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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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왜 없나?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14.09.08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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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홀름 중심가의 쓰레기통(사진: 박기철 시빅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방학 기간 중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톡, 여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에 머물다 모스크바까지 갔다. 9,288km의 긴 거리다. 열차에서만 꼬박 일주일을 자야 한다. 여기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기차 타고, 다시 여기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여기서 배 타고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과 웁살라, 여기서 기차를 타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여기서 배 타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들러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러시아 4개 도시와 북유럽 4개국 5개 도시를 아무 정해진 계획이나 일정없이 자유롭게 행진하는 25일간의 여정이었다. 유적지, 박물관, 쇼핑가를 둘러보는 관광이 아니었다. 대학, 골목길, 대중교통을 체험한 여행이었다. 말이 번듯한 러시아 북유럽 여행이지 식당에서 밥 한 번 사먹지 않은 가난한 여행이었다. 돈도 부족한데 특히 북유럽 물가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사먹어 보았자 결국은 샌드위치 류를 접시에 멋지게 깔아 먹는 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 동안 늘 항상 언제나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쓰레기통이었다. 결국 이번 여행은 쓰레기통 순방여행이었다. 원래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쓰레기통은 처음 들른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우선 쓰레기통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 쓰레기통의 20배도 넘는 중량이었다. 철의 장막으로 불렸던 구 소련 때 철이 하도 많아서 쓰레기통까지 무겁게 철로 만들었을까? 게다가 그런 쓰레기통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거리에 안정되게 비치되어 있었다. 길거리는 제법 깨끗하였다. 물론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서울이나 부산보다는 그 양이 훨씬 적었다. 특히 식당 등의 업소에서 수거해 가라며 봉지에 담아 길거리에 무단방치한 대용량 쓰레기 더미를 볼 수 없었다. 업소에서 길바닥에 내던지는 광고 전단도 없었다. 도시가 깨끗하니 첫인상이 좋았다. 말단 주변부 외진 도시라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안 그랬다. 길거리가 깨끗하니 행인들도 그만큼 깨끗하며 온화하게 보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도 깨끗하였다. 인도 열차에서처럼 쓰레기를 마구 창밖으로 내다버리는 사람도 없었고 각 객실 차장이 승객들 쓰레기를 모아 정차한 역에 내려주며 갔다. 그러니 객실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길거리에도 쓰레기통은 일정한 간격으로 비치되어 있었다. 대도시라서 그런지 쓰레기통 용량이 더 크고 무거웠다. 북유럽 4개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가 러시아에서 북유럽으로 노선을 정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스웨덴이 Swedish Grace를 내세우며 자기네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그만큼 청결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길거리도 정말 그런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길거리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복지천국이라는데 동냥하는 거지들도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에 쓰레기가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며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스톨홀름 중심가에서 본 쓰레기통은 인상적이었다. STOCKHOLM STAD, 즉 스톨홀름 시티라고 박힌 저 묵직한 검정색 쓰레기통이 일정한 간격으로 비치되어 있었다. 존재감 있는 쓰레기통 모습이 폼나게 여겨졌다. 마구 만든 쓰레기통이 아니라 디자인 강국 스웨덴답게 미감있게 디자인된 품격이 느껴졌다. 덕분에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는 별로 없었다. 음료수 등을 마시고 아무 데나 버릴 이유가 없었다. 쓰레기통이 저렇게 당당하게 여기저기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길거리 쓰레기통에 눈이 갔다. 그런데 눈이 갈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공짜, 식당 물 공짜인 인심좋은 우리나라가 쓰레기통은 지극히 인색하다. 부산 경성대 버스 정류장에서 부산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도대체 쓰레기통이 몇 개나 되는지 세려 했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아예 잘 보이지 않아서 도중에 세지 않게 되었다. 한 두 개 아주 어쩌다 있던 쓰레기통은 꽉 차서 주변이 더러웠다. 우리나라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이유는 준비를 미처 못해서가 아니라 언제부턴가 하나의 이상(異常)한 이상(理想)적 도시정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일부러 쓰레기통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쓰레기통을 길거리에 두면 쓰레기가 많아져 도시가 지저분해진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산에는 쓰레기통을 두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산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가지고 내려와야 옳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도시의 길거리는 산과 다르다. 사람이 살며 오가는데 쓰레기가 당연히 나오게 되고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어야 도시는 깨끗해지는 게 아닐까? 이번 여행 전 길거리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그리 버리는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런데 여행 후 쓰레기통도 없는데 그나마 이 정도라도 깨끗한 길거리를 유지하는 우리 시민의식을 좋게 보게 되었다. 그런 시민들에게 쓰레기 부담을 괜히 주지 말고 멋진 쓰레기통을 선물하면 안될까? 쓰레기통 없애서 쓰레기 없앤다는 행정편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素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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