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조사, 아직도 남녀 차별...조부모 친가는 3일, 외가는 1일
상태바
기업 경조사, 아직도 남녀 차별...조부모 친가는 3일, 외가는 1일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4.03 0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인권위 개선 요구에도 외가 차별 여전...관련법 개정안 국회에서 '쿨쿨' / 조윤화 기자
회사 내규상 상조 복지부문에서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차별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호주제가 폐지된 지 올해로 13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기업에서는 여전히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내규상 상조 복지 부문에서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차별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직장인 A 씨는 본인이 활동하는 카페에 “회사가 친가와 외가의 경조사 복지에 차별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는 요지의 글을 게재했다. A 씨는 “퇴근길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평소 외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마음의 준비는 해놓고 있었지만,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팀장한테 보고한 뒤, 장례를 치르려고 급히 경기도 안양의 장례식으로 갔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던 와중 A 씨는 팀장에게 “외조부모상에 언제까지 장례휴가를 주냐”고 물었다. A 씨의 물음에 그의 팀장은 “회사 내규상 ‘직계존비속의 장례’에는 3일 특별휴가를 주기로 돼 있지만, ‘외가’라서 안 된다”며 “지금 A 씨가 쉬고 있는 건 연차에서 빠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화는 났지만 일단은 치러야 할 장례가 남았기에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챙겨야 하는 법이라고 배웠는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정보다도 회사 내규가 중요하다는 회사에 이번 일을 계기로 정이 뚝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외가도 엄연히 가족이거늘 그쪽 회사 이상하다”, “아직도 친가 외가를 차별하다니, 조선 시대냐”, “내가 다니는 회사도 외가는 안 챙겨 준다. 회사에 노조가 있으면 그쪽에 건의해 봐라”, “나도 대기업에 다녔을 당시,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는 등 A 씨의 입장에 공감하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친가와 외가의 경조사에 차별을 두는 기업의 행태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경 일찌감치 ”호주제 폐지에 따라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같은 지위의 가족으로 인정되고 있음에도 외조부모의 경우 차등 대우하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다. 기업이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외가와 친가의 경조사 복지에 차이를 두는 기업에서는 ”외조부모가 상을 당했을 때 직원이 직접적인 상주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차이를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부계혈통 위주로 진행하는 장례 관행에 따라 직원 아버지의 부모상과 달리 직원 어머니의 부모상에 대해 경조 휴가 및 경조비를 더 적게 지급한다는 것.

이 같은 기업들의 주장에 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 출산과 장례문화 등을 살펴볼 때 성별과 관계없이 1~2명의 자녀만 출산하고 남성 자녀가 없는 외가의 증가 등 가족 구성원의 변화 등으로 부계혈통의 남성 중심으로 가정의례를 치르지 못하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친가와 외가의 경조사 복지를 달리하는 건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자체적 개선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업에서는 여전히 상조 복지 제도에서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국내 기업 GS는 직원의 친조부모상에 휴가 3일, 조의금을 지급하지만, 외조부모상에는 단 휴가 1일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또한, LG와 롯데는 직원의 친조부모상에 휴가 3일, 조의금, 장례용품이 상조 복지로 제공되지만, 외조부모상에는 별다른 혜택이 없다. 이른바 국내 10대 그룹 중 조부모상 상조 복지 혜택에 차별을 두지 않는 기업은 단 4곳(삼성, 포스코, 한화, 농협)에 불과했다고 같은 언론은 전했다.

한편, 지난해 5월경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경조사 휴가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이로써 친가와 외가를 차별대우했던 기업의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경미 의원은 파이낸셜 뉴스를 통해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 지난 2005년으로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가족을 친가와 외가로 나눠 차별하고 있는 현실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개정안 마련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300일이 넘도록 계류 중이다.

관련 기사 네티즌 댓글(사진: 네이버 화면 캡처).

해당 문제와 관련된 기사에 한 네티즌은 “이런 것조차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남녀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법적으로 친가와 외가를 차별해서 휴가 주는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