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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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
  • 소설가 정인
  • 승인 2018.03.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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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인
이번부터 황령산 칼럼 필진으로 합류한 정인 님은 2000년 <21세기문학>으로 등단한 소설가로, <당신의 저녁>, <그 여자가 사는 곳>, <만남의 방식> 등의 소설집을 냈으며,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노근리평화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소설가 정인

나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몇 년 살았던 때를 빼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그동안 문현동, 명륜동, 대연동, 개금동을 거쳤다. 그중 내가 살던 집이 남아 있는 동네는 지금 한 군데도 없다. 문현동은 금융단지로 편입되고, 명륜동과 개금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거나 도로에 수용되었고, 대연동은 원룸 군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개금동을 제외하고는 내 유년과 청소년기, 대학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문득 사라진 옛 집과 동네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집으로 향하던 기다란 골목이나 길 옆으로 흐르던 개천, 높다랗게 솟은 가로수, 골목을 비추던 가로등의 흐릿한 불빛과 철마다 마당에 피어나던 분꽃과 맨드라미, 샐비어, 나팔꽃…. 그 기억들이 모두 어우러져 아련한 그리움의 실타래가 되면 내 살던 집을 뭉개고 점점 더 높은 콘크리트 숲으로 변해가는 이 도시가 싫어진다.

호주에 사는 친척이 있어 얘기를 들어보면, 그곳에서는 주택을 지을 때 보통 200년을 바라보고 짓는다고 한다. 5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집의 수명이 얼마 남았는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수요자들은 남은 기간을 고려하여 집을 구매한다. 애초에 집의 수명을 그렇게 길게 잡고 있으니 나처럼 수십 년 만에 살던 집들의 흔적이 다 사라져버리는 일은 켤코 없다.

십 수 년 전, 마지막 살았던 대연동 집이 문득 그리워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담 너머에서 더욱 몸집이 굵어진 소나무와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분홍색 꽃을 조롱조롱 매달고 높이 솟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날마다 그 나무들을 정성껏 돌보셨다. 봄이 오면 가지치기를 해주고, 나무 아래 거름을 듬뿍 주었다. 겨울이 올 무렵에는 보온재로 감싸 추위로부터 보호했다. 그 보살핌으로 화단에는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은 해마다 튼튼해졌다.

나는 옛집의 담 너머에서 건강했던 아버지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막 지어지기 시작한 아파트의 편리성을 동경했던 엄마를 못 이겨 아파트로 이사하신 아버지는 그 후 어떤 식물에도 마음을 붙이지 않으셨다.

그런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 년 후, 나의 옛집은 사라졌다. 주택가의 집들이 원룸으로 바뀌는 추세를 못 이긴 것이다. 몇 년 사이에 담장 가에 붉은 장미꽃을 피우던 주택들이 그런 식으로 다 사라지고 원룸이 즐비해 있던 골목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식으로 부산 곳곳에 있던 주택 단지들이 거의 밀려나서 지금은 부산 사람들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금정산 아래 우장춘로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온천장 주택단지도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멀쩡한 집들이 폐가가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살다가 다 빠져나간 후 덩그라니 남은 빈집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지금은 한창 철거 중인데 머잖아 그 자리에도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그러면 낮은 집들을 품은 듯이 능선을 이어가던 금정산도 높은 아파트 숲에 가려버려, 그 길을 갈 때면 느꼈던 포근함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수십 년 전, 70% 이상이 산지인 나라에서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졌던 아파트는 여전히 주택난을 핑계로 극성스럽게 지어지고 있다. 정말 우리의 주거대책은 아파트 뿐인 걸까?

어느 때보다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가 심각한데도 계속 지어지는 아파트 군락은 최근의 부동산 정책 때문에 새집도 거래가 안 된다고 울상들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정도로 낡아버린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앞에서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지금은 투자의 수단이며, 삶의 편리성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저 거대한 아파트 군락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골칫거리가 될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를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첨단화된 신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구시가지의 고색창연한 풍경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중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에서 보았던 가스등은 영화 <가스등>을 보았던 기억과 함께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얼마 전 모 방송을 통해 그 도시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일도 없이 같은 시간에 가스등을 켜야 한다는 가스등 관리인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가스등을 전기로 바꾸는 것은 쉬워요. 그러나 우리는 남들은 가지지 못한 우리만의 전통을 원합니다. 비록 힘들지만 그 전통을 지키는 일은 내게 아주 소중합니다."

그는 새것의 편리함을 동경하기보다 옛것을 지키는 사람의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자긍심들이 모여서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쟈그레브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이 모두 그만의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에는 관광객들이 연일 모여든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그처럼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그 도시민들의 삶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도시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그것을 이용한 관광산업은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산업이다.

부산은 산과 바다와 강이라는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 그런데 그 장점을 살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그 천혜의 조건을 살려 집을 짓는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전국에서 가장 초고층빌딩이 많은 도시라는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그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갈수록 삭막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흉포한 사건이 많이 생기는 것이, 내가 사는 집 벽 너머에 사람이 죽어도 몇 달씩 모르고 지내는 일이 허다해진 이 삶이, 아무래도 점점 늘어나는 콘크리트 집합체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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