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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아주대학 디지털 미디어학과 특강, "후회 없는 미래를 준비하라" / 장원호[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 미주리대학교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8.04.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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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빈 생일 파티

도빈이는 나의 둘째 아들 유진이가 낳은 귀여운 손자입니다. 도빈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보스톤에서 교수하고 있는 유진이 부부가 서울로 안식년을 오는 바람에 서울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도빈이는 서울 구기동 외조부 댁에서 머물고 있는데, 그곳에서 도빈이의 생일파티가 10월 7일에 열렸습니다. 도빈이는 부모가 늦게까지 예일 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는 바람에 부모 나이가 40이 넘어서 출생한 귀염둥이입니다.

손자 장도빈(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도빈이는 보스턴 외곽 '브룩라인'이란 곳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어려서 다녔다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안식년으로 서울에 온 기회를 살려 부모들은 도빈이를 한국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도빈이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처지에 한국 초등학교 2학년에 들어가니 어려움이 많지만 영리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견스러운 귀염둥이 도빈이의 생일을 맞아, 외가쪽 친척, 4촌 윤석이와 하은이, 그리고 우리 부부가 초청됐습니다. 

도빈이의 생일파티(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도빈이의 외할아버지 이삼열 박사는 유네스코 한국 사무총장 등 여러 공직을 마치고 은퇴해서 구기동 산기슭에 살고 있는데, 작은 정원이 있어서 어린이들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도빈이가 한국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여러가지 어려운 수속을 거쳐야 했지만, 한국 학교에 입학시킨 부모의 의도는 도빈의 장래에 한국어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서 앞서가는 한국의 문화와 분위기를 배우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대 학보사의 초청 강연

이제는 은퇴한 교수인 나에게 후학들이나 친구들이 가끔 후손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데무슨 공부를 해야 하느냐, 디지털 혁명시대에 특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사실 잘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손자 도빈이도 막연하게 디지털 기술이 앞서가는 한국을 배우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한국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내가 조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국 여행에서 전에 석좌교수로 있던 아주대학을 방문하여 미래 전망에 대해 다른 교수들과 대화하면서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아주대학교 디지털 미디어 학과 최정주 교수의 연락을 받고 2017년 10월 11일에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디지털 미디어 학과 학생과 교수들을 만났고, 전에 학생들을 돌봤던 학보사를 찾아가 학보사 김용현 주간교수, 학보사와 방송 잡지 학생 기자들을 만났으며, 저녁에는 석혜정 학과장이 베푸는 저녁 대접을 잘 받고 돌아왔습니다.

아주대 학보사 기자들과 함께(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이번 방문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학교 측이 부탁해서, 나는 간단한 발표문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의 디지털 미래를 배우려 했던 내가 젊은이들 앞에서 내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번 강연에서 미래 신기술을 더 많이 배우지 못하고 은퇴한 게 한이 되니 젊은 사람들은 그런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에 뒤쳐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강연을 대신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내 강연의 요지입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 제가 아주대학교 미디어학부 선생님들과 젊은 학생분들을 만나게 되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이 자리를 주선해 주신 최정주 교수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이 꿈 같은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된 여러분들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오늘 이 만남의 자리는 최 교수님이  시빅뉴스(civicnews.com)에서 연재되고  있는 저의 “50달러 미국유학” 이야기를 보시고 저에게 연락해 주셔서 가능하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앞장서서 정보통신대학을 세우고 4차산업을 대비하고 있는 아주대학교을 다니는 여러분은 미래에 한국은 물론 더 나아가 세계의 4차산업 주역들이 되려는 마음으로 오늘 여기에 왔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30여 년을 미국 미주리대학교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고 은퇴한 후, 한국으로 와서 3년을 이곳 아주대학교에서 교직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남쪽 캘리포니아에 있는 은퇴인들의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만 80이 넘었고, 주민의 평균 나이가 78세인 노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15년을 살다가, 오늘 여러분 같은 젊은 분들을 만나게 되니, 이 자리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입니다.

