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치솟은 교회 첨탑, 강풍 불면 아찔한 흉기로 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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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치솟은 교회 첨탑, 강풍 불면 아찔한 흉기로 돌변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4.1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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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대구서 도로에 떨어져 행인 부상...높이 6m 넘으면 불법이지만 "종교시설" 단속 뒷짐 / 정인혜 기자

태풍을 연상시키는 강풍이 11일 전국을 강타했다. 순간 초속 20m를 넘나드는 강풍에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간판이 떨어지고 가로수가 넘어갔으며, 건물 철제 구조물이 추락하면서 재산·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강풍주의보는 이날 오전께 해제됐다.

강풍이 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것은 단연 교회 십자가 첨탑이다. 이번 강풍에도 대구에서 고층에 설치된 철제 교회 첨탑이 맥없이 도로로 떨어져 내렸다. 이 사고로 행인 1명이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교회 첨탑들은 가늘고 긴 특유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상가 건물 위에 설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바람이 조금만 강하게 불어도 넘어지기 쉽다. 높은 곳에 있는 첨탑이 떨어질 경우, 주변 건물이나 사람을 덮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떨어진 첨탑도 9층짜리 건물 옥상에 위치해 있었다.

교회에 세워진 첨탑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전국의 교회 수는 약 7만 8000개로 집계됐다. 이는 동기간 약 2만 5000개를 기록한 편의점 수의 세 배를 넘는 수치다. 이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바 없어 현재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길을 걷다 보면 쉽게 교회를 마주할 수 있다. 한 골목 걸러 교회 하나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모든 교회에 첨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가 큰 교회에서는 첨탑이 없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번에도 첨탑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불안감은 배가 됐다. 직장인 박미정(3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매년 태풍이나 강풍이 불면 첨탑이 쓰러져서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는데도 왜 그냥 놔두는지 모르겠다. 한눈에 봐도 너무 위험해 보인다”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쓰러질까 무서워서 교회 근처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형 교회 인근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의 경우 불안감은 배가 된다. 교회 옆에 위치한 빌라에 거주 중인 주부 송모(40) 씨는 “바람 불 때마다 첨탑 십자가가 흔들거리는데, 무서워서 못 살겠다. 아이들에게도 교회 앞으로는 지나가지 말라고 당부한다”며 “날씨 재난에 가장 취약한 건축물 중 하나가 아니냐. 위험하고 미관 상으로도 안 좋은데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교회에서 첨탑을 설치할 경우 따르는 행정규제는 따로 없는 듯 보인다. 구조물이 6m가 넘을 경우 건축법이 적용되지만, 6m를 넘는 첨탑은 여전히 설치되고 있다. 건물설비 설치 공사업체에 문의하니 교회에 설치되는 첨탑은 대개 7~8m라는 답이 돌아왔다. 설치 가격은 250만 원에서 500만 원대. 모두 건축법을 위반한 ‘불법 건축물’이다.

불법건축물 관리는 대개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이다. 현행법상 지자체장은 불법건축물에 자진철거 등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만 이를 관리하는 지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013년 경기도와 부천시에서 '6m 이상 교회 첨탑 자진신고' 권고를 내리기는 했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뒷짐만 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수가 많아 관리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종교 시설물'이라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자치단체의 한 관계자는 “안전 문제 대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교회를 전수조사하고 강력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교회 측의 자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은 교회로 넘어갔다. 교회 측에서는 안전을 위협하는 첨탑을 정비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모든 첨탑을 한꺼번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의 S교회 김모 목사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교회 첨탑은 없애는 게 맞다는 생각”이라면서도 “많은 교회에서 첨탑이 기독교를 나타내는 종교적 상징으로 쓰이는 만큼, (철거까지는) 단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모 목사(서울시 은평구)는 “불법으로 설치된 첨탑이 안전 위협 요소로 지적되는 현실에 부끄럽다. 교회 수가 늘어나면서 경쟁적으로 첨탑을 세우다 보니 이런 상황이 온 것 같다”며 “이미 설치된 첨탑을 한 번에 철거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교회들이 점차적으로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전도해야지, 첨탑 보고 사람들이 오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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