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로 재조명되는 영화 '시민 케인' / 황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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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로 재조명되는 영화 '시민 케인' / 황혜리
  • 부산시 진구 황혜리
  • 승인 2018.04.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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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민 케인>의 감독은 오손 웰즈(Orson Welles)다. 그는 1915년 5월 6일에 태어나 1985년 10월 10일에 사망한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이며, 배우이자, 각본가이다. <시민 케인>은 1941년 개봉 당시 스물여섯이던 오손 웰즈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아직도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할리우드 영화 1위로 꼽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영화학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되면서, <시민 케인>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케인이 임종 시 남겼던 ‘로즈버드(장미꽃 봉오리)’라는 말의 뜻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그 단어를 기반으로 과연 케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하는 질문에 답한다.

<시민 케인>의 한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시민 케인>의 도입부, 카메라는 주인공인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오손 웰즈 분)을 클로즈업한다. 이내 케인은 “로즈버드”라는 단 네 글자를 외치고 임종을 맞이한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눈 내리는 마을 모형이 담긴 유리구슬이 떨어진다. 깨진 구슬 속 이상적인 풍경을 반쯤 걸친 채로 카메라는 현실을 비춰준다. 깨진 유리 파편에 비친 가사도우미와 실내를 보여줌으로서 어딘가 모르게 허탈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작품은 영화의 다양한 스타일과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영화로 손꼽히는 이유다. 영화를 감상하니 영화의 장르적 특징과 스타일적 다양성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시민 케인>이 제작되던 당시, 유럽 대륙은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을 피해 유럽의 유능한 감독들은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그러다보니 유럽 영화의 다양한 장르가 미국 영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또한 스타일에서도 이 영화의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 <시민 케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딥 포커스’와 ‘롱 테이크’ 기법, 그리고 리얼리즘을 떠올린다. 딥 포커스 기법은 관객을 기준으로 하여 화면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있는 피사체 모두에 초점을 맞춰두는 기법이다. 이를 통해 쇼트 분할을 최소화시켰고, 관객으로 하여금 앞과 뒤에 있는 피사체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프랑스 평론가에게 ‘영화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쇼트’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쇼트 분할이 최소화된 것과 롱 테이크 기법을 연결했다. 롱 테이크 기법으로 시·공간의 연속성을 부여했고, 덕분에 다양한 미장셴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관객들에게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로우 앵글,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보여주는’ 왜곡된 화면 등을 통해 다소 과장된 영화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처럼 리얼리티와 왜곡이라는 양극의 스타일을 한 영화에 섞어 놓아 익숙하지 않은 것과 익숙한 것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케인이 마지막으로 말한 ‘로즈버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그의 지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전개다. 총 다섯 번의 ‘플래시 백’(극적인 장면이나 과거 회상을 위해 장면의 순간적인 변화를 연속으로 보여 주는 기법)을 통해 케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간다. 여기서 또 색다른 점은 모든 이야기가 각 등장인물의 사적인 기억과 증언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인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만 드러난다. 영화에서 그가 혼자 무언가를 즐기는 장면은 유럽 예술품을 사들여 본인의 왕국 ‘제나두’를 만드는 장면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케인의 어린 시절은 유산의 상속자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신문 '인콰이어'의 사장으로, 누군가의 친구이자 상관으로, 한 여성의 남편으로만 등장한다.

사실 케인이 수잔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 덕분이다. 무지 덕인지 그녀는 포스터와 신문 1면을 줄곧 장식하던 케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 케인으로 그를 대했다. 그러나 케인은 타인에게 사랑 받기만을 좋아하며 본인 외에는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작품 속에서도 케인은 그의 마지막을 담은 첫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 내내 기록물과 타인의 회상 속에서만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나 찰스 포스터 케인이야!”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영화는 어느 순간 케인의 유일한 보물인 눈썰매를 관객들이 잊어버리도록 슬쩍 감춰버린다. 그 눈썰매가 바로 등장인물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로즈버드’다. 감독은 관객들만 이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린 케인이 놀고 있는 장면에는 ‘No Trespassing(침입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꽂혀있다. 이를 깨닫자,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보고있던 회상·교차가 다 무의미해져버렸다.

그렇다면 케인이 마지막으로 불렀던 ‘로즈버드’란 단순히 썰매를 의미할까? 그의 두 아내의 말처럼 케인은 단지 ‘성공’만 바라봤고, 자신이 만든 틀 속에만 갇혀있었다. 케인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한 순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기억의 부름으로 보인다. 미디어를 재패한 재벌 케인은 선거에 패배하고 이혼도 하고,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또한 본인의 명성을 위해 재혼한 여인을 가수로 만들려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그녀마저 그를 떠나고,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부와 명성을 가진 재벌’ 케인과 ‘로즈버드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케인 사이엔 자본주의가 불러온 씁쓸함이 남는다.

케인이 목소리로 남긴 썰매 로즈버드가 불에 타는 장면은 영화에서 서양문명의 합리성을 뼈아프게 드러낸다. 케인은 썰매의 상표이며 행복의 상징인 ‘로즈버드’라는 글자를 본인의 추억과 감정을 담아 읽었다. 하지만 기자 톰슨에겐 그저 단어이자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는 문자를 있는 그대로 인식했기에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로즈버드’로 상징되는 순수함은 단지 한 사람의 유품 중 하나로 치부된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불에 타서 사라지게 되고, 결국 영화 속의 그 누구도 ‘로즈버드’의 비밀을 알 수 없게 됐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풍족한 삶에 가려진 허탈함을 보여준다. 또한 순수함을 불태우며 영화 속 예술의 순수성을 다시 무(無)로 만든다. 현대 영화의 역사는 <시민 케인>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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