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 '라벨갈이' 여전...소비자, 봉제업계 피해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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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 '라벨갈이' 여전...소비자, 봉제업계 피해 호소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8.04.0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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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 라벨갈이 근절 캠페인 벌여...시민 제보 호소하기도 / 신예진 기자

정부가 ‘라벨갈이’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라벨갈이가 성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민사경)은 올들어 일명 라벨갈이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서 6명을 형사입건했다고 밝혔다. 라벨갈이는 외국에서 들여온 의류의 라벨만 바꿔 국산으로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범법 행위다. 이번 단속은 국산의류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내 봉제산업 기반 보호를 위해 실시됐다. 

라벨갈이로 압류된 의류 중에는 국내 대기업 브랜드 ‘A 물산’도 포함됐다. 문제는 제조사인 B 사가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을 악용한데서 비롯됐다. 판매사인 A 물산은 B 사로부터 ODM 방식으로 의류를 납품받아왔다. ODM 방식은 판매사가 디자인 등에 관여하지 않고, 제조사가 자체 제작하거나 수입한 의류를 판매사가 제공받아 판매하는 구조다.

민사경에 따르면, 제조사인 B 사는 중국 광저우 시장에서 샘플 의류 1~2벌을 구매해 A 물산에 이런 의류를 주문해주면 만들어 납품하겠다고 제의했다. A 물산은 이 샘플을 확인하고 B 사에 샘플과 같은 의류 700개를 주문했다. B 사는 A 사의 주문을 받은 의류 700장을 제조하는 게 아니고 다시 광저우 시장에서 구매했다. 당연히 700장의 옷들에는 ‘MADE IN CHINA’ 라벨이 부착돼 있었다. 이후 B 사는 ‘MADE IN KOREA'로 라벨갈이에 들어갔다. 이들 제품은 A 물산에 납품되기 직전 민사경에 적발됐다.

A 사 브랜드 제품으로 믿고 샀던 소비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 신모(21) 씨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분노했다. 신 씨는 “어쩐지 가끔 (부산) 서면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보면 백화점에서 구매했던 옷과 똑같은 (브랜드) 옷들이 진열돼 있더라”며 “그럴 때마다 ‘가격 차이 얼만데 당연히 브랜드 옷 디자인을 카피해 팔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권모(26) 씨도 백화점 브랜드 제품을 즐겨 찾는다. 권 씨는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품질이 좋을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며 “ODM 제품이든 아니든, 유통하는 브랜드(회사)가 이를 꼼꼼하게 관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권 씨는 이어 “앞으로는 ODM 제품은 최대한 멀리할 것 같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라벨갈이는 주로 서울 동대문 시장과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서 이뤄진다. ‘MADE IN CHINA’라벨을 ‘제조국명: 대한민국’, ‘MADE IN KOREA’로 바꾸는 식이다. 심지어 이번에 적발된 제품을 팔던 일부 가게는 “저희 가게는 원산지 라벨갈이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출입구에 버젓이 붙여놓기도 했다.

라벨갈이에 필요한 금액은 한 벌당 단돈 300~500원. 빈 병 3개 정도의 금액으로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 판매가격은 최소 5배 이상 폭등한다. 과정도 복잡하지 않다. 라벨갈이에 이용되는 옷들은 손쉽게 뗄 수 있도록 한 땀 박음질로 붙인다고 한다. 일명 ‘홀치기’ 방식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라벨갈이를 하고, 이를 중국으로 되파는 중국 보따리상까지 성행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 시장 저가 의류 라벨갈이 작업 전 의류 상태다. 'MADE IN CHINA' 라벨이 떼어내기 쉬운 한 땀 박음질, 일명 '홀치기'로 달려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예진).

라벨갈이는 대외무역법 위반 등 중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위반 시, 최대 3억 원 이하의 과징금과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와 형사처벌로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및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의류 라벨갈이는 소비자의 심리를 악용하는 범죄다. 국내에는 중국, 베트남 등에서 저렴하게 손질된 제품들은 질이 낮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라벨갈이는 다소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라벨갈이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이들은 국내 봉제 업계다. 해외에서 싼 비용으로 생산하고 원산지 세탁으로 제품을 팔다보니 국내 봉제공장 일감이 줄어든 것. 심지어 최근 원산지 변경 라벨갈이가 소규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불법 업체에 대한 적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일감은 지난해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된다”고 호소했다.

라벨갈이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자,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산업부, 관세청, 경찰청, 서울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한국의류산업협회와 공동으로 ‘라벨갈이 근절 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 2월 23일 홍종학 중기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과 창신동 일대에서 ‘라벨갈이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한편, 서울시는 시민들이 나서서 제보할 것을 주문했다. 서울시는 “라벨갈이 근절을 위해선 시민 제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벨갈이 신고는 국번없이 125이며, 신고자에게는 최고 3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또, 스마트 폰을 이용해 누구나 언제든지 민생범죄를 쉽고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민생범죄신고 앱(서울스마트불편신고)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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