사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거나 전해주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배우려고 왔습니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고 또 변하니, 제가 새로운 그 무엇을 말씀 드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러분에게  옛날 이야기 하나만 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은퇴인으로서 여행을 즐겨 하는데, 얼마 전 미국 뉴욕 주 북부에 있는 로체스터(Rochester)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로체스터 공과대학이 있고 저의 아주 옛날 제자 한 명이 이곳에서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제 제자 얘기가 아니라 코닥 필름회사 얘기입니다. 이곳에는 전 세계 아날로그 필름의 85%를 독점 판매하던  코닥 회사가 있었습니다. 한 때 직원이 17만 명이나 되었던 이 부자회사는, 1975년에 디지털 카메라가 발명되고, 사진 산업이 지금처럼 필름 없는 디지털 카메라로 변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1998년에 아주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대비하지 못하면, 우리 주변의 그 누구도 코닥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생애도 코닥 신세처럼 망하지는 않았어도 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미래를 철저히 대비하지 못해서 그만 그 기회를 잡지 못 했습니다. 1972년에 저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언론학을 공부하면서도 영어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컴퓨터를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저는 디지털 혁명의 초창기인 1980년대에는 한 때 정보화 사회를 앞서 가기도 했습니다. 컴퓨터가 계산기에서 글자를 쓰는 워드 프로세서로 발전하던 초창기에 저는 박사논문을 컴퓨터로 써서 제출했고, 이것이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최초로 컴퓨터로 작성된 박사논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컴퓨터에 모니터가 없어서 컴퓨터에 글씨를 입력한 다음, 프린터로 출력해서 교정을 보고 다시 수정하는 식으로 워드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이 IBM의 ATS라는 것이었는데, ATS(Administrative Terminal System)라는 영문 워드 프로세서의 시초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타자기를 써 본 적이 있나요? 한 번 타자기로 문서를 쳐서 여러 장을 한꺼번에 출력하려면, 다음 장에 글씨를 찍히게 하는 ‘카본 종이’라는 것을 흰 종이 사이사이에 넣고 키 보드를 힘차게 두드려서 한 번에 여러 장을 타이핑해야 했습니다.

이 시절에 나는 미국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지금은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소리로 문서 작업을 하고, 그 다음은 영상시대가 오며, 그 다음은 휴대용 컴퓨터(portable computer) 시대가 온다고 수 없이 말을 들었지만, 나는 별다른 대비를 못 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나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상을 미리 예측하고도 그냥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하거나 통계처리를 하는 정도로 만족해서 더 큰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는데, 이때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이 고등학생은 차고에서 PC 작동을 시험하고 있었는데, 나는 교수로서 살아 남기에만 전념해서 바뀌는 세상에 참여를 못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워드 프로세서가 나타난 지 45년이 지났고, 컴퓨터는 바둑대결로 널리 알려진 AI, 즉 인공지능과 결합되면서 우리 세상을 급속히 바꾸고 있습니다. 의료산업, 자율주행 자동차, 3D 프린터, 농업의 급격한 변화는 바로 여러분의 직업 사정을 바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보다 지금 정보통신대학에 오신 것이 얼마나 좋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제 4차산업 혁명이 시작됐고, 여러분은 급속히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소프트웨어나 각종 플랫폼들이 종래의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우버 택시라는 건물도 없던 회사가 세상에서 제일 큰 택시회사가 됐는데, 바로 차를 공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울에는 국제변호사를 하는 제 큰 아들이 있습니다. 제 큰 아들은 애플 컴퓨터 담당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 말에 의하면, 현재 IBM이 개발한 왓슨(WATSON)이란 볍률 전용 인공지능이 사람 변호사의 70%보다 높은 90%에 가까운 정확한 사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합니다.

변호사뿐이 아닙니다. 의사, 회계사, 계리사, 건축 설계사, 심지어 교육자들의 일까지 컴퓨터가 하나씩 해내면서 자리를 먹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은행도 모바일 뱅킹으로 바뀌니 그 많은 은행원들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농사도 로봇이 한다면, 농민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자동차 산업도 자율주행이 가능해지고, 자동차 부품은 3D 프린터로 생산되고, 조립도 로봇이 한다면, 사람이 필요한 직업이 무엇이 남을까요?

무디스(MOODIES)라는 엡을 아시겠지요? 이 앱은 사람의 무드를 알려준다고 하니 사랑하는 애인의 무드를 사전에 아는 게 정말 좋은 것인지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후배 학자들이나 여러분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충고를 제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40여 년 전 미래 세상을 알고도 소극적으로 대처한 저보다 여러분은 미래를 더 잘 직시하고 제대로 더 확실하게 준비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시어 여러분 인생에 후회 없는 훌륭한 커리어를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미주리대학교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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