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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의사가 울고 갈 '박재혁 거리'...생가터 비어 있고, 거리엔 표지판만 덩그렁일제 강점기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 투척...동구청 "별도 홍보 계획 없다" / 박지현 기자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일제 강점기,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지시를 받아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던지고 현장에서 체포돼 옥중 단식을 벌이다 순국한 박재혁(朴載赫) 의사(義士)가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지난 2012년 8월, 부산 동구청은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항일 호국정신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범일동 KT회사 앞 사거리 조방로 일부 약 630m 구간을 ‘박재혁 거리’로 명명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이곳이 독립운동가 거리인지 모를 정도로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표지판이 있기는 하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 2번 출구에서 KT 통신회사가 있는 곳까지 약 8분 정도 걷다 보면, 범일 교차로 앞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라고 적힌 도로명 주소 이정표가 하나 보인다.

부산시 동구 범일동 범일교차로 일대 630m 구간인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를 빨간색으로 표시하면 사진과 같다(사진: 네이버지도 캡쳐).
고개를 들어 위로 쳐다봐야 보이는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 이정표(사진: 취재기자 박지현).

이곳이 ‘박재혁 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도로명주소 이정표 이외에 작은 안내판이 하나 더 있다. 잠시 멈춰서 안내판을 읽어보는 사람은 1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고,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만 가득해서 어느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안내판(사진: 취재기자 박지현)

이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 30여 명에게 이 거리가 박재혁 거리라는 것을 아느냐 물었더니 아는 사람은 10명 안팎이었다. 김현정(26,부산 동구) 씨는 이 거리가 박재혁 거리라고 정한 걸 전혀 몰랐다고 한다. 김 씨는 “건너편에 있는 단골 카페 때문에 자주 이 거리 앞에 있는 교차로를 건너는데, 스쳐 지나가기만 해서 아무 표지판도 못 봤다”고 말했다.

근처 직장이 있어 자주 이 거리를 지나간다는 이명순(52) 씨는 “독립운동가 거리가 생긴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안내판 하나 덜렁 있어서 실망했다”며 “지금은 이 거리를 지나가도 본체만체하며 지나간다”고 말했다.

박재혁 거리 홍보 방안에 대해서 부산시 동구청 관계자는 “자체적인 홍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재혁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립상업학교 2학년 재학 중 최천택과 함께 일제에 의해 금지된 국사교과서인 <동국역사(東國歷史)>를 비밀리에 배포했고, 뒤이어 부산진 출신 친구들과 함께 비밀결사단체인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해 항일잡지를 발간해 배포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박재혁 의사는 무역상으로 일하며 상해 및 싱가포르에서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상해에서 김원봉과 만났고, 의열투쟁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다.

1919년 11월, 만주 길림(吉林)에서 결성된 의열단은 그후 국내의 주요 일제기관들에 대한 동시 투탄거사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 그 일환으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은 박재혁에게 의열단 탄압에 앞장선 부산경찰서를 폭발할 폭탄과 군자금을 건네주며 거사를 권유했다.

1920년 9월 14일, 평소 고서(古書)에 관심이 많던 부산결찰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를 표적으로 고서를 파는 중국인으로 가장한 박재혁은 부산경찰서 내 서장 집무실에서 하시모토를 만날 수 있었다. 박재혁은 드디어 하시모토를 향해서 숨겼던 폭탄을 던졌다. 좁은 공간인 서장 집무실에 같이 있던 하시모토와 박재혁은 모두 중상을 입었다. 박재혁은 현장에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많은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고통을 겪었다. 박재혁은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손으로 죽겠다"고 결심한 후 옥중 단식을 했고, 단식 9일 후 순국(殉國)했다.

이러한 업적을 가진 박재혁 의사는 부산 동구 범일동 550번지에서 출생했다.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와 약 1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의 생가터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라는 표식조차 찾을 수 없었고, 바뀐 도로명 주소인 자성로103번길 4-5란 표기만 존재했다. 인근 주민인 김 씨는 “여기가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는 맞지만, 현재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지현)

현재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아닌 일반상업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지만, 일반상업지역은 문화재 보호를 위한 별다른 제한을 할 수 없다.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가 현재 일반상업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사진: 토지이용계획도 캡쳐).

이에 대해 부산보훈청 관계자는 “부산시와 동구에서 자체적인 복원 사업 계획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당장 박재혁 의사 생가를 관리하거나 보존할 계획은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관계자는 “박 의사 생가의 주소가 제적등본, 경찰 조서와 다르고 역사 고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가 복원은 어렵다”고 말했다.

경성대 인문문화학부 강대민 교수는 “부지 매입은 부산시나 동구청에서 담당하고, 복원비는 보훈청에서 부담하는 것이 옳다”며 “이런 일을 추진하기 위한 위원회가 결성돼 박재혁 거리 홍보 일이나 생가 복원 계획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재혁 의사 가족들은 5월 12일 부산 어린이 대공원에서 부산보훈청 주관으로 '박재혁 의사 추모제'를 지낼 예정이라고 본지에 전해왔다.

취재기자 박지현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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