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보고 컴퓨터도 배우고...그것도 공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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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보고 컴퓨터도 배우고...그것도 공짜로"
  • 취재기자 조소영
  • 승인 2014.07.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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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감만 창의 문화촌', 지역 주민들 사랑방으로 인기몰이

“문화촌? 아, 좋지요. 늙은 우리들에게 영화도 보여주고, 음악회도 데려가 주고. 바로 옆에 복지관도 있어서 요즘 컴퓨터도 배우러 다녀요.”  부산시 남구 감만동 주민 노한석(72) 할아버지는 ‘감만 창의 문화촌’에 관해 질문을 던지자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생전에 이같은 푸짐한 복지혜택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거의 매일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그의 입은 인터뷰 내내 귀에 걸려 있었다.

▲ 부산시 남구 감만동에 위치한 ‘감만 창의 문화촌’ 외관(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부산시 남구 감만동에는 지역 주민의 문화 예술 갈증을 해소시켜준다는 취지로 설립된 ‘감만 창의 문화촌’이 있다. 2013년 11월에 개관됐다. 원래 문화촌은 대형 차량의 이동이 잦은 큰길에 위치해 있었으나 그 길에서 학생 2명이 차에 치어 크게 다치는 불의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뒤, 한동안 폐교로 남아 있던 옛 동천초등학교 건물로 이전했다. 폐교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은 부산문화재단에서 나왔다. 부산문화재단은 각종 문화 사업을 통해 부산을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다는 취지로 부산시가 2009년 1월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부산 남구의 문화 공간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문화의 소외지대로 남아 있었다. 몇 개의 공연장이 있으나, 관심을 갖고 표를 사서 보는 주민을 제외하고는 문화 시설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런 감만동에 직접 파고 들어가 주민이 언제든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촌을 만들었다. 부산문화재단 창작공간팀 김상아(29) 씨는 “문화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분들을 위해 열려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화촌은 새로 입주한 폐교를 헐지 않고 비용절감을 위해 부분적으로 수리한 후 대부분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른바 옛 도심을 살리자는 ‘도시재생’ 사업이었다. 문화촌은 도시재생이라는 뜻 깊은 의미로 주민들에게 다가갔지만, 처음부터 주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바쁜 생활을 이어가는 지역 주민들은 문화 센터보다는 스포츠 센터를 원했다. 결국, 문화촌은 문화와 복지 개념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복지관의 기능을 갖게 됐다. 문화촌이 ‘서양음악 맛보기,’ ‘퓨전 국악공연’ 등 다양한 문화, 예술, 복지 프로그램이 주민들에게 제공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문화촌은 서서히 동네 사랑방이 돼 갔다.

감만동 주민 배금진(60) 씨는 1주일에도 몇 번씩 문화촌 안의 ‘감만 사랑방’을 찾는다. 이곳은 영화도 상영하고, 각종 배우기 교실도 운영하며, 주민 누구든 마음껏 독서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목적실이다. 배 씨는 월요일과 금요일에 상영하는 영화를 거의 빠트리지 않고 관람한다. 그는 여기서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봤고 <웰컴 투 동막골>도 봤다.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노래교실 등 문화교실도 단골이 됐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동네 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데다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배 씨는 “프로그램이 하나같이 재밌고 선생님들도 늙은이라고 무시하기는커녕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요. 여기가 우리 동네에 사랑방이지요”라고 말했다.

▲ 감만 사랑방에서 노래 수업이 진행 중이다. 노래교실에서는 참여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서서 노래를 부른다(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감만 창의 문화촌은 지역 예술인들에게 창작 공간이 되는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문화촌 4층에는 총 14개의 ‘틔움방’이 있다. 틔움방이란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통해 재능을 틔워간다는 의미다. 틔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입주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의 기능을 나눠주기도 한다. 1기 입주 작가로 2013년에 문화촌에 들어온 이영수(34) 시인은 “부산에는 개인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문화촌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되는 공간을 주었다”고 말했다.

▲ 이영수 시인이 자신의 틔움방을 ‘都詩樂(도시락)’이라고 명명하고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원래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 불린 지 오래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 지역문화지표 지수화를 통한 비교분석'이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시 기초지자체의 총예산 대비 문화 예산 비율은 전국 평균 2.05%에 크게 못 미치는 1.14%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5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적은 문화 예산 중에서 청년 예술인에게 배정된 비율은 10%도 안 된다. 감만 창의 문화촌은 이런 부산의 젊은 예술인들에게 단비가 되고 있다.

문화촌의 운영 목표는 ‘문화 예술 커뮤니티’다. 문화촌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인들은 주민들에게 예술을 체험하게 돕자는 것이 문화 예술 커뮤니티가 지향하는 ‘문화 생태계의 선순환’이다. 문화촌 이일록(35) 프로그램 매니저는 “문화와 예술이 빠진 삶은 단순하고 쓸쓸하다. 문화촌이 주민과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문화를 누리도록 만들자는 것이 문화촌의 궁극 목표다”라고 말했다.

문화촌은 여전히 문화 예술이 낯선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설명하고, 전단지를 돌리고, 전화로 참여를 권유한다. 프로그램마다 차이는 있지만, 프로그램마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40명 정도의 주민이 참여한다. 특별히 어린이 만화영화를 상영할 때는 인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단체로 방문해 70명 이상이 찾을 때도 있다.

▲ 문화촌 복도 곳곳에는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이 걸려 있어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문화촌은 주민과 예술이 ‘문화 선순환’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주민들이 특별히 전시회장을 찾지 않아도 예술작품을 볼 수 있게 문화촌 복도 곳곳에 그림을 걸어 작은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다. 올해 10월에는 지역 주민들과 입주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감만 아트 페스티발’이 열릴 계획이다. 예술가들이 주민들의 예술 작품 창작을 도와 자신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하자는 게 아트 페스티벌의 취지다. 이일록 매니저는 “이 페스티벌을 통해서 지역 주민들이 문화의 새로운 생산자가 될 수 있게 도우려 한다”고 말했다.

재밌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주 수요일이 기다려진다는 최화목(62) 씨는 이사를 계획하다가 문화촌이 생겨서 이사를 포기했다. 최 씨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에 활력이 많이 사라졌는데, 문화촌이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굳이 이곳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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