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영사기는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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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영사기는 돌아간다
  • 취재기자 장가희
  • 승인 2014.07.2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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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도시, 부산' 명성 힘겹게 지키는 '국도예술관' 이야기

‘영화의 도시, 부산’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예술영화가 주목을 받는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10월 뿐이다.  나머지 나날들은 상업영화들만 판을 치며, 이른바 순수영화는 뒷켠에서 푸대접 받고 있다. 그런데 1년 365일 프랑스,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양한 나라와 장르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면서 영화의 도시 부산의 명성을 힘겹게 지키는 극장이 하나 있다. 바로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국도예술관이다.

영화관은 크고 화려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국도예술관은 작고 아담하다.  아주 조용하고 좁은 골목길의 꽃집 옆 빨간 벽돌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그 누구라도 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가 없다면, 이 곳을 영화관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전에 클래식 음악 공연을 하던 가람 아트홀 건물을 사용하는데,  독자적인 간판도 내걸지 않고 그냥 그 건물 안에 있다.

▲ 남구 대연동 빨간 벽돌집 건물에 자리 잡은 국도예술관 입구. 과거 클래식 공연장이었던 가람 아트홀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국도예술관은 간판도 없이 그냥 과거의 가람 아트홀 건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장가희).

국도예술관은 2004년 남포동에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제한상영관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국내에는 제한상영가 영화도 별로 없고 관객도 많지 않아 영화관 유지가 힘들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부산 최초의 예술영화상영관으로 선정되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액수가 적어서 여전히 경영이 어려웠다.

2008년 남포동 상영관의 건물 소유주가 바뀌면서 국도예술관은 폐관 위기에 놓였다. 대표 정상길씨(62)는  이전할 극장용 건물을 알아 보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클래식 공연을 주로 하던 남구 대연동 가람아트홀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극장은 소방시설을 무조건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에 부딪히자 이렇게까지 해서 옮길 수 있겠냐는 생각에 극장 이전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 때, 영사팀장과 단골 관객들이 아무리 그래도 국도예술관이 없어져서야 되겠느냐며 설득하고 나섰다. 정 대표는 결국 없는 돈을 털어 가람 아트홀에 소방시설을 깔고 극장 의자도 새로 설치해서 가람 아트홀 건물로 이전했다. 국도예술관은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국도예술관 로비에는 각종 예술영화의 포스터들이 전시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장가희).

삐죽삐죽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계단을 내려가면, 1평 남짓한 영화관 매표소가 있다. 한 쪽 벽은 영화 포스터로 꾸며져 있고, 다른 한 쪽은 영화를 보며 즐길 수 있는 주전부리들이 판매되고 있다. 매표소 옆의 문을 지나면, 143석의 소극장 규모의 영화상영관이 나타난다.

▲ 국도예술관의 내부 전경.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의자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사진: 취재기자 장가희).

대부분의 국내 예술영화 상영관들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것에 반해, 국도예술관은 특이하게 개인 소유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도예술관이 개인 소유라 다른 멀티상영관처럼 관람비가 비쌀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영화 한 편 관람에 9000원에서 1만원이 필요한 요즘, 국도예술관의 티켓 값은 주중 6000원, 주말 7000원이다. 게다가 연회비 2만원을 내고 정회원이 되면, 관람비에서 1000원을 할인 받을 수 있다.

그날 상영된 영화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관람객 영화 평점 8.57점, 기자와 평론가 평점 7.38점을 받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3관왕 수상과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19개 부문 수상을 자랑하는 ‘훌륭한’ 영화였지만, 관람객은 시빅뉴스 기자와 할아버지 한 분이 전부였다.

멀티상영관에 비해서 스크린도 작고 의자도 불편했지만, 극장 안은 조용했고 편안했다. 영화는 광고 없이 바로 시작됐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홀 안의 불이 꺼지더니,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불이 켜지지 않았다. 한 영화가 끝나자, 다음 영화를 기다리던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다음 영화 관객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혼자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국도예술관은 하루에 6~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일주일에 상영하는 영화는 평균 10편에서 12편으로, 같은 영화가 하루 2회 이상 상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 영화와 다음 영화 사이의 대기시간은 10분이다. 국도예술관도 멀티상영관 못지 않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상영되고 있다. 국도예술관 직원 진수빈(25) 씨는 “멀리 사는 분들은 한번 오셔서 2~3편을 연달아 보고 가시는 마니아 분들이 많다”고 밝혔다.

요즘 ‘CGV 무비꼴라쥬’나 ‘롯데시네마 아르떼’처럼 멀티상영관들도 예술영화 상영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고, 부산에 부산국제영화제 전용 상영관인 ‘영화의 전당’이 생기면서, 국도예술관 관객도 하향세를 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시설 좋은 극장이나 영화의 전당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 온다. 어느내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국도예술관 프로그래머 정진아(37) 씨는 “2011년에 수영만 요트 경기장의 부산시 예술영화 전용상영관인 시네마테크가 영화의 전당으로 들어가면서, 옛 극장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하는 나이 드신 분들이 국도예술관을 찾는 현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인주(22, 부산시 남구) 씨는 2주에 한두 번씩 국도예술관에서 예술영화를 관람한다. 집이 가까운 것도 이유이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국도예술관의 편안함 때문에 멀티상영관보다는 국도예술관을 찾는다. 어느 날은 관객이 김 씨 혼자였는데도 영화는 중단 없이 상영됐다. 김 씨는 “관객이 혼자여도 더우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고, 추우면 담요까지 항상 구비돼 있어서 휴가를 따로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한영훈(32, 부산시 남구) 씨는 혼자 영화를 봐도 눈치가 보이지 않고 편해서 국도예술관을 즐겨 찾는다. 그는 “CGV이나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영화관보다 영화 값도 싸고 조용해서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데 최고 좋다”고 말했다.

국도예술관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올빼미 상영회’와 ‘감독과의 대화’이다.

올빼미 상영회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정기 상영회로 개봉된 지 2년 이상 지난 영화 세 편을 밤 11시 50분부터 새벽까지 연달아 보는 것을 말한다. 200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텝들끼리 올나잇 상영을 하고 쉬자고 기획한 상영회에 젊은 커플부터 나이 든 분들까지 관객 70여 명이 몰렸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어 새해 전야에도 올나잇 상영회를 열었는데, 극장측은 다음에는 언제 또 진행하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하루 반짝 이벤트로 시작된 올나잇 상영회가 지금의 ‘올빼미 상영회’라는 정기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영화제나 멀티상영관에도 관객이 감독에게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이 있지만, 두 세 번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 끝이 난다. 하지만 국도예술관에서 진행되는 감독과의 대화는 기본이 한 시간 반이다. 정 프로그래머는 관객과 감독이 같이 수다를 떨고, 관객들이 더 많은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관객들을 위해서 만든 기획 행사였지만, 나중에는 감독들이 이를 더 좋아하게 됐다. 정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우리의 감독과의 대화가 특색 있는 이벤트로 자리 잡다 보니, 감독들 사이에서 성지 순례가 되었어요. 이게 국도예술관의 힘이죠”라고 말했다.

상업영화는 화려하고 재미 있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국도예술관은 예술영화처럼 평범하다. 그리고 친숙하다. 모르는 사람은 아예 존재조차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국도예술관이다. 어렵고 멀게만 생각되던 예술영화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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