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교실 왕따...휴대폰 데이터 빼앗는 '와이파이 셔틀'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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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교실 왕따...휴대폰 데이터 빼앗는 '와이파이 셔틀' 기승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4.19 0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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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원 넘는 요금 폭탄에 데이터 무제한 가입 강요하기도…“일진 강요에 어쩔 수 없어” / 정인혜 기자
핫스팟을 통해 스마트폰 데이터를 빼앗기는 '와이파이 셔틀'이 새로운 학교 폭력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모(43) 씨는 얼마 전 아들의 휴대폰 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27만 원이 넘는 요금이 청구됐던 것. 내역을 살펴보니 ‘데이트 이용료’가 24만 원가량 부과돼 있었다.

‘게임을 했겠거니’ 생각하고 아들을 꾸짖었던 김 씨는 뜻밖의 대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들은 “우리 반 애들이 핫스팟을 켜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핫스팟은 스마트폰을 ‘휴대용 인터넷 공유기’로 만드는 기능이다. 핫스팟을 열어놓은 스마트폰과 연결하면 다른 이용자들이 해당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김 씨는 “학교에는 와이파이가 없다. 소위 ‘일진’이라는 아이들이 자기 데이터를 아끼려고 우리 아이 휴대폰 데이터를 공유한 것 같더라. 세상이 바뀌니 괴롭히는 방법도 달라진다”며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현재 학교폭력위원회에 이를 알린 상태다.

학교 폭력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학교 폭력이 물리적인 신체 폭력이었다면, 최근의 학교 폭력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디지털 폭력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와이파이 셔틀’도 그중 하나. ‘일진’ 학생들이 힘없는 학생에게 핫스팟 연결을 강요하고 자신들은 공짜로 인터넷 데이터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고교생 박모(18) 군은 학교에서 이 같은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에는 각 반에 한 명씩 ‘와이파이 셔틀’이 있었다고. 한 친구의 데이터를 반 전체가 공유한 적도 있었단다.

박 군은 “처음에는 일진들만 쓰다가 나중에는 그 반의 모든 학생이 그 핫스팟을 공유했다. 친구들 모두가 쓰다 보니 죄책감도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피해 학생 휴대폰) 요금이 50만 원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땐 조금 미안했다”고 말했다.

아예 ‘무제한 요금제’로 요금제 변경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 학생 부모의 의심을 피하고, 일진들도 부담 없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학생 최모(15) 군이 교실 문을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핫스팟을 켜는 것이다. 지난달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핑계로 와이파이 셔틀을 벗어나나 싶었는데, 일진들의 집요한 요구에 버티지 못하고 데이터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꿨다. 배터리가 빨리 닳는 문제는 보조 배터리로 해결한다.

최 군은 “엄마가 의심한다고 이제 핫스팟을 못 켠다고 했는데, 8만 원짜리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라고 해서 바꿨다”며 “아침에 선생님께 휴대폰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못 내게 막고 배터리가 없어서 내 핸드폰이 꺼질까 봐 보조 배터리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가해 학생들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인다. 물리적인 폭력이 없으니 학교 폭력이 성립될 수 없다는 논리다. 고등학생 이모(19) 양은 “학생 요금제는 데이터가 얼마 안 되고, 학교에서는 와이파이도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정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는데, 그냥 순순히 핫스팟을 켜주니 솔직히 그걸 왜 안 쓰겠냐”며 “때린 것도 아닌데 별문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학교폭력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는 형법상 ‘공갈 혐의’, ‘협박죄’, ‘강요죄’에 해당한다. 데이터를 빼앗아 사용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협박’이 있었고, 데이터 공유를 '강요'했으며 피해자에게 요금 폭탄이라는 '재산상 피해'를 안겼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 폭력도 당연히 학교 폭력에 포함된다”며 “피해를 당했을 때는 혼자서 앓지 말고,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경찰서에 무조건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 신고는 112, 학교폭력 상담센터 117, 청소년 긴급전화 1388, 청소년 사이버 상담센터, 안전드림센터, 스마트폰 앱 ‘117CHAT’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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