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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일자리 정부’란 말인가!
이번부터 황령산 칼럼 필진으로 합류한 최원열 님은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언론인입니다. 

 

언론인 최원열

중년이라면 고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저 유명한 에세이 <청춘예찬>을 기억할 것이 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삶의 찬미’를 깨닫게 해 준 명문이 아니던가! 피끓는 청춘의 무한한 가능성에 가슴이 요동치던 어린 시절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지금 세상은 만물이 되살아나는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과연 이 땅에 청춘의 피가 끓고 있는가?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 그 고동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바야흐로 봄이 왔건만 마음을 후벼 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꽁꽁 언 얼음이 있을 뿐이다.

최근 부러움과 절망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두 가지 상반된 경제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훌훌 털어내며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용절벽에 매달려 신음 중인 한국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먼저, 일본을 보자. 일본은행 총재가 당당히 선언했다. 디플레이션이 사라졌다고. 기업 수익은 최고조에 달했고, 노동시장은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길고 깊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당당한 외침이었다. 성장세가 8분기 연속 플러스를 이어가고, 소비자물가 역시 13개월 연속 상승세다. 5년 전 세계 10위로 곤두박질쳤던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가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한국의 청년들이 일본 시장에 무더기로 몰려가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 부활은 ‘엔저’를 기반으로 수출드라이브를 건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법인세를 대폭 내리고, 각종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는 등 개혁적이고도 과감한 기업 정책을 추진한 게 주효했다. 여기에 기업들 스스로 사업 재편과 기술력 강화를 바탕으로 한 ‘선택과 집중’에 올인하는 등 경쟁력 강화에 팔을 걷고 나섰으니 살아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기업이 돈을 버니 가계소득도 늘어, 경제의 선순환 사이클이 활기차게 돌아간다. 시장에서는 ‘일손이 모자란다’는 아우성이 넘쳐나고.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로 달려간다. 마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목표로 하듯이. 위기 직전인 1990년대의 일본을 어찌 그리도 닮아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노동시간 단축에다 최저임금 인상, 공휴일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등. 설상가상으로 법인세 인상과 시장 규제까지 거침없이 칼을 빼들고 있다. 성장 동력을 이렇게 녹슬게 하니 일본형 장기 침체가 오는 게 당연하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소름을 돋게 한다.

그 징조가 벌써 우리 곁에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이 8년 만에 가장 둔화됐다는 통계청의 ‘2월 고용동향’은 한마디로 ‘고용 쇼크’다. 뿐만 아니다. 조선,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여파로 실업자 수는 두 달 연속 100만 명을 웃돌았다.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자영업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지난달에만 무려 12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그 기세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는 등 일자리의 질적인 문제까지 ‘청춘’들을 가차없이 할퀸다. 사정이 이러니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고 결혼도 포기하는 ‘헬조선’이 되어 버렸다.

이러고도 ‘일자리 정부’라고? 일자리를 사실상 망치는 주체가 현 정부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업 대탈출(엑소더스)’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베트남 투자신고 건수를 보자. 6년 전 819건이던 것이 지난해 2362건으로 3배나 폭증했다. 어디 베트남 뿐이랴. 우리 기업의 해외 법인 투자 건수와 투자액이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지난해에만 해외에 3400개가 넘는 법인이 세워졌고, 투자된 돈이 물경 437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여건만 좋았다면 기업들이 나갈 이유가 없지 않나.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는지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이 바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대통령이 ‘재난’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최근 내놓은 ‘청년 일자리 대책’이란 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4조 원을 들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여 중기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게 전부다. 도대체 언제까지 숫자놀음을 할 텐가. 또 다른 문제는 이 대책이 기껏 3, 4년 지원하는데 그치고 그 이후엔 아예 입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규제 완화와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던 경제부총리의 말은 어찌 됐나. 규제 개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눈앞의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미봉책으로 어찌 양질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을까. 다산을 장려해놓고 산모에게 미역국 거리만 챙겨주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기업환경을 이처럼 훼손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다니, 이야말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닌가 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철저히 연구해서 제대로 된 시장 정책을 내놔야만 한다. 대증요법으로는 절대 병을 고칠 수 없다. 환부를 확실히 파악해 도려내야 한다. 그 환부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말이다.

<사기> ‘화식열전’에 정부가 명심해야 할 구절이 들어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노닐 듯이 사람은 부유해야 비로소 인의(仁義)를 행한다." 중국 최고의 명재상 관중이 한 말이다. 정부는 당장 연못을 깊게 파고, 산을 깊게 만들 방법을 강구하라!

언론인 최원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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