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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미주리 동문회로부터 공로패 받고, '귀천' 찻집에 들러 천상병의 시를 읽으며 인생을 의미하다 / 장원호[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8.02.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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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재한 미주리 총동문회의 회장인 서울 마포 갑 노웅래 국회의원이 주선한 공로패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저녁 시상식에는 아들 철준이 내외, 그리고 동생 영자와 원흥이가 참석했고, 약 120명 정도가 모였다. 대부분은 미주리 저널리즘 대학의 제자들이며 나머지는 미주리 저널리즘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한 언론인과 광고인 등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임상원, 정만수, 이민규, 우병동, 강승구, 이종민 교수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LG AD 김종립 사장, 이용식 문호일보 논설실장, 허인구 미디어 클리에티브 사장 등이 참석하여 나의 공로패 수상을 축하해주었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이번 한국행에 동반하지 못한 아내 장영숙 여사의 안부를 물으면서 왜 혼자 왔느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제 아내가 나보다 인기가 좋은가 봅니다. 나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아내와 같이 안 온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미주리 동문회에서 공로패를 받고 일부 제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이날 내가 제자들로부터 받은 크리스탈 공로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1972년 미주리대에서 조교수로 출발한 장 교수님은 2회에 걸친 광고학과 학과장, 1991년 연구 및 대학 원담당 부학장을 거쳐, 1992년 맥칸타이어 석좌교수로 추대되었으며, 은퇴 전까지 'Stephenson Research Center' 소장을 맡으셨습니다. 장 교수님은 은퇴와 함께 명예교수로 추대되어 지금도 언론대학원 운영에 자문역을 맞고 계십니다. 장 교수님의 큰 업적은 바로 후학 양성입니다. 1979년 중국 개방과 함께 미주리 저널리즘 대학에 창설된 'Edgar Snow Program' 디렉터를 맡아 중국 언론인 연수를 시작으로 1980년부터는 한국 언론학자 양성과 언론인 연수를 주관하셨습니다. 재직 기간 동안 초 31명의 박사 지도 학생 중 19명의 한국인 박사를 배출하셨으며, 수백 명의 석사 지도 학생 중에는 수십 명의 한국인 석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200여 명의 언론인들이 미주리 언론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 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재한 미주리대 총 동문회는 한국 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장원호 박사 님께 모든 동문들의 뜻을 담아 공로패를 드립니다. 2015년 12월 1일. 재한 미주리대 총 동문회 일동."

나는 간단한 인사말을 통해서 여러 제자들과 언론인들을 미주리 대학에서 만나게 된 일은 매우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으며, 팔순이 되어서야 철이 들어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그들에게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고, 그래서 앞으로는 만날 기회가 더 생긴다면 지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일생을 통해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었다는 점에서 나는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식이 끝나고 우리 일행은 무교동 맥주 집에 가서 2차로 맥주를 마시면서 헤어지기를 아쉬워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공식적인 목적인 공로패 수상식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좀 허전했습니다. 나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이며 막내아들 유진이의 장인인 이삼열 박사를 만나서 인사동 천도교 본당 근처에 있는 전통 한식집 '수연'에서 옛날식 한정식을 들었습니다. 뛰어난 젓갈과 보리 굴비가 일품이었는데, 보리 굴비는 정미하지 않은 보리 속에 넣어 100일 간 저온숙성을 거쳐 만든 요리라는 설명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홍어 요리도 맛있었고, 고들뱅이 무침은 근래에 본 적이 없던 옛날식 우리 반찬이었습니다.

이날 점심 도중, 사돈인 이삼열과 손덕수 교수 내외는 내년이 결혼 50 주년이어서 이제는 은퇴인으로서 금혼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내외의 팔순, 나의 막내동생 환갑 등 축하 행렬이 늘어섰습니다. 이삼열 박사는 이제 더 늙기 전에 크루즈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나는 나의 여행기 중 크루즈 여행을 적은 부분을 보고 잘 선택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같은 인사동에 있으며 시인 천상병 씨 부인이 운영하는 '귀천'이라는 전통 찻집에 들렸습니다. 찻집 이름 귀천은 시인 천상병의 대표 작 제목이기도 합니다. <귀천>은 197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표됐으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로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나는 찻집 벽에 걸린 시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세상에 이곳처럼 귀한 곳을 못보고 갔다면 아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많은 사람들은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에 이 시를 썼다고 오해하고 있으나, 사실은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 간첩사건에 관련되어 행방불명되었을 때, 가족들이 실종(사망) 신고를 했는데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본인이 인생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고 한참 지난 14년 뒤인 1993년에 타계했다고 합니다.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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