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모양이 있던가, 사랑도 그러하다"...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가 그린 약자들의 사랑 / 안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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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모양이 있던가, 사랑도 그러하다"...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가 그린 약자들의 사랑 / 안소희
  • 부산시 서구 안소희
  • 승인 2018.02.2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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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우리는 수많은 혐오가 오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주류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주류가 아닌 사람들에게 ‘비주류'라고 이름을 붙이며 다름은 틀린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런 흑백논리에 빠져버린 요즘, 우리를 다독여 줄 수 있는 동화 같은 영화가 등장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예고편을 보고, 나는 <미녀와 야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녀와 야수>와 유사한 주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확연히 달랐다. <셰이브 오브 워터>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이었다. 저주가 풀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저주에 걸린 왕자님이 아니라 괴물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 영화의 주제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봤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여서 그런지 상영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고요함 속에서 영화를 세심하게 뜯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장애인, 성 소수자, 흑인, 여성 등 주로 사회에서 약자자라고 생각되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불쌍하게 비추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개인의 욕구를 지니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린다. 주인공인 '일라이자'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어두운 분위기를 가질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우울할 것이라는 바보 같은 편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반성했다. 그녀는 욕실에서 신체적 쾌락을 즐기기도 하고 친구인 자일스의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장애인 주인공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불완전하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괴물과의 사랑을 위해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용기를 내는 대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 일라이자 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스트릭랜드'다. 그는 혐오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신은 백인 남성인 자신과 닮았을 것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백인우월주의자다. 그러나 마초 같은 이미지의 스트릭랜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웃지 않고 행복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언제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권력자에게 처음 저지른 실수 하나로 이전의 공을 무시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권력자의 말에 그는 절망하고 만다. 하지만 그가 더 불쌍한 이유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들과 다른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우월한 곳으로 향하려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며, 그게 그를 더 옥죄는 것 같다.

인물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 남는 장면도 많다. 일라이자가 버스 창에 기대어 흐르는 빗물을 손으로 훑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상당히 섹슈얼하게 읽었다. 하나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쫓아가서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 생물학적인 수정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일라이자가 그것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물방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둘의 육체적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또, 이 영화의 끝 장면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 일라이자와 괴물은 물속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러자 일라이자가 아기였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목의 상처가 아가미로 변한다. 이 모습을 보고 떠오른 한 가지 문구가 있다.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어린이 동화책의 마지막 문구다. 정상인이 아닌 이들의 사랑은 공주와 왕자 못지 않게 동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치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고 나서 두 주인공의 행복을 비는 것처럼, 영화 관객들도 다름을 극복한 이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빌어주기를 감독이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사랑에 대해 정해진 형태가 있다고 생각할 때 폭력이 개입된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말했다. 사랑에 어떠한 카테고리를 지정해 버리면 그 외의 사랑은 사랑에서 배제되는 폭력을 겪게 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물에 정해진 모양이 없듯 사랑에도 정해진 모양은 없다. 더 나아가서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결코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다름을 혐오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성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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