산 국제영화제(BIFF)가 화려한 막을 연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수많은 인파가 모였고, 그 인파에 걸맞게 한국 영화계의 톱스타들과 감독 등 영화인이 총출동했다.

VVIP 입장권을 손에 쥔 기자는 일반 관객들과는 다른 길로 영화의 전당에 입장하는 행운을 얻었다기자가 입장한 길은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자원봉사자들이 도열해 사람들이 입장할 때마다 인사를 해주는 '아주 특별한' 길이었다.  기자가 그 길을 걸어 입장하자 한 BIFF 관계자가 자원봉사자들에게 더 웃어, 더 크게 웃어라고 주문했다그러자 자원봉사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고 기자도 왁자지껄 폭소를 터뜨렸다기자는 마치 영화배우가 된 듯한 기분에 공연히 어깨가 우쭐했다. 자리를 확인해보니 일반 관객과는 다르게 영화배우와 한 공간에 있는 자리였다.

지정된 자리에 앉은 기자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개막식 시작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다가오자, 영화계의 별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정우성, 김희애, 조정석, 이솜 등이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이들 특급 스타들이 등장할 때마다 큰 환호성이 들렸다. 개막축포로 쏘아올린 폭죽보다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은 국제영화제의 주인공이 그들임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잠시 후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내 영화배우들은 개막식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얼굴만 비추러 국제영화제에 온 듯했다사람들의 환호성과 포토 플래시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축하공연과 시상식이 끝난 뒤 개막작을 감상하지 않고 홀홀히 자리를 떴다관객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개막작 상영 직전 영화인들이 퇴장한 자리로 우르르 달려가 앉았다. 한 관객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작은 대만과 중국 전쟁의 아픔을 그린 <군중낙원>. 이 영화의 감독인 도제니우(50·대만)가 개막작 상영 직전 무대에 올라 영화의 도시 부산에 오니 즐겁다영화를 재밌게 봐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시선은 퇴장준비를 하는 영화배우들의 뒷모습으로 쏠렸다. <군중낙원> 제작진의 인사말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였다. 기자는 얼굴이 공연히 화끈거렸고 부끄러워 의자 뒤에 숨고 싶었다. 국내 영화배우들이 영화제에 참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까지 들었다.

우리에게 낯선 외국의 초청 인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물론 개막작도 관람했다. 그들은 입장 할 때 국내 영화배우들에 비해 관객들로부터 그리 큰 박수를 얻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영화제에 온 이유와 역할은 제대로 알고 있었다.

<군중낙원>은 도제니우 감독이 6,70년대 아버지의 군 생활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감독은 대만과 중국이 영토문제로 금문도라는 섬에서 대치할 때 대만 내에서 일어나는 자화상을 그렸다영화는 831부대라는 공창을 무대로 펼쳐진다. 이곳은 매춘을 하는 곳이다. 감독은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들, 인간들의 갈등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희망과 꿈을 그렸다. 실제 영화를 보면서 기자는 매춘을 하는 여자와 그들을 관리하는 남자가 나와 기타를 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이 장면에서 기자는 하찮은 인간은 없고 누구든 꿈을 꿔도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던 순간 더 큰 감동이 찾아왔다. 개막작을 본 영화의 전당 모든 관객들이 영화를 위해, 감독을 위해, 배우를 위해, 영화가 던지는 의미를 위해 기립해서 큰 박수를 보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영화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우리 모두가 알게 됐다. 영화제 주인공은 영화를 본 뒤 자신의 감정을 진심어린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과 개막작을 만든 제작진과 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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