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곤지암' 흥행 가도에 촬영지 영도 주민들 스트레스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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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곤지암' 흥행 가도에 촬영지 영도 주민들 스트레스 폭발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4.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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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사람들 등쌀에 못 살겠다" 하소연…인근 상인들도 "장사엔 보탬 안 돼" / 정인혜 기자

동네 유명세는 자꾸 높아지는데, 주민들은 매일이 스트레스다. 영화 <곤지암> 촬영지 부산 영도 구(舊) 해사고등학교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다. <곤지암>이 흥행 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영화 촬영지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이곳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영화 <곤지암>은 1996년 폐원한 경기도 광주시의 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다. 이곳은 지난 2012년 10월 미국 CNN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7곳 중 한 곳으로 소개되면서 국내 대표 흉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병원이 폐쇄된 이유가 환자들의 의문사, 병원장의 자살 때문이라는 등의 괴담으로 번졌고, 영화 <곤지암>은 이를 소재로 제작됐다.

지난달 28일에 개봉해 개봉 3주차에 접어든 <곤지암>은 독보적인 흥행세를 과시하고 있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곤지암>은 개봉 2주차 주말인 지난 6~8일까지 사흘간 51만 3669명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누적 관객 수는 224만 8491명으로 집계됐다. 영화 <장화, 홍련>에 이어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장화, 홍련>의 기록을 깨고 1위까지 오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화 <곤지암>에 등장하는 곤지암 정신병원 건물 복도(사진: 쇼박스 제공).

무서운 흥행세를 올리고 있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촬영지에서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통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영화 촬영을 반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독특한 현상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영도 구 해사고 인근 주민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구 해사고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78년 개교한 부산해사고등학교가 있던 곳으로 지난 2007년 학교를 이전하면서 폐교됐다. 9번, 영도5번, 영도7번 버스 정류장이 인근에 있다.

9일 찾은 구 해사고.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물 주변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정문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보인 건물 외벽은 빛이 바래 있었고, 누런 때가 앉은 창문틀은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깨진 유리 창문 안으로는 어두운 교실이 보였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빨간색, 검정색으로 아무렇게나 쓰인 낙서들이 벽면에 가득했다.

영화 <곤지암> 촬영 장소 영도 구(舊) 해사고등학교 건물 외벽. 대부분의 유리창이 깨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학교 정문이 보인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학교 문이 열려있냐’는 질문에 “그건 왜요”라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는 “도대체 저기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몰려오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퉁명스러운 주민의 반응과는 다르게 학교 교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녹색 철조문 앞에는 ‘사전 허가 없는 출입 및 사용을 금한다’는 해양경찰청장 명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운동장 개방 시간은 겨울철에는 새벽 6시부터 저녁 8시, 여름철에는 새벽 5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다.

운동장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넓었다. 고운 모래 위에는 운동장 연단을 가운데 두고 아주 낡은 운동장 스탠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탠드는 비가 내리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오래돼 보였다.

넓은 운동장에는 편안한 복장을 한 주민들이 구보를 하고 있었다. 야구단원을 모집한다는 홍보 현수막도 보였다. 이곳은 평소 지역주민들의 운동 장소나 리틀야구단의 연습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구보 중이던 한 주민은 “운동장이 넓어서 매일 이곳에서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구보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터라 더 이상의 질문은 하기 힘들었다. 사실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영화 <곤지암> 촬영 장소 영도 구(舊) 해사고등학교 운동장 전경. 평소에는 주민들의 운동 공간으로 쓰인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학교 건물로 올라가려는데, 뒤에서 ‘삑’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이어 따라온 목소리는 “아가씨 거기 들어가면 안 돼요!”라며 잔뜩 날이 서 있었다. 호루라기의 주인은 이곳의 관리인. 그는 “거기를 왜 들어가려고 그러냐”며 까칠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들어오면서부터 따가운 눈총이 따라왔던 터다.

취재차 찾았음을 밝히자 날 선 반응이 다소 누그려졌다. 그는 “영화(<곤지암>)가 나온 뒤부터 사람들이 몰려와서 미치겠다”며 “다른 영화 나왔을 때는 별 반응이 없더니 이번에는 유독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구 해사고는 <곤지암> 외에도 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 <1987>, <시간이탈자>, <덕혜옹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공개 수배’ 에피소드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4위를 기록한 <신과 함께>의 토네이도 신도 이곳 운동장에서 촬영됐다.

관리인은 “학교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못 할 정도”라고 말했다. 낮에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밤에는 ‘공포 체험’을 하겠다며 손전등을 들고 쳐들어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란다. 주말에는 밤낮 할 것 없이 밀려 들어온다고 했다. 출입을 막아도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는 “우리도 살아야하는데, 매일 같이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죽겠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운동하던 주민들도 다 불편하다고 난리”라며 “제발 적당히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인근 식당은 관광객들의 덕을 보고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NO’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도움이 안 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한 식당 주인은 “위치가 애매해서 다들 차를 타고 오는데, 주차해 놓고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번화가로 나가지, 우리에게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다”며 “주변에 쓰레기나 버리고 아주 짜증 나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공포 체험'을 위해 <곤지암> 정신병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앞선 관광객들로 도로가 혼잡해진 탓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주민들의 이 같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인터넷에는 건물 정문에서 우회해 월담하는 방법, 사진 찍기 좋은 장소 등의 팁이 공유되고 있다. 이번 주말 부산 여행을 계획 중이라는 대학생 박모(25, 충남 천안시) 씨는 “실제 곤지암 정신병원에는 막상 별 게 없는데, 해사고에는 볼 게 많다더라”며 “원래는 대구로 여행갈 계획이었는데, <곤지암>을 보고 부산행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원천적으로 전면 금지된다. 교문 앞에 붙어 있는 경고문 내용처럼 이곳을 무단으로 침범할 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은 해양경찰 측에 신고 후, 관리실 측의 통솔하에 출입해야 한다.

관리실 측은 “사진 촬영이나 관람 목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경에 공문을 보내 알리고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며 “관리실 몰래 들어가지 말고, 원하는 분들은 절차에 맞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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